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민준의 골프세상] '나만의 골프 수프'를 끓이자!

[골프한국]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Chicken Soup for the Soul)'는 지구촌 베스트 셀러다. 미국의 카운슬러인 잭 캔필드와 작가 마크 빅터 한센이 공동으로 엮은 이 책은 두세 쪽 분량의 짧은 이야기 109가지를 모은 것이다. 글은 짧지만 읽는 이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47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100개 국가에서 수억 명의 독자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저자는 삶에 지쳐 엄마의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마음의 치유제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제목에 '닭고기 수프'를 넣었다고 한다. 닭고기 수프는 예로부터 전해오는 미국 민간요법의 하나로 몸살감기에 걸렸을 때 할머니나 엄마가 끓여주는 전통음식이다.
이 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자 '골퍼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도 나왔다. 골프와 얽힌 다양하고도 감동적인 에피소드가 풍성해 골프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라면 한번 책을 잡으면 놓기 어렵다.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가 사랑받은 이유는 내용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누구나 겪었을 법한 평범한 이야기를 조용히 건네기 때문이다.
골프에는 인생의 웬만한 장면이 다 들어 있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골프를 한 그릇의 수프로 받아들인다. 라운드하면서 인생의 거의 모든 희로애락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골프 수프'다.
골프 수프의 기본 육수는 기다림이다. 골프장에 도착해 첫 홀에서 대기하고, 티잉그라운드에서 앞 조가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퍼팅 라인에서 동반자의 숨이 가라앉기를 기다린다. 내 차례가 오기 전까지 마음을 다스리며 기다린다. 이 기다림 속에서 조급해지면 국물은 탁해진다.
골프 수프에 들어가는 첫 번째 재료는 실수다. 실수 없는 라운드는 없다. 한두 번의 미스샷은 늘 따라온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실수를 어떻게 넘기는가다. 이미 끝난 샷을 붙잡고 있으면 다음 샷까지 망친다. 방금 전의 실수를 계속 끓이면 수프는 쓴맛이 난다. 골프가 가르치는 건 단순하다. 이미 끝난 샷은 떠먹지 말 것. 다음 한 숟갈에 집중할 것.
골프 수프에는 관계의 맛도 스며 있다. 함께 걷는 동반자의 말 한마디, 잘 친 샷에 건네는 짧은 칭찬, 망친 홀 뒤에 건네는 농담 하나가 국물의 미세한 맛과 온도를 바꾼다. 혼자 먹는 수프보다 여럿이 나누는 수프가 따뜻한 이유와 같다. 골프는 경쟁의 옷을 입고 있지만 실은 공감의 운동이다.
때로는 욕심이라는 조미료가 과하게 들어가기도 한다. 투온을 노리다 물에 빠뜨리고, 파를 욕심내다 보기로 마무리한다. 그때마다 골프는 조용히 묻는다. "지금 그 선택이 정말 너다운가?" 인생에서도 우리는 종종 자신의 거리보다 긴 클럽을 잡는다. 골프 수프가 짜졌다면 그건 욕심이 한 스푼 더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골프 수프를 완성하는 건 받아들임이다. 바람은 불고, 라이(Lie)는 늘 고르지 않다. 완벽한 조건은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스윙한다. 골프는 늘 불완전한 상황 속에서 최선의 선택을 연습하게 한다. 그래서 골프는 스포츠이면서 동시에 태도의 훈련이다. 그것이 골프이며 삶이다.
라운드를 마치고 클럽하우스를 나설 때, 스코어는 곧 잊힌다. 하지만 그날의 공기, 함께 웃던 순간, 마음이 흔들렸던 장면들은 오래 남는다. 잘 끓인 치킨 수프 한 그릇을 먹은 날처럼, 배는 부르지 않아도 마음은 따뜻하다.
세상만사를 골프의 렌즈로 바라보면 결국 모든 이야기는 골프 수프에 담긴다. 기다림, 실수, 관계, 욕심, 그리고 받아들임. 오늘도 우리는 각자의 냄비 앞에서 인생이라는 수프를 끓이고 있다. 조금 싱거워도 괜찮고, 가끔 넘쳐도 괜찮다. 중요한 건 불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 끓이는 일이다. 골프가 그러하듯.
*칼럼니스트 방민준: 서울대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국일보에 입사해 30여 년간 언론인으로 활동했다. 30대 후반 골프와 조우, 밀림 같은 골프의 무궁무진한 세계를 탐험하며 다양한 골프 책을 집필했다. 그에게 골프와 얽힌 세월은 구도의 길이자 인생을 관통하는 철학을 찾는 항해로 인식된다.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의견으로 골프한국의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골프한국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길 원하시는 분은 이메일(news@golfhankook.com)로 문의 바랍니다. / 골프한국 www.golfhank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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