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의 음울한 망명자 그리고 또 난민들 [.txt]
국내 첫 소개 작품…미지의 감각과 분절된 형식으로
사라지는 ‘종족’ 디아스포라의 삶·기억의 의미 그려

이 책은 놓쳤던 것이다. 지난달 출간된 국외 소설이다. 아차 싶어 뒤늦게 제목을 검색해 보니 “이란과 합의, 무조건 항복 외엔 없다” 따위 트럼프발 국제 뉴스가 을러댈 뿐, 이 작품을 소개한 기사는 없었다. 제목이 ‘무조건 항복 미술관’이다.
출판사도 ‘아차’ 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아트북프레스의 조숙현 대표는 18일 한겨레에 “지난해 접하고선 일단 수수께끼 같은 제목에 굉장히 매혹되었고 뮤지올로지(박물·미술관학)에 관한 예술서라고 짐작해 검토하게 되었는데, 보니 문학 작품이었다”고 말했다. “2018년 세워 현대미술 관련 도서만 출판한다는 원칙으로 운영해 온 독립 출판사”는 그러나 책을 내치질 않고 펴내기로 한다.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자사의 원칙을 깨고 나온 첫번째 문학 작품이라고 한다. 국내 독자로서는 처음 만나게 된, 자신의 국적을 유고슬라비아로 표명해 온, 작가 두브라브카 우그레시치(1949~2023)의 1997년 저작이다.
작중 몇몇의 문구에 먼저 붙들렸다.
“나라가 사라졌다면, 집단 기억도 함께 사라진 거야. 우리를 둘러싸던 사물들이 없어졌다면, 우리가 살았던 일상의 기억도 사라진 거지.”
“성장기에 얻은 상처는 결코 잊히지 않아.”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향수라고 부르지.”
아픔조차 그립되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이들의 삶이 이 소설을 구성한다. 작품 안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낱말이 “망명”과 “난민”이거니와, 20세기 세계 지도에서 지워진 유고슬라비아를 고향 삼은 한 망명 작가가 낮게 울부짖는 디아스포라의 비애가 작품엔 가득하다. 그 감각은 나고 자란 땅에서 ―어찌 되었건― 삶을 영위해 가는 이들로선 가닿을 수 없는 것이다. 낯선 도시 베를린의 노상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집시 노인이 ‘나’를 “같은 부류”로 꿰뚫어 보아 허둥대던 어느 날의 에피소드 한토막이 사례가 되겠다. 그날 저녁 중국 식당에서 지인과 접한 이국의 노래(“중국 혹은 한국, 그것도 아니면 근처 어느 나라의 노래였다”고 묘사된다)에 “결국 나는 무너졌다”며 흘린 눈물은 독자를 무력하게 한다. 그 눈물의 정체가 어지간히 아득한데도 말이다. “나는 안간힘을 쓰며 저항했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러면서도… 그 감정의 힘 안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이 기이하게도 나를 기쁘게 했다. 나는 육체적으로 말랑말랑하고 나른하며 (…) 보이지 않는 따뜻한 눈물의 웅덩이 속에서 허우적거렸다”고 토로하는바, 분노와 연민, 좌절과 안도, 서러움과 그리움, 그리고 또 무언가와 무언가로 뒤섞였을 지경. 그 눈물은, 작품 중반부 ―추정컨대 1994년― 이미 망명한 작가로서 문학 행사에 초청되어 방문한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우연히 만난 한 젊은 남자를 ‘욕망’하며 겪은 비감과 그리 다르지 않다. 궁핍하다는 그 젊은이의 처지를 연민하면서도 ‘나’는 ‘나’를 연민했으려니, 다음과 같은 넋두리가 노골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내 나라에서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 실제보다 더 괜찮은 척하는 데 지쳤고, 나는 보호자도 집도 없다고…” 이 지점에선 마흔다섯 “나이보다 훨씬 더 늙은” 상실감까지 가중되었으니. 그날도 ‘나’는 “무너져버렸다.”

작품은 낯선 형식과 함께 줄거리를 추리기 어렵다. 7장이 각기 자전 에세이, 일기, 소설 등의 상이한 장르 문법으로 전개될 뿐 아니라, 1991~96년 쓰였다는 것 외 각 장 안에서의 시간 정보가 불투명해 서사의 선후를 휘젓는다.
1993년 망명길에 올라 베를린에 임시 거주 중인 작가의 과거와 현재가 파편처럼 뿌려지고, 1926년 불가리아 출생으로 스무살에 남편의 나라 유고슬라비아로 떠난 어머니의 생애사가 60대 일기로 조각조각 드러난다. 어머니부터 공포에 짓눌려 혈혈단신 국경을 건넜던 디아스포라다. 그 어머니가 난데없이 문학의 거장들과 문답식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 기억과 존재의 의미를 유랑하는 여성들이 함께 묻는 꼴이다.
작품을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음습한 망명자 버전으로 빗대면 어떨까. 이때 우그레시치에게 ―마들렌은 사치일 터― 오직 중요한 것이 사진이다. “사진은 우리가 세상을 재는 척도이자, 동시에 기억의 형태다.” 다만 작중 어머니는 흩어진 사진들을 앨범에 정리하길 반복하여 실패하므로, 그 함의가 있겠다. 자신과 어머니, 20대 대학생 시절부터 자그레브(크로아티아 수도)에서 깊은 우애를 다졌던 친구들, 직감적으로 서로를 알아보는 도시의 이방인들, 임시 거처에서 만난 또 다른 디아스포라들의 삶이 기록되는 방식이 그와 같다. “산산이 부서진 삶의 이야기는 조각과 파편들로밖에 말할 수 없다”(릴케)는 것이다. 비선형적이며 분절된 소설의 형식이 그를 대변한 것임과 동시에, 역으로 조각들이 꿰일 때 한 삶의 이야기를 이룬다는, 즉 디아스포라도 “전기”를 구성할 수 있다는 슬픈 의지를 감각하게 한다.
툭 던져진 삽화 하나로 그 의미가 올돌해진다. 베를린에서 만난 보스니아 제니차 출신 난민의 이야기다. 급히 필수품만 챙겨 집을 나섰다 돌아간다. 그새 다른 사람이 집을 차지하고 열어주지 않는다. “사진만… 제 사진들만 가져가고 싶어서요.” “우리가 이제 여기 살아요.” 하여 난민들은 두 부류로 나뉜다. “사진이 있는 사람과 사진이 없는 사람”이고, 다른 말로 꿸 수 있는 자와 꿸 기억이 없는 자일 것이다.
2차 대전 뒤 사회주의 연방으로 재탄생한 유고슬라비아는 1991~2001년 치른 전쟁으로 해체되었다. 이 기간 민족·지역 간 학살이 자행되었다. “모든 것이 바뀌었다.” “언어가” “나라가 바뀌고” “옳던 것이 갑자기 틀린 것이 되고, 틀렸던 것이 옳은 것이 되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도살하고, 또 어떤 이들은 그 도살을 수행했다.” “어머니가 ‘자신의 나라’라 믿었던 그 나라는 무너졌고 그 이전의 첫번째 나라는 이미 잃고…” 그의 딸 우그레시치는 반전, 반민족주의를 외치다 1993년 망명길에 오른다.
‘디아스포라 기행’ 등을 쓴 재일조선인 학자 서경식(1951~2023)의 진단대로라면 디아스포라는 ‘세계의 통증을 감각하는 감수성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이 소설이 적잖은 오탈자를 품고도, 이란에서만 3월 기준 난민 320만명이 발생한 이 시기, ‘인간’에게 필요한 감각을 아련히 그러다 날카롭게 전해준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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