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쉬쉬하는 장애인 시설…“용서 못하면 사형” 회유까지 [취재후]

진선민,이정은 2026. 3. 20.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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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시설에 산다는 이유로, 성폭력을 당해도 그냥 참고 넘겨야 하나요?"

전북 완주군의 한 정신요양시설에서 벌어진 성범죄 사건. 이 사건을 경찰에 공익신고한 시설 직원 김민수(가명)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2023~2024년 이 시설에서 입소자 간 성폭력이 반복적으로 발생했고, 수사 과정에서 시설 측이 피해자에게 용서를 회유한 정황이 최근 KBS 보도로 드러났습니다.

[연관 기사] [단독] 1년새 ‘3번 성폭력’ 장애인시설…“용서 안하면 사형” 회유까지? (2026.03.16 뉴스9)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8509824&ref=A

장애인 입소자 간 성폭력 잇달아… 뒤늦게 경찰 수사

시설에는 한때 150명에 달하는 정신장애인이 입소해 있었습니다. 입소자 간 성폭력 사건은 ①2023년 8월부터 ②2024년 4월, ③2024년 11월까지 모두 세 차례 벌어졌습니다.

각각 서로 다른 남성 입소자가 피해 입소자의 주요 신체 부위를 만지는 등 강제추행한 사건이었습니다.

가해자 3명 중 1명(③)은 지난해 3월 기소돼 징역형이 확정됐습니다. 나머지 2명(①·②)은 지난해 11월 검찰로 송치됐지만, 1명(①)은 수사 도중 지병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렇다면 성폭력 사건이 불거진 당시, 시설 측 대응은 어땠을까요.

시설 측은 KBS에 "세 사건 모두 인지 즉시 전북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하고 피해자 보호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습니다.

장애인 학대 여부를 조사하는 권익옹호기관은 3건 중 1건(③)을 '성학대 사례'로, 1건(②)을 '잠재적 위험 사례'로 판단했습니다. 나머지 한 건(①)은 "당사자 및 보호자 쌍방의 합의 의사 확인에 따라"(시설 측 주장) 일반 상담으로 접수해 학대 여부 판단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시설 측의 사건 축소 시도가 계속 있었다는 게 공익신고자 김 씨의 말입니다.

"피해자(③)가 신고를 원했는데 처음에 시설 운영진 쪽에서 신고하지 못하도록 회유했어요. 그러다 결국 사건화가 되니 피해자가 '(자신이 시설에서) 찍혔다'고 말하더라고요."

"가해자(①)가 성추행 후 피해자에게 천 원을 준 거예요. 운영진은 피해자가 그 천 원을 대가로 받았기 때문에 서로 합의된 성관계라고 하면서 수사기관에 신고하려 하지 않았어요."

시설 장애인들은 의사 표현이 어려운 경우가 많아 범죄 피해를 당했을 때 주변의 조력이 중요한데, 시설 측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보호하기보다 사건을 덮기 급급했다는 겁니다.

세 사건 모두 결국 김 씨의 신고로 경찰 수사가 시작됐습니다.

이 중 두 건(①·②)은 경찰에서 혐의가 없다고 판단했다가, 재수사 끝에 혐의가 인정된다며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처음 경찰의 불송치 결정서를 보면 "피해자 모두 장애가 심각한 상태로 피해 진술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고, 처벌 불원 의사를 표시하는 등 수사기관 출석 및 조사가 불가해 구체적인 피해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고 기재됐습니다.

"조사를 위해 방문한 경찰에게도 '피해자가 진술을 거부한다', '말씀을 잘 못한다'고 이야기하면서 조사를 방해하다 보니 공정한 수사가 이뤄지지 못한 것 같아요." (김 씨)

■ "용서 안 하면 사형" 회유 정황… 시설은 '쉬쉬'

지난해 11월, 사건 발생 1년이 지나서야 나머지 성추행 사건들도 검찰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3주 뒤, 김 씨는 시설에 유일하게 남아있던 피해자(②)로부터 "가해자를 용서하기로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피해자는 왜 용서를 마음먹은 걸까요. 다른 시설 직원과 외출을 나갔다가 들은 말 때문이었습니다.

김 씨와 피해자의 대화 녹취록(지난해 12월 16일)에는 시설 측이 피해자를 회유하려 한 정황이 담겼습니다.


시설 측은 KBS에 "해당 날짜에 피해자가 외출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해명했다가, KBS가 내부 기록을 토대로 다시 문의하니 "피해자가 민원 업무를 보러 직원과 주민센터에 다녀왔다"고 말을 바꿨습니다.

다만, "확인 결과 '용서를 못 하면 사형'이라는 발언을 한 직원은 없었다"며 회유 의혹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인천 중증장애인 거주 시설 색동원 성폭력 사건을 계기로 이번 달 말까지 전국 장애인 시설의 인권침해 현황을 전수 조사하는 중이지만, 이 시설은 조사 대상에서도 제외됐습니다.

장애인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시설 분류상으로 '장애인복지시설'이 아닌 '정신요양시설'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 성범죄 1년 새 3건… 행정처분 왜 없었나

이렇게 시설 안에서 인권침해가 벌어졌을 때, 시설에 책임을 묻는 수단은 지자체의 '행정처분'입니다.

현행법상 사회복지시설에서 입소자 간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 1차 개선명령부터 2차 시설장 교체, 3차 시설 폐쇄 처분까지 내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1년 새 세 차례나 성폭력 사건이 벌어졌는데도, 해당 시설에는 아무런 제재가 없었습니다.


완주군청은 세 사건 중 유일하게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서 '성학대' 판정받은 사건에 대해서만 행정처분보다 수위가 낮은 '행정지도'가 결정됐습니다.

당초 군청은 "피해자와 가해자 간 분리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개선명령 처분을 내리려 했지만, "피해자가 분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시설 측 의견을 받아들여 처분을 감경한 겁니다.

다른 두 건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처분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 관계가 파악되고 거주자 간 성범죄가 발생하였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경우에 해당하면 그에 따른 행정처분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 현시점에서는 검찰의 이 사건들에 대한 기소 여부조차 알 수 없고, 기소 이후에는 재판에 의해 판결이 이뤄지기 때문에 재판부의 판결을 기다려야 정확한 범죄 사실을 판단하여 행정처분 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 KBS 질의에 대한 완주군청 측 답변서

하지만 당장 색동원을 비롯해 경찰·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도 선제적인 행정처분이 이뤄진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장애인 인권 전문가들은 명확한 기준이 없다 보니 지자체마다 '행정처분 시점'이 들쑥날쑥하다고 지적합니다.

처분을 장애인권익옹호기관 판단만으로 할지, 경찰이 송치할 때 또는 검찰이 기소할 때 할지, 법원에서 1심 선고가 나면 할지, 아예 유죄가 확정돼야 할지, 저마다 판단이 다른 겁니다.

이건희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 사무국장은 "행정처분 시기와 기준이 불분명해 피해자들의 권리 구제를 늦추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는 점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면서 "기준을 명확하게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가해 입소자 한 명은 검찰 수사 중에 사망해서 사건이 종결 처리됐잖아요. 이런 경우는 그냥 이대로 끝인가요? 지자체가 처분을 미루는 사이 피해자는 시설 안에서 2차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김 씨)

(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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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민 기자 (jsm@kbs.co.kr)

이정은 기자 (2790@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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