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츠커상 또 韓 패싱…‘부동산’에서 ‘체험적 공간’으로 [이규화의 지리각각]
2026년 수상자 라디치, 공공성과 ‘경험성’ 반영
BTS 컴백 열기…대중예술은 되는데 건축은 왜?
후진적 발주 구조, 설계와 시공의 단절 극복해야
국제적 인지도 확산하고 건축 환경·제도 개혁도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이 올해도 한국을 비켜갔다. 지난 12일(현지시간) 하얏트재단은 2026년 수상자로 칠레 건축가 스밀얀 라디치를 선정했다고 발표했다.
라디치는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과 칠레 비오비오 지역극장 등에서 보여준 조형성과 자연의 결합, 그리고 빛과 시간의 흐름을 공간으로 끌어들이는 실험적 작업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건축의 본질로 돌아가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탐구했다는 심사위원단의 평가는 최근 프리츠커상의 평가 기준이 ‘혁신’에서 ‘공공성과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한국 건축계는 또 씁쓸함을 느껴야 했다. 해마다 반복되는 이 작은 ‘굴욕’은 이제 일종의 연례행사처럼 받아들여진다. 과학계가 노벨상을 염원하듯, 한국 건축계 역시 프리츠커상 수상을 한국 건축계의 위상 지표로 삼아온 게 사실이다.
건축 자체의 설계 및 시공 기술과 전반적인 경제 규모, 게다가 내일 벌어질 BTS의 컴백 공연에 쏠린 세계적 관심으로 대변되는 한국 대중문화 역량 등 종합적인 국력을 감안할 때 이제는 수상자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냐는 주장도 있다. 특히 이웃 일본이 1979년 상 창설 이래 9명의 수상자를 배출하며 세계 건축계의 중심 국가로 자리 잡은 현실은 한국 건축계에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한다.
문제는 이 상의 수상이 단지 ‘운’이나 국력의 배려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리츠커상은 특정 작품이 아니라 건축가 개인이 쌓아온 작업 세계 전체를 평가한다. 다시 말해 한 나라의 건축 환경과 제도, 문화가 장기적으로 축적된 결과가 반영되는 상이라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반복된 ‘패싱’은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구조적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한국 건축은 여전히 경제 논리에 과도하게 종속돼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건축을 예술이 아니라 ‘부동산의 연장선’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민간은 물론 공공 프로젝트에서도 설계가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공모를 통해 선정된 설계안이 공사 과정에서 비용과 공기 문제로 변형되는 일이 빈번하고, 발주 과정 역시 투명성과 전문성 측면에서 개선 여지가 크다. 이 같은 환경에서는 건축가가 일관된 작품 세계를 구축하기 어렵다.
공공건축의 취약성도 뼈아픈 지점이다. 프리츠커상 수상자 다수의 공통점은 공공 프로젝트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발신하고 공간적 실험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반면 한국은 공공건축의 양과 질 모두에서 아직 충분한 토양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다. 건축가의 창의성과 자율성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해 국가건축정책(한국은 대통령 소속으로 국가건축정책위원회까지 두고 있다)을 총괄했던 승효상 건축가의 지적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국가건축정책위원장을 맡았던 2019년 건축 전문지 ‘공간’에 “우선 한국의 제도적 허점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며 “발주·설계·허가·시공 전 과정이 후진적 구조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공공 발주 제도의 개혁과 복잡한 인허가 절차 개선, 설계와 시공의 단절 문제를 근본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했다. 그의 지적은 한국 건축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재설계를 요구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국제 건축계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 건축가들의 인지도도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현재 건축 담론의 중심은 여전히 유럽과 북미다. 주요 학술지, 전시, 교육기관이 이 지역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한국 건축가들의 작업은 국제무대에서 충분히 소개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일본이 일찍부터 연구·출판·전시 체계를 구축하고 자국 건축을 꾸준히 세계에 알린 것과 대비된다. 안도 다다오, 이토 도요오, 세지마 가즈요, 반 시게루, 야마모토 리켄 등으로 이어지는 일본의 수상 행렬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 장기적 전략의 결과다.
물론 변화의 조짐도 있다. 한국 건축가들은 베니스건축비엔날레, 각종 국제 설계공모, 해외 대학 강단 등에서 점차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일부 건축가는 해외 프로젝트를 통해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하며 국제적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별 성취가 건축계 전체의 성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제도적 뒷받침과 기록·비평 문화의 축적이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프리츠커상의 ‘한국 패싱’은 감정적으로는 아쉬움과 불만이 앞서지만,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아직은 ‘당연한 결과’라는 답에 마주할 수밖에 없다. 건축가 개인의 역량만으로는 극복하기 어려운 환경적 제도적 한계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프리츠커상이 목표는 될 수 있지만, 목적이 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상 자체가 아니라 그 상을 가능하게 하는 건축 문화의 토양이다. 공공건축의 질적 도약, 설계 존중 문화, 국제적 소통 확대, 그리고 건축을 예술로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함께 동반될 때 비로소 결실을 맺을 수 있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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