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과 도포를 두른 저승사자 댄서들과 사물놀이패가 함께 한 ‘골든(Golden)’ 무대가 끝나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스티븐 스필버그가 K-응원봉을 흔든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이하 ‘케데헌’)가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 주제가상 등 2관왕을 차지했다. 그 역사적인 현장으로 가보자.
매기 강 “이 상을 한국, 전 세계 모든 한국인들에게 바친다”
‘케데헌’이 애니어워드 최우수 애니메이션상·감독상에 이어 크리틱스 초이스 시상식 애니메이션상·주제가상, 골든글로브 시상식 애니메이션상·주제가상, 그래미 어워드 OST상 등을 받을 때부터 아카데미 수상은 이미 점쳐졌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장 큰 연중행사이자 영화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행사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디즈니 ‘주토피아2’, 픽사 ‘엘리오’ 등을 제치고 2개 상을 휩쓸자 이는 정말로 현실이 됐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수상 소감을 밝힌 매기 강 감독은 “저와 같은 모습을 한 분들께, 이런 영화에서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저는 지금 이 자리에 있고, 이는 다음 세대는 이토록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 상을 한국, 그리고 전 세계에 계신 모든 한국인들에게 바친다(This is for Korea, and for Koreans everywhere)”고 밝혔다. 이 날 실시간으로 시상식을 보고 있던 전 세계의 한국인들 모두 이 대목에서 울컥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이날 X(구 트위터)에 “케이팝의 역동적 에너지와 한국적 감성, 그리고 독창적 상상력이 어우러져 우리 문화의 지평을 한층 넓혀 주었다”며 “감독님의 수상 소감처럼, 우리가 주인공인 이야기가 세계의 중심에서 빛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김구 선생께서 꿈꾸셨던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는 나라’가 어느덧 현실이 되고 있다”며 감사를 전했다.
이어진 축하 무대에서 저승사자들의 퍼포먼스로 시작해 북을 든 사물놀이패에 이어 이재, 오드리 누나, 레이 아미가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들처럼 금색 장식이 달린 흰 무대 의상을 입고 등장했다. 이들이 ‘Golden’을 열창하자 K-응원봉을 흔들며 환호하는 엠마 왓슨, 기네스 팰트로도 카메라에 잡혔다. 1세대 헌터스 3인조의 모습과 함께 판소리로 시작하던 영화의 오프닝을 한 편의 뮤지컬처럼 오마주한 오스카 ‘Golden’ 무대는 장삼을 걸친 무용수들이 선보이는 공연으로 이어지며 아카데미 시상식을 한국의 음반 시상식으로 만들었다.
극중 헌트릭스가 ‘Golden’을 불렀을 때를 연상시키는 골드와 화이트 톤의 연미복 느낌 재킷을 입고 무대에 오른 가수 이재는 ‘Golden’이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수상하자 “어릴 때는 케이팝을 좋아한다고 놀림을 받았지만, 지금은 모두가 한국어 가사로 우리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 곡은 성공이 아닌 회복에 관한 상이라고 생각한다”며 눈물 섞인 소감을 전했다. ‘로컬’과 ‘퍼포먼스’의 영역으로 치부됐던 K-팝이 더 이상 ‘이색적인 수입품’이 아닌, 글로벌 엔터테인먼트의 메인 스트림에 올랐다는 걸 보여준 순간이었다.
이전 CNN 인터뷰에서 오스카상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수백만 명이 이 영화를 봤다. 영화의 성공 자체로 이미 수많은 예술가와 젊은 사람들에게 이미 영감을 줬다”고 밝혔던 매기 강 감독은 오스카 수상 후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한국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솔직히 무척 자랑스럽고 또 한편으론 안도감이 든다”고도 전했다.
