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달라’는 한 문장 함께 읽고 기억해주길 [김윤지의 애살맞아 생긴 일]

김윤지 하동군 근무 2026. 3. 19.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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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픔에 슬퍼하는 법

세월호 이야기 다룬 영화
감당하기 힘든 슬픔 앞에
회피하는 나 자신 마주해

12년이 흐른 4월의 슬픔
남겨진 이가 써낸 이야기
듣고 그리워하는 게 추모
/ 삽화 서동진 기자 sdj1976@idomin.com

관성적으로 하는 일이 있다. 하기 싫은 일이 잔뜩 밀려 있을 때는 모두가 미적미적 자러 들어가는 시간에 책상에 앉아 OTT(인터넷으로 방송 프로그램, 영화, 자체 제작 프로그램 등의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켜고 새로 올라온 콘텐츠를 보는 것이다.

장르 불문 일단 누르고 본다. 그저 양말 하나 개는 것도 텔레비전 소음을 빌려 하던 습관의 연장선 같은 것이다. 주변이 적당히 시끄러워야 오히려 마음이 조용해진다. 그러니까 한국 콘텐츠보다는 내가 못 알아듣는 외국 콘텐츠들이 좋다. 말소리는 들리되 의미는 닿지 않는 그 적당한 거리감이 좋다. 그런데 그날은 공교롭게 OTT에 한국 콘텐츠만 두어 개가 올라왔다. 딱 봐도 슬픈 이야기 하나, 딱 봐도 무서운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공포 영화를 혼자 보았다가는 덥고 갑갑해도 이불을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자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게 뻔해 어쩔 수 없이 나머지 하나의 영화를 눌렀다.

그리고 진짜 슬펐다. 대충 들으며 밀린 일을 하기엔 너무 집중이 잘 되었고 또 너무너무 슬펐다. 눈물이 흐른다는 감각이 아니라 쏟아낸다는 감각이 맞았다. 내가 요즘 뭐 속상한 일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내가 이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영화가 너무 슬펐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앞에서 생각만으로 이미 지쳐버려 의도적으로 관심을 꺼온 나를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남겨진 이들은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는 아픔이다. 그 이야기는 드라마에도, 영화에도, 12년이 지난 뉴스에도 여전히 넘쳐난다. 그런데 나는 언젠가부터 채널을 돌렸다. 제목만 봐도 알 수 있게 되었고 분위기만 감지되어도 얼른 자리를 뜨곤 했다.

왜 울었는지 오랫동안 생각했다. 영화를 보기 전과 똑같이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집중이 되질 않았다. 이 거대한 슬픔을 평소처럼 피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슬픈지를 알아내는 것만큼 하기 싫은 일이 없는데, 자꾸 생각이 나서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다시 반추해야 했다.

살아있는 사람은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자기소개서가 된다. 1초, 또 1초. 의식하지 않아도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는 계속 쌓인다. 그날 밤 어떤 영화를 볼지 말지 고민했던 그 사소한 과정조차 나라는 사람의 자기소개인 셈이다. 살아있다는 건 그런 것이다. 숨만 쉬어도, 잠을 자도, 아무것도 안 해도 자기소개서는 한 줄씩 써진다. 그런데 먼저 떠난 사람들은 이제 스스로 그 문장을 쓸 수 없다. 가능성의 세계에서 지워지는 것이다. 대학에 입학하거나 재수를 준비하는 20살, 혹은 첫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늦게 들어오는 모습도. 남겨진 이들이 영영 볼 수 없는 장면들이다. 하다못해 자식의 주량이 얼마인지조차 이제는 절대 알 수 없다. 그들의 자기소개서는 거기서 끝이 난 것이다. 아마 남겨진 이들은 더 이상 그들을 가능의 세계에서 상상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아팠을 것이다.

