佛 새 핵항모 ‘프랑스 리브르’ [김태훈의 의미 또는 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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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는 예전과 같은 강대국 지위를 주장할 형편이 아니었다.
2차대전 초반인 1940년 6월 나치 독일에 연거푸 낯뜨거운 패배를 당한 끝에 결국 항복한 프랑스의 자부심은 땅에 떨어졌다.
2차대전 종전 후 드골은 정계에 입문해 프랑스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1959∼1969년 재임)을 지냈고, 임기 중 핵무기 개발에 성공해 프랑스를 미국·영국·러시아·중국과 더불어 세계 5대 핵무기 보유국 반열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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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는 예전과 같은 강대국 지위를 주장할 형편이 아니었다. 2차대전 초반인 1940년 6월 나치 독일에 연거푸 낯뜨거운 패배를 당한 끝에 결국 항복한 프랑스의 자부심은 땅에 떨어졌다. 프랑스는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결과 나치의 점령 통치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으나, 이는 전적으로 미국·영국 등 연합국의 도움 덕분이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이오시프 스탈린 소련(현 러시아) 공산당 서기장은 전후 새로운 세계 질서 구축을 위한 협상에서 프랑스를 배제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

나치 독일의 프랑스 점령이 임박하자 당시 별 하나 준장 계급장을 단 드골은 영국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처칠의 지원 아래 독일을 상대로 한 항전을 지속했다. 초창기 드골이 이끄는 ‘자유 프랑스’ 운동의 세력은 보잘것없었다. 프랑스 국민 사이에 드골의 인지도는 0(제로)에 가까웠다. 루스벨트가 2차대전 기간 내내 드골을 대놓고 무시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하지만 전쟁이 종반전을 향해 치달으며 드골의 명성은 확고해졌고 자유 프랑스 군대 또한 강력해졌다. 급기야 나치 치하의 프랑스 국내에서 독일에 저항해 온 레지스탕스마저 드골을 프랑스의 차세대 지도자로 인정했다. 대전이 끝났을 때 프랑스에 드골이란 존재가 없었다면 전후 프랑스의 운명이 과연 어떻게 됐을지 가늠하기 힘들다.

김태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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