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복원 선택한 고운사 사찰림 가보니···“자연 회복력 상상 그 이상”[영남산불 1년]

백경열 기자 2026. 3. 20. 06: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난 17일 경북 의성군 고운사 및 사찰림의 모습. 지난해 영남 산불로 불에 타 없어진 건물터 뒤쪽 언덕으로 어린 나무 줄기들이 검게 그을린 나무 주변으로 솟아나 있다. 백경열 기자

‘천년고찰’로 널리 알려진 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는 지난해 영남산불로 전소됐다. 의성은 지난해 3월22일 산불이 최초 발화한 지역이다.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번진 산불은 고운사와 주변 사찰림을 송두리째 태웠다. 잿더미가 된 사찰 앞에서 “지켜내지 못해 죄송하다”며 눈물을 흘리던 도륜 스님의 모습은 많은 국민의 안타까움을 샀다.

1년이 흐른 지난 17일 찾아간 고운사는 재건을 위한 준비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전각 주춧돌 사이로 화마를 버텨낸 범종이 보였다. 불탄 건물은 다시 지으면 되지만 문제는 ‘숲(사찰림)’이었다. 고운사는 숲의 복원을 자연에 맡기기로 했다. 사찰림을 자연복원하는 국내 첫 사례다.

사찰림의 산 능선을 따라 올라가자 10여m 높이의 나무들로 빽빽했다. 화마를 피하지 못해 대부분이 죽은 나무들이다. 검게 변한 나무 기둥마다 수십개의 흰구름버섯류(곰팡이)가 점처럼 박혀 있었다. 산불로 약해지거나 죽은 나무 조직에 버섯 포자가 달라붙어 번식하는 것이었다.

얼핏보면 ‘죽음’이 가득한 풍경이지만, 이는 자연이 ‘생명’을 되살리는 과정이다. 죽은 나무 뿌리 바로 옆쪽으로 갈색 옷을 입은 나무 줄기가 바싹 마른채 솟아 있었다. 1m가 채 되지 않는 작은 키였다. 줄기 껍질을 뚫고 작은 점처럼 올라온 ‘맹아’들이 녹색빛으로 올라왔다가 겨울을 지나면서 낙엽 형태로 변한 상태였다.

현장을 둘러본 이규송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는 “불에 탔지만 완전히 죽지 않은 나무가 살아남은 조직에서 싹을 틔우려고 시도하는 현상”이라면서 “곰팡이들은 새롭게 자라는 나무의 양분이 되고 동·식물들의 먹이가 되기도 한다. 앞으로 약 25년간 죽은 나무가 서서히 분해되는 과정을 거친다”고 말했다.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 연구진이 최근 고운사 사찰림에서 식생을 조사하고 있다. 이규송 교수 제공

지난해 산불 이후 여름과 가을을 거치면서 사찰 주변에서는 고사리와 싸리나무 등 다양한 식물이 자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완연한 봄을 맞게 되는 다음 달쯤이면 고운사 사찰림은 녹색빛으로 뒤덮일 예정이다.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산 능선을 따라서 나무가 되살아나는 현상이 뚜렷하게 관찰되고 있다. 자연의 회복력이 빠르다는 점이 증명된 셈”이라면서 “1년새 1m 가까이 자랐는데 만약 불에 탄 나무를 베어내고 다른 나무를 심었다면 이렇게 자라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고운사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 연구진에 따르면, 산불 이후 고운사 인근 화재목과 재생식생 및 토양 분석을 위해 55개 지점을 조사한 결과 활엽수림과 혼합림 형태의 재생이 이뤄지는 것으로 파악됐다. 산불로 피해를 본 거의 모든 침엽수림(소나무 등)이 낙엽활엽수림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는 본래의 숲 구조로 돌아가려는 자연 고유의 성질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지난해 9월 고운사 인근 야산에 불에 탄 나무 사이로 풀이 자라나 있다. 이규송 교수 제공
지난해 9월 고운사 인근 산림의 모습. 사찰림 자연복원 프로젝트 연구진은 침엽수림이 급감하고 활엽수림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규송 교수 제공

산불 전 고운사 주변 침엽수림 면적은 235.8㏊에 달했지만 이후 3.4㏊로 급감했다. 과거 숲가꾸기 사업이 진행된 능선부 소나무림 지역에서 특히 회복 정도가 더뎠다. 반면 활엽수림은 25.3㏊에서 363.5㏊로 크게 증가했다.