그러니까 남겨진 이들이 하는 일은 끊겨버린 자기소개서를 대신 이어 쓰는 것이다. 영화에 이런 장면이 있었다. 아이를 떠나보낸 아버지가 아이의 물건들을 모아 생일 파티를 연다. 아이를 알던 사람들을 불러 모아 함께 앉는다. 왜 이제 와서 생일을 챙기냐는 말에 아버지는 이렇게 말한다. 살아있을 때 해준 게 없어서,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라고. 그러면서 누군가가 덧붙인다. 18살이었는데 이제는 술 한잔할 수 있는 나이도 한참 지났다고. 나는 그 말이 너무 아팠다. 현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불가능하다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그 불가능한 나이를 소리 내어 세는 건 끊겨버린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써주고 싶어서다. 우리 아이가 이 세계에 존재했다는 것을 지금도 우리 곁 어딘가에 있다는 것을 믿고 싶어서다. 그 이야기들은 누군가 말해주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순간 흔적도 없이. 유족은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들은 말을 멈출 수가 없다. 피곤해도, 목이 쉬어도, 듣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도. 우리 아이를 잊지 말아달라는 외침. 그게 그들이 할 수 있는 전부이고 또 원하는 전부이겠지.

그런데 나는 이제서야 그걸 알았다. 남겨진 이들을 위로하는 것만이 추모인 줄 알았다. 검은 옷을 입고 고개를 숙이고 '얼마나 힘드세요'하고 묻는 것이 전부인 줄 알았다. 그것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으면서. 게다가 그마저도 버거워서 슬픈 이야기가 나오면 늘 먼저 피해버렸다. 뉴스를 끄고 기사를 닫고 화제를 돌렸다. 변명을 하자면 나는 슬픔을 그냥 흘려보내는 사람이 못 된다. 한번 빠지면 이불에 얼굴을 박고 한참을 울다가 한동안 허우적대는 편이라 의도적으로 거리를 뒀다. 그러는 사이 12년이 흘렀다. 그들이 목이 터져라 자기소개서를 이어 써오는 동안 나는 줄곧 그 문장들을 외면하고 있었다. 읽어줄 독자가 되어주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는 그러면 안 되는 걸 안다. 유족이 원하는 건 나처럼 주저앉는 슬픔이 아니다. 내가 슬픔을 맞이하는 것이 두려워서 피하는 동안 그들은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 문장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자기소개서를 읽어줄 사람이 한 명이라도 더 필요하니까. 그들이 우리의 세계에서 사라지지 않으려면 기억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니까. 추모는 슬픔을 견디는 일이 아니라 끊긴 자기소개서를 함께 읽어주는 일이다. 그 차이를 알고 나니 내가 왜 그토록 오래 피해 왔는지도 조금은 이해가 됐다. 나는 슬픔을 감당하려 했을 뿐 기억을 나누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걸 이제야 알았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 끊겨버린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가는 이들이 있다면 그 이야기를 들어주자. 나처럼 슬프다고 마음이 아프다고 피하지 말고. 함께 슬퍼하는 것과 함께 기억하는 것은 다르다. 슬픔은 언젠가 희미해지지만 기억은 곱씹을수록 선명해진다. 우리와 함께 살았던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웃고, 그리워해주자. 그 사람이 좋아했던 것, 자주 쓰던 말, 화났을 때의 표정까지 모두 그들의 문장을 함께 기억해 주는 것.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모든 이들이 원하는 건 결국 그것이 아닐까. 슬픔을 나누는 게 아니라 자기소개서를 함께 읽어주는 것이다. 그게 진정한 추모다.

영화 속 남겨진 이들도 다가올 날을 위해 오늘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그게 남겨진 이들의 숙명이니까.​​ 그리고 이건 4월의 이야기이지만 모든 슬픔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김윤지 하동군 근무

필자소개☞ 얼떨결에 담담하고 소박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지만 속은 아주 기름지답니다. 간혹 글에 누런 기름이 뜨더라도 페이퍼타월처럼 저를 감싸주시고 닦아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