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어 사체·보석 해골…‘현대미술 악동’ 허스트, 파격적인데 새롭진 않네

썩거나 방부 처리된 동물 주검들과 보석으로 치장한 해골이 한국의 국가대표 미술관에 전시품으로 들어왔다. 20~30여년 전 영국의 미술 대가가 만든 작품들인데, 나랏돈 30억여원을 투입해 특설 전시장을 만들어줬다.
전시장은 요지경이다. 푸른빛 방부액으로 가득 찬 높이 2m, 세로 5m의 투명 진열장 속에 입 쩍 벌린 백상어의 사체가 떠 있다. 또 다른 진열장 안에는 피 흘리는 소의 머리통이 널브러졌고, 그 위로 파리들이 꼬여들다가 전기살충기에 감전되어 죽는 광경이 되풀이된다. 수백마리 나비의 날개를 떼어내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발광패널 앞에는 8천개 넘는 다이아몬드로 전면을 수놓고 18세기 인골의 치아를 뽑아 붙인 해골 모양 조형물이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다.

지금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지하 전시실에서 펼쳐지는 풍경이다. 1990년대 이후 세계 현대미술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인 작품들로 꼽히는 영국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61)의 명작들이 왔다. 1990년대 이후 세계 미술판에 선풍을 불러일으킨 영국 ‘와이비에이’(YBA: 영국의 젊은 미술가) 그룹의 실질적 리더이자 ‘현대미술의 악동’으로 유명한 허스트가 동물과 사람의 죽음을 소재로 실존과 죽음의 묵직함,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는 주요 명작들의 실물이 처음 한국에서 관객들과 만난다.
20일 시작하는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전은 초기작부터 지금까지 30여년 동안 창작한 설치, 조각, 회화 등 50여점을 선보이는 아시아 최초의 대형 회고전이다. 미술관이 올해부터 해마다 열겠다고 밝힌 외국 현대미술 거장 대형 전시 프로젝트의 서막을 여는 자리이기도 하다. 1970년대 유년 시절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에 열광했던 허스트는 가난한 노동자 가정에서 하위 펑크 문화를 접하며 성장했다. 이런 출신 배경을 바탕으로 골드스미스 예술대학에 진학해 로버트 라우션버그, 앤디 워홀, 제프 쿤스의 미국 팝아트와 프랜시스 베이컨의 영국 실존주의 회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특유의 저돌적인 작업 브랜드를 빚어냈다. 충격적인 사람, 동물 등의 신체 절단·조작과 알약 설치 작업 등을 통해 엘리트 미술문화와는 다른 직설적이고 날선 감각의 작품 언어를 구축했다.

이번 전시는 4부로 이뤄졌다. 1980년대 초창기의 콜라주, 점 작업부터 1990년대 이후 동물 사체, 해골 등을 활용한 출세작들을 거쳐 현재 작업실 공간까지 돌아볼 수 있도록 꾸려놓았다. 1부는 팝아트 거장 라우션버그의 콤바인 회화 영향을 받은 잡동사니 기물의 오브제 콜라주와 골드스미스 스승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의 영향을 받은 미니멀한 식기와 종이상자 집적 작업, 칼 위에 떠 있는 공을 통해 사랑의 속성을 표현한 설치 작품 등을 통해 그가 팝아트의 맥락을 이어받은 작가임을 은연중 보여준다.

2부와 3부가 도드라진 볼거리를 주는 핵심 영역이다. 특히 2부는 1997년 영국 로열아카데미 기획전 ‘센세이션’에 나와 세계 미술계를 경악시킨 상어 사체 진열장 작품 ‘살아 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과, 1990년 창고 갤러리에 소개돼 실존주의 회화의 거장 프랜시스 베이컨이 찬사 편지까지 썼던 소대가리와 파리의 설치 작품 ‘천년’(1990)을 볼 수 있다. 3부는 알약 진열장과 벚꽃 회화, 도열한 해골 모조품의 모습에서 허망한 삶을 느끼는 도입부에 이어 인간 두개골을 백금으로 만들고 8601개 다이아몬드로 수놓은 1천억원 넘는 대표작 ‘신의 사랑을 위하여’가 나비 날개 무늬로 만든 스테인드글라스 삼면화를 배경으로 등장한다. 인간의 욕망과 삶의 덧없음을 상징한 작품이지만, 2007년 이를 사들인 투자자 중 하나로 작가가 포함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상도의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시는 작가의 기발한 수십년 전 대표작과 작품 세계의 변천 과정을 정리한 전형적인 블록버스터 기획전이다. 일본 도쿄 국립신미술관의 ‘와이비에이 & 비욘드’전이나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의 와이비에이 작가 트레이시 에민의 개인전 등 와이비에이의 미술사적 의미를 추구하는 역사화 전시들이 비슷한 시기 열려 전시의 명분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 전시는 새롭고 의미심장한 담론은 없다. 이미 사진 이미지로 지겨울 만큼 소비된 허스트의 대표작들을 실물로 줄줄이 보여주는 데 방점이 찍혀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건 최근 바닥까지 뜯어 왔다는 런던 외곽 템스 강변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한 것과 그가 최근 야수파의 거장 앙리 마티스에 심취해 그의 작품들을 베껴서 더 크게 확대해 그리거나 아프리카 토속 조각상이나 앵무새상들을 야수파나 표현주의의 터치로 열심히 그리는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다. 역시 기존 기획사들의 블록버스터 전시에서 흔히 봐왔던 전시 배치나 연출 방식이다.

실물 작품을 본다는 의미를 무시할 수 없지만, 2000년대 초반까지의 전성기가 지나면서 기존 작품 언어를 되풀이하고 지나친 과시욕과 돈벌이에 집착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은 상황에서 그의 과거 내력을 반복 포장하는 전시를 굳이 국립미술관이 거액을 들여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6월28일까지. 입장료 8천원.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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