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에너지난 양극화…'블랙아웃' 속 관광지는 휘황찬란

송광호 2026. 3. 20.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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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는 치우지 않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블랙아웃'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관광지 호텔들은 중국의 기술지원으로 마련한 태양광 패널 등을 이용해 생산한 자체 전력을 보유한 데다 쿠바 정부가 이곳에만은 연료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밤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반짝이는 관광지와 암흑 속에 방치된 서민 거주지라는 '두 개의 쿠바'가 한 나라에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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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당국, 외화벌이 첨병인 관광지는 최우선으로 전력 공급
서민은 후텁지근한 날씨에도 씻지 못하고, 쓰레기 더미 속에서 생활
미국 봉쇄 조치 외에 외산 석유에 의존한 쿠바 정부 실책도 전력난에 한몫
쿠바의 거리 [로이터=연합뉴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송광호 특파원 = 거리에는 치우지 않은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 연료난 속에 청소차가 운영되지 못하면서다. 잦은 정전으로 냉장고 속 생선과 고기는 썩어간다. 섭씨 30도를 넘나들고 습도가 80%를 넘는, 습하고 더운 섬 특유의 날씨 탓에 씻으려 해도 단수로 인해 씻을 수조차 없다. 상하수도 시설 대부분이 전기 펌프로 작동하는데 툭하면 정전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손잡고 쿠바에 공산정권을 수립한 지 67년이 흐른 현재, 쿠바 국민들이 겪고 있는 신산한 일상이다.

하지만 또 다른 풍경도 있다. 서민들의 거주지와는 달리 바라데로, 카요코코 같은 관광지 호텔은 전력난 속에서도 밤마다 불야성을 이룬다. '블랙아웃'이라는 초유의 사태 속에서도 관광지 호텔들은 중국의 기술지원으로 마련한 태양광 패널 등을 이용해 생산한 자체 전력을 보유한 데다 쿠바 정부가 이곳에만은 연료를 공급하기 때문이다.

쿠바 바라데로 해변 [EPA=연합뉴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전력난 속에서도 쿠바의 '서글픈 이면'이 공존한다고 1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밤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반짝이는 관광지와 암흑 속에 방치된 서민 거주지라는 '두 개의 쿠바'가 한 나라에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정부는 관광지에 전력을 최우선으로 공급한다. 정부 기관이 밀집한 수도 아바나보다도 이들 지역에 먼저 공급된다. 달러가 부족한 쿠바에서 관광지는 외화벌이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관광객들은 에어컨이 완비된 방과 냉장 보관된 뷔페를 즐기는 '호화로운 거품'(Luxury bubbles)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군은 이들 지역 곳곳에 검문소를 두고 일반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한다.

쿠바 정전 [AFP=연합뉴스]

반면, 쿠바의 일반 시민들은 썩어가는 냉장고를 뒤지며 가까스로 아침을 해결하고,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 속을 지나 회사에 도착한다. 암 환자들은 잦은 정전으로 수술도 하지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현지 보건 당국에 따르면 전력난과 의약품 부족으로 연기된 수술만 전국적으로 수만 건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의 고통은 더욱 심각하다. 동부 올긴시에선 하루 3시간밖에 전력이 공급되지 않는다. 제2의 도시 산티아고도 전력과 수돗물 공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주민들은 현지어로 '카세롤라소'(Cacerolazos)라 부르는 야간 시위에 나선다. 분노를 표출하기 위해 밤마다 냄비와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시위다. 중부 모론시에선 전력난에 불만이 누적된 시위대가 공산 당사를 습격하는 이례적인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카트를 끌고 있는 쿠바 주민 [AFP=연합뉴스]

이번 쿠바의 에너지 위기는 미국의 봉쇄 조치 탓이 크다.

그간 쿠바는 좌파동맹 베네수엘라에 석유 수입을 의존했는데, 지난 1월 초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미국에 압송되면서 위기가 시작됐다.

미국이 베네수엘라와 쿠바의 석유 거래를 금지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쿠바에 석유를 제공하는 국가들에 대해선 징벌적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기 때문이다.

지난 3개월간 쿠바 연안에 도착한 석유는 8만6천 배럴 분량의 멕시코산 원유가 전부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간 지나치게 동맹국의 석유에 의존했던 쿠바 정부의 실책도 이번 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고 NYT는 지적했다.

전 세계 국가들이 천연가스, 풍력, 전기 배터리 등으로 전력 생산방식을 다각화하고 있는 동안, 쿠바는 여전히 석유에 비정상적으로 의존하는 '20세기형 모델'에 갇혀 허송세월했다는 것이다.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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