글로벌 누적 시청 수 5억 회를 넘기며 역대 넷플릭스 영화와 시리즈를 통틀어 최고 흥행을 기록한 ‘케데헌’은 OST 역시 전지구적 인기를 끌었다. ‘Golden’은 빌보드 1위에 8주간 머물기도 했다. 영국 BBC는 이에 대해 오스카 수상 이후 기사에서 “오늘날 BTS와 블랙핑크 같은 밴드들은 서구권 시상식의 단골 참석자가 되었고, 스트레이 키즈와 뉴진스 같은 신생 그룹들은 점점 더 다양한 국적의 멤버들을 자랑하고 있다”며 “대부분의 K-팝 곡들이 중독성 있는 가사와 댄스 음악인 반면 ‘케데헌’에서는 노래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역할을 하는데, 가사 역시 자신을 발견하고 정체성을 찾는 깊은 의미를 지녔다”고 분석했다.
이재와 함께 공동 작사 작곡가인 IDO(좌로부터 이유한, 곽중규, 남희동)
이날 시상식에는 공동 작곡 작사가인 마크 슈넨블릭과 더블랙레이블 소속 작곡가인 아이디오(IDO, 이유한·곽중규·남희동), 서정훈(활동명 ‘24’) 등도 무대에 올랐으나 이유한 작곡가에게 마이크를 넘기자 조명 이 꺼지고 광고영상으로 넘어가 논란이 됐다. CNN 방송은 “K-팝 팬 들을 분노케 할 장면이 벌어졌다. 더 시간이 있었으면 더 위대한 순간이 될 수 있었다.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넷플릭스는 지난 13일 ‘케데헌’ 속편 제작을 공식 발표했다. 최근 BBC 인터뷰에서 매기 강 감독은 “한국인 영화감독으로서 관객들이 이 한국 이야기와 한국 캐릭터들에서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사실에 엄청난 자부심을 느낀다”며 “우리가 구축한 세계에는 보여줄 것이 훨 씬 더 많고, 그것을 여러분께 선보일 수 있어 매우 기대된다.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전했다.
매기 강 감독은 이어진 백스테이지 인터뷰에서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받는 순간이 제작자로서 가장 감격스러웠다”며 “이번 수상으로 한국분들을 실망시키지 않아 무척 안도감이 든다”고 밝혔다. 한편 이재는 오스카 무대에서 공연한 것에 대해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이 무대에 섰다는 것,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이렇게 경험하는 것 모두 정말 놀라운 일”이라고 밝혔다. 백스테이지에서 이어진 Q&A 내용을 소개한다.
Q. (매기 강 감독에게)이번 수상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이고,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매기 강 한국 영화와 한국에 관한 영화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제작자로서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 중 하나가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오스카상을 수상하시는 것을 지켜봤을 때다. 우리가 한국 문화를 담은 영화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고 나니 마치 두 분야에서 모두 트로피를 거머쥔 기분이다. 한국분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솔직히 무척 자랑스럽고 또 한편으론 안도감이 든다.
Q. 오늘 밤의 수상이 K-팝과 한국 콘텐츠 역사에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는가? 또 창작자로서 K-팝이 음악을 넘어 애니메이션과 영화를 통해 아카데미에 도달한 이 순간을 어떻게 보는가?
매기 강 K-팝이 처음 생겨나기 시작한 90년대부터 팬이었고, 그때부터 사랑해왔기 때문에 지금 K 팝이 전 세계 관객들에게 사랑 받는 걸 보는 건 내게 큰 의미가 있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 문화의 모든 면면을 영화에 담아낼 수 있어 영광이고, 그것이 전 세계 다른 문화권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다는 점이 한국인 제작자로서 매우 뜻깊다. 앞으로도 애니메이션 분야에서 다양한 문화를 다루는 영화들이 더 많이 나오길 바라며, 특히 애니메이션에서 그런 시도들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Rei Ami, EJAE, and Audrey Nuna perform “Golden” onstage during the 98th Oscars® at the Dolby® Theatre at Ovation Hollywood on Sunday, March 15, 2026.
