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재고 고갈 우려에 ‘위기설’ 확산… 정부, 안정 수급에 총력
호르무즈 해협 봉쇄 3주만 지속되도, 제조업 생산비 5.4%↑
UAE서 1800만배럴 긴급 도입... 골든타임 벌어줄듯

이스라엘의 이란 가스전 폭격으로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되는 가운데, 정부는 ‘4월 위기설’ 진화에 나섰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7달러를 돌파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제조업 생산비가 최대 11.8% 폭등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자, 정부와 정유업계는 비축유 방출 등으로 수급 안정을 최우선으로 총력 대응에 나섰다.
지난 18일(현지시간) 이스라엘의 이란 가스전 폭격과 보복 교전 여파로 국제유가는 즉각 반응했다. 이날 북해산 브렌트유는 8% 가까이 폭등하면서 111달러까지 치솟았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역시 100달러를 넘기며 시장의 공포를 키웠다.
이 같은 유가 폭등의 배후에는 호르무즈 해협의 봉쇄 위기가 자리 잡고 있다. 전 세계 원유 해상 무역의 약 27%, LNG 수출의 22%가 통과하는 이 핵심 통로가 사실상 마비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대체할 해상 항로가 사실상 부재한 ‘초크 포인트(병목지점)’가 막히면 공급량 자체가 증발한다는 우려가 시장을 덮친 것이다.

산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해협 봉쇄가 3주간 지속되는 단기 충격만으로도 국내 제조업 생산비는 5.4% 상승하며, 만약 3개월 이상 장기화될 경우 그 상승 폭은 최대 11.8%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한국은 원유 외에도 나프타 등 주요 산업 원료의 중동 의존도가 높아, 에너지 가격 상승과 원자재 공급 차질이 겹치는 ‘복합 리스크’에 노출된 상태다.
에너지 안보에 비상이 걸리자 정부는 대응 수위를 높였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18일 15시부로 원유에 대한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했다. 그러면서 ‘최후의 보루’인 비축유 카드도 동시에 꺼내 들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비축유는 120일가량으로, 민간이 보유한 비축유까지 더하면 206일분이다.
이는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정해놓은 일평균 순수입량 기준이다. 국내 일일 석유 소비량인 280만 배럴을 기준으로 하면 두 달 남짓이다. 더구나 실제 석유화학 업체들이 생산량을 늘릴 경우 고갈 속도는 더 빨라질 수 있다.
국내 도입 원유의 약 69.1%를 차지하던 중동 물량 중 95% 이상이 통과하던 후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막히면서 기존 도입 물량의 약 70%는 차질을 빚고 있다. 특히 호르무즈를 통과한 마지막 선박이 내주 입항을 마치면 이후 물량은 우회 노선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부는 우선 아랍에미리트(UAE)와 긴급 공급 체계 가동에 사활을 걸었다. 청와대는 18일 UAE로부터 1800만배럴의 원유를 긴급 도입을 발표했다. 앞서 지난 6일 도입된 600만 배럴을 포함하면 총 2400만 배럴을 확보한 셈이다. 이는 우리나라 일일 소비량의 8배 규모로, 재고 소진 시점을 4월 말 이후로 늦출 수 있는 ‘골든타임’을 벌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UAE와 장기 수급 안정을 위한 ‘원유 공급망 협력 MOU’ 체결에도 합의했다. 구체적으로는 UAE 국적선 3척(600만 배럴)과 한국 국적선 6척(1200만 배럴)을 동원해 수송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기에 산업부는 이번 주 내로 IEA와 공조해 2246만 배럴의 비축유 방출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는 차량 부제 등을 강제적인 수요 억제책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공급 확대 노력과 시장의 수급 원리가 충돌하는 지점이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물가 안정을 위해 실시 중인 ‘석유 최고가격제’가 국제 제품 가격 상승분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정유사들의 손실 부담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국제유가 상승 폭에 비해 소비자가격이 제한된다면 소비자들의 사재기를 부추겨 비축 물량을 빠르게 고갈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구나 수급의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정유 공장은 가동률을 낮추는 방향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이는 결국 국내 공급 부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라진 기자 realjin03@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