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대교구 첫 본당, 레지오 마리애 발상지 산정동성당, 우리나라 첫 준대성전 우뚝 성 십자가 보목·소화 데레사 유해 등 안치 옛 교구청 역사박물관서 가톨릭 역사 한눈에 한국전쟁 속 종교 탄압·순교의 아픔 간직
전남 목포시 산정동에 위치한 가톨릭목포성지.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전남 목포시 산정동 언덕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도시 한복판에서 문득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듯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붉은 벽돌의 옛 교구청 건물과 두 개의 종탑을 갖춘 웅장한 준대성전, 그리고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첫 도입지를 알리는 기념관이 한 공간 안에 어우러진 가톨릭목포성지다. 이곳은 순례자에게는 신앙의 자리이자, 여행자에게는 호남 가톨릭의 역사를 한눈에 만나는 문화 공간이다.
가톨릭목포성지의 시작은 189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이 세워졌고 이후 목포본당은 호남 선교의 거점이 됐다. 1937년 지목구가 설정되면서 지금의 역사박물관 건물은 전남 최초의 교구청으로 사용됐다. 이후 병원과 수녀원, 간호학교 등으로 쓰이다가 2017년 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단장됐다. 지금은 광주대교구의 역사와 한국 레지오 마리애의 발자취를 함께 보여주는 전시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목포가톨릭성지 전경(준대성전).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성지의 중심에는 산정동 준대성전이 있다. 광주대교구 최초의 본당이 세워졌던 가톨릭 목포 성지에 순교자와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첫 도입을 기념해 2020년 완공된 이 성전은 700석 규모의 대성전과 200석 규모의 소성당을 갖춘 네오고딕 양식 건물로, 우리나라 최초 준대성전이다. 준대성전은 역사적·예술적·신앙적 중요성을 인정받아 교황이 특전을 부여한 성전을 뜻한다. 성전은 지난 2021년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바실리카 미노르' 칭호를 받아 한국 교회 안에서도 특별한 상징성을 지니게 됐다.
준대성전 내부 모습.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성전 안으로 들어서면 외관의 웅장함과는 또 다른 아늑한 분위기가 펼쳐진다. 기둥이 시야를 가리지 않아 제대를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고, 스테인드글라스에는 구약과 신약의 주요 장면, 성모의 칠고칠락이 부드러운 빛으로 살아난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건축미 때문만은 아니다. 준대성전에는 세 가지 보물이 모셔져 있다.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혀 숨을 거둔 십자가의 나무 조각으로 전해지는 '성 십자가 보목', '소화 데레사'로 잘 알려진 아기 예수의 성 데레사 유해, 그리고 그의 부모인 성 루이 마르탱과 성 젤리 마르탱 부부의 유해다. 제대 중심과 양옆에 모셔진 이 유해들은 순례자들에게 깊은 경건함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박물관과 성전,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을 차례로 둘러보다 보면 목포가 왜 한국 가톨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 특히 이곳은 가톨릭교회가 공인한 대표적인 평신도 사도직 단체인 레지오 마리애가 한국에서 처음 도입된 장소다.
1953년 산정동본당에서 첫 주회가 시작됐고, 이를 기념해 2017년 최초의 한국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기념관은 지금도 전국 레지오 단원들이 찾는 성지이자 피정과 교육의 집으로 쓰이고 있다.
가톨릭역사박물관은 1937년에 건립된 3층 적벽돌 건물로 광주대교구 최초의 교구청 건물이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역사박물관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등록문화재 제513호인 옛 교구청 건물은 외형 자체로도 의미가 깊다. 중앙의 반원 아치와 필라스터(Pilaster)로 장식된 현관, 수평 돌림띠와 반복되는 수직 창문은 1930년대 선교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박물관 관계자에 따르면 지하 공간은 지금은 카타콤과 겟세마니 방, 다락방 등 묵상 공간으로 꾸며져 있지만, 본래는 주방과 창고였다고 한다. 목포 지역에서만 나오는 유달산 응회암과 당시 최고급 자재를 써 지은 건물이라는 것도 흥미롭다.
광주교구 제4대 교구장인 미국인 패트릭 브레넌 몬시뇰, 산정동성당 주임 아일랜드인 토머스 쿠삭 신부, 존 오브라이언 보좌 신부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 이곳을 지키다 북한군에 의해 체포돼 온갖 수모와 고통을 받았다. 사진은 이들을 기리는 순교자 현양 십자가.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하지만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 당시에는 교회 탄압 등의 아픔도 겪었다. 북한군에 의해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간첩으로 몰려 순교하거나 행방불명됐고, 당시 교구장과 본당 신부들 또한 피신하지 않고 이곳에 남았다가 체포돼 고초를 겪었다. 성지 곳곳에 남은 순교의 흔적은 화려한 건축과는 다른 결의 무게를 전한다.
산정동성당서 내려다 본 목포 시내 전경.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
목포성지는 신앙의 역사만 품고 있는 공간은 아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목포 시내 풍경은 성지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다. 오래된 항구도시의 지붕과 바다, 골목들이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에서 순례자는 물론 일반 여행객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성모칠고 묵상길과 천사의 길, 메모리얼타워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도시와 신앙, 역사가 한자리에 포개진 독특한 감각을 만나게 된다.
사순 시기를 맞은 최근에는 성 십자가 보목을 중심으로 한 특별 순례 여정도 진행되고 있다. 준대성전 산정동성당은 '보았노라, 만났노라, 살아가노라'를 주제로 신자들이 십자가의 의미를 더욱 가까이 묵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성지의 문은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열려 있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