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개발하려고 멸종위기종 보호 푼다?...미국 흔드는 논란
미국 정부가 멕시코만 해상 석유 개발 확대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멸종위기종 보호를 예외적으로 해제할 수 있는 위원회가 30여 년 만에 소집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절차 위반을 문제 삼은 소송이 제기된 가운데, 보호와 개발 사이의 충돌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모습이다.
18일(현지시간) 환경단체 생물다양성센터(Center for Biological Diversity)는 미 내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내무부가 멸종위기종위원회(Endangered Species Committee), 이른바 'God Squad(신의 위원회)'를 소집하는 과정에서 법이 정한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단체는 법원에 위원회 회의 진행을 중단시키고, 향후 멸종위기종 보호 예외 승인 절차 자체를 제한해달라고 요청했다.
이번에 소집된 위원회는 이달 31일 회의를 예정하고 있다. 문제는 소집 과정에서 사전 공지와 관련 기관 협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고 측은 회의 자료 접근 방식이 명확히 안내되지 않았고, 회의가 일반에 공개되지 않은 채 온라인 중계만 예정된 점 등을 들어 행정절차법(Administrative Procedure Act) 위반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보호풀 수 있다"...'God Squad' 뭐길래
논란의 중심에 있는 'God Squad'는 미국 멸종위기종법(Endangered Species Act, ESA)에 근거한 위원회다. ESA는 개발사업이 멸종위기종의 생존을 위협할 경우 이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강력한 환경법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예외 조항을 두고 있으며, 그 최종 판단을 맡는 기구가 바로 이 위원회다.
위원회는 개발사업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이익에 해당하고, 대안이 없으며, 종 보전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마련됐다고 판단할 경우 멸종위기종 보호를 예외적으로 해제할 수 있다.
이 결정이 내려지면 해당 사업은 법적 보호 제한을 받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 특정 종의 생존 여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God Squad(신의 위원회)'라는 별칭이 붙었다.
이 제도는 1978년 도입됐지만 실제로 가동된 사례는 매우 제한적이다. 약 50년 동안 실질적인 표결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으며, 이번 소집은 1992년 이후 처음이다. 그만큼 이 위원회는 최후의 수단으로 간주해 왔다.
이번 소집이 특히 주목받는 이유는 시점이다. 미 내무부는 위원회 소집을 발표한 같은 날, 영국 BP가 추진하는 멕시코만 해상 석유 개발 사업 '카스키다(Kaskida)'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이 사업은 약 50억 달러 규모로, 심해 시추를 포함하는 대형 프로젝트다.
현지 환경단체들은 이 두 결정이 사실상 연결돼 있다고 보고 있다. 개발 승인 이후 멸종위기종 보호 규제가 사업 추진의 장애가 될 수 있는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해 위원회를 소집했다는 것이다.
다만 뉴욕타임스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정부 측은 이와 관련한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시민단체들은 "개발을 막는 것이 아니라, 보호 장치를 없애기 위한 절차가 가동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51마리 남은 멸종위기종…정책 결정이 곧 생존 문제

미국 국립해양수산청(NMFS)은 이미 해당 지역의 석유·가스 개발 활동이 이 종의 존속을 위협할 수 있다는 공식 판단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따라 선박 속도 제한, 고래 탐지 및 회피 의무 등 보호 조치가 마련돼 왔다.
하지만 이번 위원회가 가동될 경우, 이러한 보호 조치가 예외로 인정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즉, 개발 자체를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고래 보호를 위해 마련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완화되거나 제거될 수 있는 구조다.
라이스고래의 상황은 특히 취약하다. NOAA 연구에 따르면 이 종이 감당할 수 있는 인간 유발 사망 한계는 연간 0.1마리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상 한 번의 추가 사망도 개체군 유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태다.
NOAA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선박 충돌로 인한 사망이 누적될 가능성도 제시한 바 있다. 이 경우 개체군 유지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멕시코만 해역은 과거에도 대형 해양 오염 사고를 겪은 지역이다. 2010년 발생한 '딥워터 허라이즌(Deepwater Horizon)' 원유 유출 사고는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해양 오염 사고로 기록된다.
당시 수백만 배럴의 원유가 바다로 유출되며 해양 생태계 전반에 걸친 피해가 발생했고, 해양포유류와 조류, 어류 개체군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남겼다. 라이스고래 역시 이 사고로 개체 수 감소와 서식지 훼손을 겪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처럼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적인 개발 압력이 더해질 경우, 과거와 유사한 생태계 영향이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사안은 단순한 개발 갈등을 넘어, 멸종위기종 보호 제도의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도 해석된다.
ESA는 세계적으로 가장 강력한 환경법 중 하나로 평가되지만, 동시에 'God Squad'와 같은 예외 조항을 통해 보호를 해제할 수 있는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 즉, 보호가 원칙이지만 특정 조건에서는 예외가 허용되는 구조다.
이 사례는 그 예외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보여준다. 특히 이미 정부 기관이 "종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판단한 활동에 대해 예외가 적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논쟁이 커지고 있다.
"다른 방식, 멸종위기종 보호 약화하는 같은 구조"
국내 역시 개발사업과 멸종위기종 보호가 충돌하는 상황은 반복돼 왔다. 특히 환경영향평가 과정에서 영향이 축소되거나 절차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면서 유사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녹색연합이 2024년 발표한 <환경영향평가법 개정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사업 과정에서 전략환경영향평가 단계에 제시된 보전 의견이 이후 본안 평가에서 충분히 반영되지 않거나, 사업자가 제출한 계획이 대부분 유지된 채 조건부 협의로 승인되는 사례가 확인됐다.
또한 최신 생태자료를 반영하지 않거나, 보호 가치가 높은 지역임에도 이전 평가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방식으로 개발 가능 범위를 넓히는 문제도 지적됐다. 실제 사례에서는 개발이 제한되는 1등급 생태지역 비율이 크게 확대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영하지 않은 채 사업이 추진되기도 했다.
보고서는 이러한 구조를 두고 "환경영향평가가 개발 여부를 판단하는 제도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개발 계획을 전제로 조건을 조정하는 절차로 작동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제주 제2공항 사업에서는 환경영향평가 과정과 실제 정책 판단 사이 괴리가 드러났다. 보고서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당시 환경부(현 기후에너지환경부)와 전문 검토기관은 남방큰돌고래, 맹꽁이, 멸종위기 조류 등에 대한 영향 우려를 제기하며 보완 필요성을 강조했지만, 최종적으로는 보완이 이뤄졌다는 이유로 조건부 협의가 이뤄졌다.
특히 6개 검토기관 중 5곳이 환경 영향 우려를 제시했음에도 사업 추진이 가능하다고 판단된 점은 평가 결과가 개발 여부를 좌우하기보다 조정 절차로 작동한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거짓 작성으로 확인된 사례도 있다. 2018년부터 시행된 양산 사송지구 도로 개설사업에서는 환경영향평가서가 거짓 작성된 것으로 확인됐음에도, 재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채 사업이 이어졌다. 환경영향평가법은 거짓 작성이 확인될 경우 재평가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재평가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경 협의가 진행된 사례로 지적된다.
종합하면 보호 여부가 법적 결정이든, 평가 과정이든 행정 절차 안에서 결정된다는 점에서 공통된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보호와 개발 사이의 판단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그 과정이 충분한 정보와 검토를 바탕으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