연구진은 산불 피해 강도와 식생 등을 분석한 결과 고운사 사찰림 면적의 약 4분의 3(76.6%)에서 높은 자연회복력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이러한 식생 회복 속도에 따라 토양침식 위험도는 산불 직후 4개월 만에 3.57배 감소했다.

올 봄에는 고운사 사찰림에서 진달래, 생강나무를 비롯해 큰까치수염 등 야생화도 관찰할 수 있을 전망이다. 다만 식생 회복이 더딘 나머지 면적에 대해서는 숲의 회복을 돕기 위한 보완 식재가 필요한 것으로 파악됐다.

뛰어난 식생 회복력 덕분에 사찰림에서는 멸종위기종 등 야생 생물의 관찰 빈도도 크게 늘었다. 지금까지 포유류 17종과 조류 35종 등이 확인됐다. 계절 변화에 따라 새롭게 발견되는 동·식물이 증가할 전망이다. 조류는 70~80종 수준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한상훈 한반도야생동물연구소장은 “산불로 다른 지역으로 달아났던 동물들이 찾아오는 사례, 또 화마에도 살아남는데 성공한 사례 등이 확인되고 있다”면서 “(멸종위기종인) 삵은 고운사 경내에서 살고 있고 수달과 담비는 외부와 사찰림을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고운사 사찰림에서 지난해 9월 발견된 멸종위기종 담비의 모습. 한상훈 소장 제공
고운사 사찰림에서 지난해 11월 발견된 수컷 고라니의 모습. 한상훈 소장 제공

인근 지역에서는 불에 탄 산을 벌목하고 나무를 심는 인공조림으로 산림을 복원 중이다. 사찰림을 내려와 당시 산불이 처음 발화된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에 들어서니 곳곳에서 벌목이 이뤄지고 있었다.

발화지점 인근 야산에는 중장비가 오르내린 탓인지 궤도바퀴 흔적이 뚜렷했다. 곳곳에 나무 밑둥만 남았고, 듬성듬성 서 있는 나무들은 가지가 꺾이거나 검게 그을린 채 위태롭게 서 있었다. 야산 곳곳에서 베어낸 나무기둥과 가지 등이 2~3m 높이로 쌓여 있었다. 임시 산불피해목 수집장에서는 중장비가 쉴 새 없이 ‘죽은 나무’들을 쌓아 산을 만들고 있었다.

고운사 사찰림의 자연복원 조사를 계기로 국내 산림정책의 방향을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산불 피해지역에 자연복원을 기본으로 하고 식생의 회복력을 진단한 후,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복구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의성군 안평면 괴산리 야산에서 지난 17일 인공조림으로 불에 탄 나무가 베어진 채 방치돼 있다. 백경열 기자
의성군 임시 산불피해목 수집장에서 지난 17일 중장비가 인공조림으로 베어져 쌓인 나무가지 등을 옮기고 있다. 백경열 기자

이규송 강원대 생물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강원지역, 동해안 등 대형 산불의 피해지를 조사한 결과 자연회복이 가능한 곳이 많았음에도 인공조림이 이뤄져 왔다”면서 “인공조림이나 자연조림 모두 숲이 회복되는 방식이긴 하지만 인위적인 방식은 막대한 비용이 드는 등 단점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숲의 대부분은 자연 복원에 의해 회복된 것이고, 대형 산불은 소나무림과 산림도로(임도)가 집중된 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고운사의 사례를 참고해서 자연복원 과정을 만들도록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대표는 “고은사의 경우 정부에서 별도로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도 자연회복 탄력성이 입증되고 있는데, 오히려 예산을 들여서 숲을 망치는 경우를 수십년간 해왔다”며 “이제는 벌채하고 임도를 내고 나무를 심는 식의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백경열 기자 merci@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