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경체] "19,900원의 마법"…내 소비를 조종하는 숫자의 비밀

송성환 기자 2026. 3. 1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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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뉴스]

서현아 앵커

경제학은 인간이 항상 합리적으로 행동한다고 가정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제 경제생활이 꼭 그렇지만은 않죠.

분명히 아끼려고 했는데 어느새 결제 버튼을 누르고 있는 우리 모습, 도대체 우리 뇌가 숫자에 속는 이유는 뭘까요?

오늘 그 비밀을 풀어봅니다. 

인간의 비합리성을 경제학으로 분석하는 행동경제학, 정태성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대표와 함께합니다. 

어서 오세요.

우선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 학문이라고 간단히 설명을 드렸는데요. 

행동경제학은 정확히 어떤 학문이고, 일반 경제학과 무엇이 다른가요?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전통 경제학은 인간을 '호모 이코노미쿠스(Homo Economicus)', 즉 완벽하게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존재로 가정합니다. 

모든 정보를 빠짐없이 처리하고, 항상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한다는 전제 위에 이론을 세운 것이죠. 

이 말은 우리가 어떤 의사결정을 내릴 때, 나에게 주어진 모든 정보를 동원하여 정확하게 자신의 이익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계산하여 바로 의사결정할 수 있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누군가 학생들에게 굉장히 어려운 곱셈 문제를 세 개 내고 그 중에 가장 큰 값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계산해서 정답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기존 경제학에서 보는 인간입니다.

행동경제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기존 경제학에서는 경제현상을 설명하는 명확한 이론을 만들기 위해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기적'이라고 정형화시키죠. 

그런데, 실제 인간은 그렇지 않잖아요. 

현실에서 인간은 경제학 이론에서 말하는 것과 다르게 허점 투성이고 예상한 것과 다르게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고 있다는 데서 출발합니다. 

그러다보니 경제학적 관점에서 진짜 인간의 심리와 행동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생겨난 학문이 바로 행동경제학입니다.

서현아 앵커

'행동경제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필요했던 결정적인 계기나 사건이 있었을까요?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우선 학생들은 사회 시간에 '보이지 않는 손'을 얘기했던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스미스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행동경제학자들은 애덤스미스야말로 행동경제학의 진정한 창시자라는 얘기를 공공연하게 합니다. 

애덤스미스는 '도덕감정론'이라는 책에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지만 자신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자 한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후 경제학이 20세기까지 발전하는 동안 물리학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경제 현상을 깔끔한 수식과 완벽한 균형으로 설명하고 싶어 했죠.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후 "책상 앞의 경제학자들이 만든 모델이 현장의 인간들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회의론이 들었습니다. 

이런 흐름 속에 행동경제학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은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입니다. 

두 사람은 1970년대 후반 인간이 어떻게 의사결정하는지를 다양한 실험을 통해 밝혀내면서 인간의 선택이 심리적 가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서현아 앵커

1970년대 학문적인 가치를 입증했다고 설명해 주셨는데, 역사만 놓고 보면 그리 오래되지 않은 학문입니다. 

경제학 학계 내에서 현재 위상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보통 경제학에서 하나의 이론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현재 이론 문제점을 확인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단계, 대안 이론 중 하나로 자리잡는 단계, 경제학 분석방법을 써서 하나의 이론으로 인정받는 마지막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하는데 행동경제학은 2010년부터 확고한 하나의 경제이론으로 자리잡았으므로 경제학의 주류로 들어왔다고 봅니다.

특히, 2002년 대니얼카너먼, 2013년 로버트 쉴러, 2017년 리처드탈러, 2019년 배너지와 뒤플로 등 행동경제학적 관점을 가진 학자들이 연이어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것이 그 증거입니다. 

실무적 위상 또한 높아졌습니다. 

2010년 영국 정부는 세계 최초로 '행동통찰팀(BIT)', 일명 '넛지 유닛'을 설치하여 정책에 행동경제학을 직접 적용하기 시작했고, 이후 미국, 호주, 싱가포르 등 전 세계 수십 개국이 유사한 조직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세계은행과 OECD도 행동경제학 기반의 정책 설계를 공식적으로 권장하고 있고요. 

특히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간 고유의 판단 편향을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어, 행동경제학의 학문적 중요성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서현아 앵커

행동경제학적 분석이 적용된 대표적인 인간의 '비합리적인 경제 선택'의 예시로는 무엇이 있을까요?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가장 유명한 '앵커링 효과(anchoring effect)'에 대한 사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처음 접한 숫자가 이후 판단의 기준점이 되는 현상인데요. 

사람들은 숫자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2010년 애플이 아이패드를 세상에 처음 선보일 때, 스티브 잡스는 화면에 999달러를 띄워 놓았습니다. 

잠시 후 499달러부터 시작한다고 하자 관객들은 "너무 싸다. 반값도 안 되잖아"라는 강렬한 인상을 받게 됩니다. 

사실 499달러도 당시에는 굉장히 비쌀 수가 있었는데 말이죠.

대부분 19,900원, 29,900원 이렇게 붙어 있습니다. 

실제로는 가격 차이가 100원에 불과하지만 앞자리가 달라지면서 사람들은 '훨씬 싸다'라고 느끼면서 구매하게 됩니다.

서현아 앵커

행동경제학이 단순히 경제 현상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 각 분야에 적극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하는데요. 

어떤 사례들이 있을까요.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이미 우리 일상 곳곳에 행동경제학이 설계한 장치들이 숨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넛지(nudge)'인데요, 선택의 자유를 유지하면서도 더 나은 결정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을 말합니다.

영국에서는 세금 고지서에 '이웃의 90%가 이미 세금을 납부했습니다'라는 한 줄을 추가했더니 체납률이 약 15% 감소했습니다. 

군중 심리를 넛지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횡단보도 앞 노란 발자국, 고속도로 나들목의 분홍·초록 유도선도 넛지의 하나입니다. 

색깔 유도선을 도입한 후 나들목에서의 교통사고가 50% 이상 줄었다고 하네요.

서현아 앵커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이 행동경제학을 이해하고 공부하면 실제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태성 대표 / 한국행동경제학연구소

행동경제학을 아는 것은 일종의 '마음의 안경'을 끼는 것과 같습니다. 

세상이 달라지는 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는 거죠.

'한정 수량', '오늘만 특가' 같은 문구가 희소성과 손실 회피를 자극하는 전략이라는 것을 알면, 충동구매를 크게 줄일 수 있습니다.

특히 청년 세대는 소비 결정을 SNS와 또래 집단의 영향 속에서 내리는 경우가 많은데, 군중효과를 이해하면 남들을 따라가는 소비가 아닌, 자기 기준에 맞는 소비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합리적이지 않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더 나은 선택의 시작입니다.

서현아 앵커

행동경제학은 결국 '나 자신을 알라'는 학문이라는 말씀인데요. 

우리는 생각하는 만큼 합리적이지 않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더 나은 선택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참 매력적인 학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대표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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