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 하나 두고…고리 1호기 해체, 2호기는 재가동 임박
한수원, 해체기술 17개 개발 완료
기술 자립률 90%로 세계시장 도전
2호기는 설비개선작업 95% 마쳐
이달 말 운영 앞두고 마무리 점검
정부 “중동 정세 대비 철저” 주문

18일 찾은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발전소 단지는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풍경을 보여줬다. 재가동을 앞둔 고리 2호기 주변에는 각종 설비와 자재가 놓여 있었지만 해체 수순에 들어간 고리 1호기 터빈 건물 3층에는 안전을 위해 설치한 그물망과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관련 미사용설비’라는 스티커만 눈에 띄었다. 한때 전력을 생산하던 설비들은 멈춰 섰고 현장은 철거와 정리, 오염 제거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바뀌어 있었다.
고리 1호기는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국내 최초 원전이다. 2017년 영구 정지됐고 지난해 6월 해체 승인을 받으면서 본격적인 해체 절차에 들어갔다. 국내에서 상업용 대형 원전이 해체되는 첫 사례다. 정부는 2031년까지 사용후핵연료 반출을 마친 뒤 방사선 구역 해체를 시작하고 2035년부터는 잔류 방사선을 제거한 뒤 토양과 지하수를 정화해 부지를 산업부지 수준으로 복원할 계획이다. 해체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약 17만 톤으로 추산된다. 이 중 1만 3000톤가량은 원자력환경공단으로 보내 관리하고 나머지는 일반 폐기물로 분류해 처리된다.
고리 1호기 해체는 단순한 건물 철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제염과 절단, 폐기물 처리, 부지 복원 등 해체 전 과정에서 축적되는 경험은 향후 다른 원전 해체에도 적용할 수 있는 표준 공정으로 남는다. 해체를 통해 공정과 장비, 규제 대응 경험을 쌓고 이를 반복 가능한 산업 역량으로 전환할 수 있는 것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2050년까지 전 세계에서 영구 정지가 예정된 원전은 최대 588기에 이른다. 반면 현재까지 해체가 완료된 원전은 25기에 불과하다. 그만큼 해체 시장은 실제 경험을 확보한 국가와 기업에 기회가 큰 분야다. 한국이 기술 자립도를 높일수록 장비, 엔지니어링, 폐기물 관리 등 연관 산업까지 함께 키울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국수력원자력은 2021년 원전 해체 핵심 기술 58개 중 미확보 상태였던 17개 기술에 대한 개발을 완료했다. 현재 기술 자립률은 90% 이상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수원은 국내 첫 해체 경험을 발판으로 세계 원전 해체 시장에 진출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고리 1호기가 해체 산업의 출발점이라면 고리 2호기는 중동 정세 불안 속에서 에너지 안보의 핵심으로 주목 받는다. 국제 에너지 가격의 변동성이 커지면서 정부가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해 원전 가동률 제고에 나섰기 때문이다.
고리 2호기는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했다. 설비용량은 650㎿로 설계수명에 따라 2023년 4월 8일 가동이 중단됐다. 이후 지난해 11월 한국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계속운전 허가를 받아 2033년 4월까지 추가 운전이 가능해졌다. 한수원은 재가동을 위해 케이블과 전기 부품 등 검증 수명이 만료된 설비를 바꾸는 등 설비 교체 약 60건, 환경 개선 약 480건을 진행해 전체 설비 개선 작업의 95%를 마쳤다. 한수원 관계자는 “바닥 도장 등 남은 작업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라며 “이달 25일 마지막 검사를 거쳐 허가 일정에 따라 이르면 이달 29일에서 4월 초 사이 기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장에서는 사고 대응 설비도 함께 점검됐다. 고리 2호기는 모든 교류 전원이 상실됐을 때 8시간 이내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설비를 갖추고 있다. 특히 유지 설비에 대용량 전원을 공급하는 3.2㎿ 발전차가 핵심 설비로 꼽힌다. 한수원 관계자는 “사고 시 최대 필요한 전력이 2800㎾ 수준이어서 3.2㎿ 발전차면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이 발전차는 이동형으로 설계됐다. 한수원 측은 “건물형 설비로 설치하면 내진 설계를 새로 해야 하지만 이동형 설비는 고정 장치만으로 허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냉각수를 공급하는 저압·고압 이동형 펌프차와 사용후핵연료 저장조 외부 주입 설비 등도 함께 점검했다.
정부는 이달 11일 에너지 대책회의에서 고리 2호기를 비롯한 정비 원전의 재가동을 주문했다. 중동 사태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오르자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도 이달 중동 사태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를 열고 원전 가동률을 60% 후반대에서 80%까지 높이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최원호 원안위 위원장은 “중동 상황으로 에너지 공급의 중요성이 커진 가운데 한수원의 어깨도 무거울 것”이라며 “고장이 나면 가동률이 떨어지는 만큼 절차에 따라 남은 작업을 차질 없이 진행해달라”고 말했다.
김지원 기자 o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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