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아파트 소녀 식모의 본색은 탐정 [.txt]

한겨레 2026. 3. 20. 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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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서울을 아파트 도시라고 부르지만, 1930년에 이미 집합주택, 아파트로 분류되는 건물이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당시 주거 문화를 연구한 '경성의 아파트'(도서출판 집)에서는 1930년대를 경성의 아파트 시대라고 명명하고, 남산동에 있던 미쿠니상회 아파트를 최초의 사례로 소개한다.

총 6호, 3층짜리였던 이 아파트가 '1939년 명성아파트'의 무대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소설 속 아파트는 4층이지만, 전체적인 구조에서 유사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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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주 장르의 지평선
1930년대 서울 중구 남산동에 세워진 미쿠니 아파트. ‘조선과 건축’(1930)에 소개된 외관 사진이다. 한겨레 자료사진

현대 서울을 아파트 도시라고 부르지만, 1930년에 이미 집합주택, 아파트로 분류되는 건물이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 같다. 당시 주거 문화를 연구한 ‘경성의 아파트’(도서출판 집)에서는 1930년대를 경성의 아파트 시대라고 명명하고, 남산동에 있던 미쿠니상회 아파트를 최초의 사례로 소개한다. 총 6호, 3층짜리였던 이 아파트가 ‘1939년 명성아파트’의 무대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소설 속 아파트는 4층이지만, 전체적인 구조에서 유사점이 보인다.

이 소설은 이입분이라는 어린 식모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남다른 관찰력을 발휘하다 일본인 가정에서 쫓겨난 입분은 최연자, 일본 이름 가야마 렌코인 숙녀에게 의탁해 명성아파트 301호에서 살게 된다. 바이올린과 독서가 취미인 마님은 귀를 덮는 체크무늬 모자를 쓰고 정체 모를 손님을 맞는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그러던 와중 아파트를 배경으로 시작된 영화 촬영이 시작되고,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살인 현장 벽에 한자로 쓰인 “대한독립”이라는 문구의 의미는 무엇일까?

‘1939년 명성아파트’는 여러모로 영리한 소설이다. 또 하나의 셜록 홈스 패스티시이지만, 이런 소설의 전형성을 반전으로 이용했다. 마님과 입분의 관계에서 홈스-왓슨 관계의 성별 반전을 연상하기 마련이지만, 그렇게 일대일로 대응하면 허를 찔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캐릭터의 개성이 드러난다. 시대소설 속 인물은 가끔 독자적 특성보다는, 특정 집단의 대표 견본으로 제시된다. 그러나 입분은 노동 계급의 어린 여성에게서 통상 기대하는 모습을 벗어난다.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진실을 꿰뚫지만, 선과 악의 사이를 실리적으로 따지는 입분은 소설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매력이 있다.

1939년 명성아파트 l 무경 지음, 래빗홀(2026)

더욱이 이 작품에는 추리소설의 정석을 따르면서도 시대소설로서 역사의식을 담으려 했다는 장점이 있다. 일제 강점기가 배경인 한국 추리소설은 대체로 셜록 홈스식 고전 추리를 구현하려는 의도로 쓰이지만, 현대 진입기라는 공통점만으로 서양 추리 전통을 도입한다면 안이한 작업이 된다. 제국주의 영국의 지적 유희, 이를 수입한 일본 다이쇼 로망을 일제 강점기의 한국으로 그대로 번안한다는 건 수탈당한 한반도의 현실을 외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즉, 셜록 홈스와 비슷한 교양과 생활 수준을 가진 인물을 1930년대 한국에 이식하면서, 식민지 지식인으로서 조국에 대한 부채감과 울분을 표현하지 않는다면, 시대를 관찰하는 범죄 소설의 본질과도 어긋나고 한국 독자와 연결될 수도 없다. ‘1939년 명성아파트’는 두뇌 게임적 미스터리를 구성하는 데 초점이 있지만, 당대 한국인이 느꼈을 피억압자로서의 인식과 감정도 함께 담았다. 역사 추리소설이 장르적 흥미, 민중 생활의 핍진성 있는 묘사, 역사의식의 당위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잡을지 묻는다면, 이 소설이 하나의 대답이 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이 소설에서 “대한독립”이라는 숭고한 글귀가 일종의 트릭으로 쓰였지만, 단지 트릭만으로 소비되지 않았다는 점은 한국 독자라면 가슴 벅차게 여기지 않을까 싶다.

박현주 작가·번역가

박현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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