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메친 재능·열정…세계를 잇는 ‘방탄칠성’

한겨레 2026. 3. 1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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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ㅣ ‘전인미답’ BTS가 걸어온 길
2022년 3월 방탄소년단 ‘퍼미션 투 댄스 온 스테이지’ 서울 공연 모습. 빅히트 뮤직 제공

기적(奇跡):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그것은 기적이었다. 일단은 북두칠성의 기적 같은 거라고 해두자. 북두칠성을 올려다본 적이 있는가. 손을 맞잡은 듯 나란히 서서 사이좋게 국자 모양의 꼭짓점을 이루고 있지만, 저 7개의 별, 사실 서로 너무나 멀다. 이를테면 국자의 머리에 있는 두 별, 두베와 메라크는 빛의 속도로 45년을 날아야 서로 만날 수 있다.
“우리 만남은 수학의 공식/ 종교의 율법 우주의 섭리/ 내게 주어진 운명의 증거/ 너는 내 꿈의 출처”(‘DNA’ 중)
한마디로 미친 녀석들이었다. 가진 거라곤 재능과 열정뿐이었다. 서울 홍대 앞 500석 롤링홀 공연이 꿈인 일산 랩 꿈나무 김남준(RM), 교가부터 트로트까지 닥치는 대로 짓던 대구 음악 천재 민윤기(슈가), 중1 때부터 색소폰을 불었던 대구 미남 김태형(뷔), 현대무용을 전공한 부산 춤꾼 박지민(지민), 연기가 좋아 아이돌이 되기로 한 안양의 김석진(진), 스트리트 댄서로 광주를 휘젓던 춤왕 정호석(제이홉), ‘슈퍼스타케이(K)3’ 촬영장에서 7개 기획사의 명함을 받았지만 “(인터넷에서 본) 남준 형의 랩과 영어가 멋있어서” 빅히트에 온 막내 전정국(정국)까지….

저마다 랩에 미쳤다. 춤에 미쳤다. 노래에 미쳤다. 하지만 이 7명의 미친 사내는 한동안 그 어디에도 미치지 못했다. 에스엠(SM), 와이지(YG), 제이와이피(JYP) 같은 브랜드가 붙지 않은 아이돌, 연습생도 다 나가고 이제 이렇게 7명만 남은 아이돌, ‘방탄소년단’이란 이름의 아이돌이 보여줄 것은 열정과 실력뿐이었다. 2013년 6월13일, 소리 소문 없이 그들이 데뷔했다.

“별거 없는 중소 아이돌이 2번째 이름이었어/ 방송에 잘리기는 뭐 부지기수/ 누군가의 땜빵이 우리의 꿈”(‘바다’ 중)
합숙소는 스스로 꾸민 ‘홈스쿨’이 됐다. 회사의 트레이닝과 별개로, 랩에 낯선 멤버들에겐 래퍼 출신 멤버들이 붙었다. 힙합 영상과 음악을 함께 보며 태도와 기술을 익혔다. 춤이 어색한 멤버들에겐 춤꾼 멤버들이 있었다. 케이팝이 칼군무를 원한다면, 칼군무 그 이상을 보여주기로 했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이들의 데뷔곡 ‘노 모어 드림’(No More Dream)에서 지민이 멤버들의 등을 밟고 허공을 가르는 퍼포먼스는 그렇게 각자 자신들의 ‘최애’를 보러 온 관객들의 탄성까지 자아냈다.
“하루의 절반을 작업에 쩌 쩔어/ 작업실에 쩔어 살어 청춘은 썩어가도/ 덕분에 모로 가도 달리는 성공가도”(‘쩔어’ 중)
저마다 다른 취향과 출신지, ‘흙수저 아이돌’의 열정 말고도 그들에겐 유별난 디엔에이(DNA)가 있었다. 그것은 유전인자라기보다 후천적 의지가 빚은 가치 사슬이었다. 바로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이 한다는 것이다. 방시혁 당시 빅히트 대표와 ‘지금 우리의 꿈과 고민’에 대해 토의하며 가사를 썼고, 프로듀서 피독과 ‘세계 힙합, 전자음악의 트렌드’를 논하며 비트를 만들고 선율을 뽑았다. 이후 발표되는 거의 모든 곡에는 방시혁, 피독, 슬로우래빗 등의 제작진 옆에 어김없이 멤버들의 이름이 박혔다.

활발한 소셜미디어 활동은 대자본, 많은 인력, 레거시 미디어의 벽을 뚫을 비밀병기가 돼줬다. 합숙소에서 요리를 하거나, 랩과 춤에 몰두해 연습하고, 자기들끼리 게임을 하는 걸 몇초부터 길게는 수십분까지 메이크업 없이, 편집 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마침 트위터(현 엑스)·유튜브의 영향력이 세계적으로 폭증하던 시기였다. 엔(N)스크린 시대가 열렸다. 전세계의 젊은 세대는 거실 티브이(TV)와 부모 곁을 떠나 태블릿피시(PC)와 스마트폰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발견했다. 각자의 방에서 시작한 각자의 항해는 마침내 하나의 신대륙을 찾아냈다.