Q. (이재에게)아카데미 수상자로 이 자리에 선 기분은?
이재 정말 너무나 감사하고 영광스럽고 믿기지가 않는다. 모두 정말 열심히 노력해왔다. 이 노래는 진정한 협업의 결과물이다.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어주신 매기 강, 크리스 애플한스 감독님께 감사드 리고 싶다. 감독님들을 포함한 모두가 이 곡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고, 모두의 노력이 결실을 보게 되어 정말 행복하다. 오드리 누나와 레이 아미에게도 정말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Q. 한국 팬들에게 소감 한마디?
이재 한국에 있는 팬분들께 너무 감사 드린다. 정말 영광이고, 이 노래와 영화를 모두 한국에 바친다.
IDO 지금은 외국에 있지만, 한국에서 음악을 하고 한국분들과 다 같이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 계신 분들을 포함해서 저희 회사에 있는 모든 분들과 피땀 흘려가면서 노력했던 성과가 아카데미 상인 것이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
KPOP DEMON HUNTERS 스틸컷
Q. 아카데미 무대에서 대단한 열기 속에 ‘Golden’ 무대를 선보인 소감?
이재 정말 많이 떨렸지만 아카데미와 같은 엄청난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어서 영광이고 감사했다. 특히 한국계 미국인 여성으로서 이 무대에 섰다는 것,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이렇게 경험하는 것 모두 정말 놀라운 일이다. 공연 도입부에 한국 전통 음악이 나왔는데, 그 점이 특히 자랑스럽다.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미국인으로서, 어릴 때는 음식이나 문화 때문에 괴롭힘을 당할까 봐 한국인으로서의 모습을 숨기고 싶었던 순간도 있지만 지금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정말 자랑스럽다. 리허설을 하면서도 우리의 뿌리와 진정으로 교감할 수 있었고, 그저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Q. 못다 한 감사인사를 전한다면?
IDO 가족들과 24, 그리고 동료 IDO 멤버들, 테디 박 형에게 감사 드리고 싶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영광이다.
출처: 이재 인스타그램(@ejae_k)
오스카 휩쓴 ‘케데헌’…외신들 “글로벌 ‘케데헌’ 현상” BBC “K-팝 넘어 K-에브리싱 시대”
영국 BBC는 15일 “오스카 수상작 ‘Kpop Demon Hunters’는 어떻게 전 세계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How did Oscar winner Kpop Demon Hunters win hearts the world over?)”라는 기사에서 예일대학교 사회학 교수이자 K-팝 연구자인 그레이스 카오(Grace Kao) 교수의 입을 빌어 ‘케데헌’이 전 세계적 인기를 끈 이유를 사회 문화적 이유로 설명한다.
BBC 갈무리
BBC“어른들이 보는 것은, 세계를 휩쓸고 있는 멈출 수 없는 한류의 새로운 물결이다.” 예일대 교수인 카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케데헌’은 한국이 얼마나 멋진지를 보여주는 전환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단순히 K-팝만이 아니라, 일종의 K-모든 것(everything)이라고 생각해요.”
WSJ 갈무리
WSJ(월스트리트저널) “‘케데헌’은 K-팝 팬덤의 힘을 영화 산업으로 확장시킨 사례다. 영화 전반에 한국 미술·민속 요소를 촘촘히 녹여내 K‑팝의 글로벌 영향력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한국계 여성 감독의 수상은 다양성과 포용성을 상징하며,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할리우드 리포터 갈무리
할리우드 리포터 “‘케데헌’의 세 멤버가 오스카 무대에서 영화 같은 ‘골든(Golden)’ 공연으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이재는 할리우드 리포터 인터뷰에서 “어릴 때는 사람들이 한국이 어디 있는지도, 무엇인지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골든’이 전 세계에서 불리고 있고, 모두가 한국어 가사를 한 단어 한 단어 따라 부르고 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라고 밝혔다.
AP News 갈무리
AP News “이 영화의 승리는 시상식 시즌을 지켜본 이들에게는 거의 놀라움이 아니었다. 악마 사냥과 안무 사이에는 한국 신화와 K팝 아이돌 문화를 결합한 자기 수용의 창의적인 이야기가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