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관 인사는 ‘사법 3법’ 과 다르다[동아광장/정원수]
정권교체 뒤 대법원장의 후순위 제청 반복
대통령 임명권 안에서 제청권 최소 행사해
‘위기의 사법부’ 더 수렁에 빠뜨려선 안 돼

이번만 이런 게 아니다. 대법원장이 재임 중에 대통령이 바뀌면 새 정부의 첫 대법관 인사를 놓고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특히 정권교체가 되면 물밑 조율에 시간이 더 오래 걸렸고, 서로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뒤늦게 만나더라도 냉랭한 상견례가 된다고 한다. 바로 직전 윤석열 정부 때의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대표적이다. 올해 1월 21일 이재명 정부의 첫 대법관 후보군 4명이 추천됐지만 청와대와 대법원이 두 달 가까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청와대는 기존 대법원 구성에 큰 변화를 주길 원하는데, 대법원이 선뜻 동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심각한 교착 상태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조 대법원장은 대법관 인사에 대해 주변에 아무런 얘기도, 암시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고민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대법원장으로선 취임 이후 법관 인사 원칙을 여러 차례 강조했는데, 법관 인사의 정점인 대법관 후보는 더더욱 거기에 맞는 후보를 내세우고 싶을 것이다. 평소 대법관감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후보를 올리게 되면 대법원장의 사법부 장악력이 떨어질 수 있다. 인사 문제로 법관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야 하는 사법부 수장으로선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대법관추천위원회는 대통령이 아닌 대법원장이 소집한 것이다. 거기엔 대법원장의 핵심 참모인 법원행정처장뿐만 아니라 현직 대법관이 참석한다. 심사 대상자 중에서 대법관 후보로 적합한 후보를 가려낸다. 이번에는 39명 중에서 4명을 추천했다. 대통령이 그중에 누구를 임명하더라도 하자가 없는 것으로 추천위가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4명이 추천됐을 때 대법원장의 4순위가 제청된 전례도 있다. 추천되지도 않은 제5의 후보를 청와대가 요구한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끝까지 제청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대법원장의 제청권 그 자체가 독립된 행위라고 주장하던 대법원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건 상식적이지 않다. 한때 ‘사법부의 제청을 대통령이 확인한다’는 취지의 법 조항이 있었지만 오래전 사라졌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최대한으로 행사하는 게 아니라, 대통령의 임명권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절제하는 게 맞다.
만약 대법원장이 끝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고, 청와대의 의중을 무시하면서 후보를 제청한다면 어떻게 될까. 대통령이 곧바로 제청을 거부할 수 있다. 헌정 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이다. 그렇게 되면 대법원장에 대한 불신임이 공식화된다. 한마디로 대법원장과 같이 가기 어렵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여당이 마음만 먹으면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를 국회 인준 투표에서 부결시킬 수 있다. 요즘처럼 여권과 사법부가 극도의 긴장 관계일 때는 또 다른 위험 요소가 있다. 여당에선 조 대법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의 발의 요건을 채우기 위해 현재 서명을 받고 있는데, 탄핵안 통과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대법원장이 대통령의 헌법상 인사권을 침해했다”고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대법원장은 질 수밖에 없고, 회복하기 어려운 리더십의 상처만 입게 된다.
조 대법원장은 평소 ‘한 건의 재판으로 누군가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일건일생(一件一生)을 강조했다. 그런데 전원합의체 재판장으로서 대선 직전 이 대통령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 하면서 바로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다. 그 이후 “재판장에 대한 공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법부 전체를 공격했다”는 한 법관의 평가처럼 ‘사법 3법’ 입법 과정에서 사법부가 완전히 배제됐다. 하지만 대법관 인사는 ‘사법 3법’의 연장전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너무 많다. 그렇다면 대응법도 달라져야 한다. ‘위기의 사법부’를 더 절망적인 상황에 빠뜨리는 선택이 나와선 안 되는 시점이다.
정원수 부국장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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