“Lonely lonely lonely whale/ 이렇게 혼자 노래 불러/ 외딴섬 같은 나도/ 밝게 빛날 수 있을까/ … / 끝없는 무전 하나/ 언젠가 닿을 거야/ 저기 지구 반대편까지 다”(‘Whalien 52’ 중)
그들이 홀린 듯 따라간 외로운 고래의 아름다운 노랫소리. 그 출처는 7개의 섬. 세계에서 모인 젊은이들은 ‘김남준’ ‘전정국’ 같은 낯선 지구 반대편의 외계어 같은 음절들을 난생처음 소리 내 발음해보았다. 이 소년단은 ‘힙합 아이돌’이란 이율배반의 테제를 비웃던 이들 앞에서, 흙수저 아이돌이란 시선을 보내던 이들 뒤에서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처럼…. 그냥 어쩌다 친구 맺은 소셜미디어 이웃처럼 일상을 수없이 쪼개서 보여주는 한편, 긴 호흡의 서사로 종이책이 무색해진 시대에 장편소설 같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다. ‘학교 3부작’ ‘청춘 3부작’ 등의 앨범에서 가사 속 단어들은 외로운 별처럼 떠다녔다. 그들이 내뱉는 랩, 애타게 외치는 노래들은 작은 화면으로 엿봤던 소년들의 일상과 서로 얽히고설켜 직선의 서사, 곡선의 은유, 뫼비우스의 세계로 커져갔다. 자신을 사랑하겠다는 다짐은 그들의 것에서 수많은 ‘나’의 것이 됐다.
“왜 자꾸만 감추려고만 해/ 네 가면 속으로/ 내 실수로 생긴 흉터까지/ 다 내 별자린데”(‘Answer: Love Myself’ 중)
데뷔한 지 2년, 2015년은 방탄소년단의 해외 팬덤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한 시점이다. 티브이가 다른 걸 보여줄 때 그들의 ‘화양연화, 파트 원(pt.1)’ 앨범과 ‘아이 니드 유’(I NEED YOU) 뮤직비디오가 온라인상에서 폭발을 일으켰다. ‘팔로’ 물결은 파도가 되고 너울이 되더니 현상이 됐다. 트위터 팔로어 수 500만 달성에 5년이 걸렸지만 1000만이 되는 데는 그로부터 불과 7개월이 소요됐다. 팔로어는 어느 때부턴가 한달에 100만명꼴로 급증하기 시작했다.

2017년부터는 그들이 멀리서 동경만 했던 미국 시장이 눈앞에 다가왔다. 다섯번째 미니앨범 ‘러브 유어셀프 승 허’(LOVE YOURSELF 承 ‘Her’)가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빌보드 200) 7위에 오르더니 수록곡 ‘마이크 드롭’(MIC Drop)은 싱글 차트(핫 100) 18위에 안착했다. 이듬해인 2018년,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는 마침내 아시아 가수 최초로 빌보드 200의 맨 꼭대기를 차지했다.

“이젠 목적도 모르는 채/ 달리지 않아/ 꿈이 없어도 괜찮아/ 네가 내뱉는 모든/ 호흡은 이미 낙원에”(‘낙원’ 중)
2020년, 방탄소년단은 결국 전인미답의 고지에 다다른다. ‘다이너마이트’(Dynamite)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것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도 7주 연속 2위에 만족했던 곳. 1963년 사카모토 규 이후 아시아 가수 중 누구도 오르지 못한 곳. 그해 이들은 그래미 어워즈의 ‘최우수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후보에 들었다. 저스틴 비버, 레이디 가가 등 그들조차 화면으로만 보던 이들과 인사를 나누는 게 아니라 경쟁하게 됐다. 미국의 유수 티브이 쇼에 출연하고, 연말 해넘이 행사에서 무대를 펼치고, 전세계의 스타디움을 보라색의 물결로 채워가기 시작했다.

이들의 든든한 지원군, 아미에게는 국경도 언어도 없다. 마치 ‘방탄어권’처럼 그들은 그들의 언어로 말한다. 방탄소년단의 가사를 한글로 몸에 새기고 ‘아이 러브 유’(I love you), ‘즈 템’(je t’aime), ‘아이시테루’(愛してる) 대신 ‘보라해’라고 서로를 향해 외친다.

고양, 대구, 광주, 부산을 ‘마 시티’(Ma City)라 부르던 팔도강산의 소년들은 이제 오대양 육대주의 사나이가 됐다.

“네가 어디에 살건/ 내가 어디에 살건/ 한참을 달렸네/ 나 다시 또 한참을 달렸네”(‘Ma City’ 중)
그리고 이제 전세계의 로망 시티, 서울의 중심 광화문에 섰다. 믿기지 않는 여정이었다. 각자의 집에서 출발한 7명의 소년이 또 다른 집에 닿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다가 세계에 사랑하는 법을 가르쳤다.

전기적(傳奇的): 기이하여 세상에 전할 만한 것

하늘을 올려다본다. 북두칠성의 7개 별은 사실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도 실은 아주 멀리에서 달려와 함께 반짝이는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은 우연히 일어난다. 또 다른 일들은 누군가의 간절한 소망으로 만들어진다. 먼 훗날, 약간의 우연과 빛의 질주와 간절한 소망에 관한 어떤 이야기가, 북두칠성의 이야기처럼 전해질지도 모르겠다. 세계로 이어지고 우주 공간 밖으로 뻗어나간, 서울의 밤하늘을 다시 올려다본다.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

임희윤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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