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삼성물산 부당 합병으로 피해” 이재용 상대 5억 소송 본격 시작

김정화 기자 2026. 3. 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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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4일 청와대에서 열린 청년일자리와 지방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간담회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피해를 봤다며 국민연금공단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5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본격 시작됐다. 이 회장은 형사 재판에서 합병 관련 혐의에 대해 무죄가 확정됐는데, 이번에 민사 재판에서 손해 발생 여부와 책임 범위를 다시 상세히 따져보게 됐다. 재판에서 원고인 국민연금 측이 “삼성그룹 경영권 부당 승계를 위한 불법 합병이었다”고 주장하자 이 회장 등 피고 측은 “합병 과정에서 위법한 행위는 없었다”며 팽팽히 맞섰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재판장 정용신)는 19일 국민연금이 이 회장과 삼성물산 법인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의 첫 변론을 진행했다. 2024년 9월 국민연금이 소송을 제기한 뒤 1년6개월 만이다.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최치훈·김신·이영호 전 삼성물산 사장,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 총 9명이 피고로 이름을 올렸다. 손해배상 청구액은 5억100만원이다.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제일모직 주식 1주를 삼성물산 주식 약 3주와 바꾸는 안을 결의하고 임시 주주총회를 거쳐 같은 해 9월 합병했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최대 주주였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특검 수사 과정에서 이 합병 비율이 삼성 일가에 유리하게 책정됐고, 국민연금은 손해가 예상되는데도 정권 외압으로 찬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은 국민연금에 합병 찬성을 압박한 혐의로 각각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이 회장도 박 전 대통령에게 삼성 경영권 승계와 지배구조 개편을 도와달라며 뇌물을 건넨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이 확정됐다. 다만 이 회장이 경영권 승계를 목적으로 삼성물산 합병을 추진하고 회계 부정을 저질렀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가 확정됐다.

이날 재판부는 양측이 제출한 준비서면 등으로 파악한 쟁점을 설명하고, 각각 발언 기회를 부여했다. 우선 국민연금 측 대리인은 “그룹의 핵심 계열사였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미래전략실을 중심으로 이재용에 대한 지배구조를 개편하려는 작업이었다”고 했다. 이어 “피고들의 위법 행위는 크게 이재용을 비롯한 삼성 관계자들이 합병 비율을 의도적으로 산정해서 위법을 행한 것이 한 측면, 국민연금 내부자였던 문형표와 홍완선이 이 행위를 방조한 것이 또 다른 측면”이라고 했다.

2019년 국민연금은 불법 합병으로 6815억원의 손실을 봤다고 밝혔으나, 그 외 단체나 기관들이 따로 산정한 액수는 약 2000억원대에서 6700억원대로 제각각이었다. 이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향후 손해액을 산정하는 데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며 책임 유무를 먼저 따져보고, 이후 손해액을 심리해달라고도 요청했다.

반면 이 회장 측 대리인은 “합병 과정에서 위법 행위를 저지른 사실이 없고, 합병으로 인해 삼성물산 주주들이 손해를 입은 바도 없다. 이는 관련 민·형사 사건에서 명확히 확인됐다”며 “특히 이 사건과 쟁점이 동일한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에서도 법원이 이미 원고가 주장하는 내용을 배척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합병이 이뤄진 지 11년이 지났다. 원고 주장은 수년에 걸친 재판을 모두 무위로 돌리고, 처음부터 하나하나 반복하자는 것과 다름없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삼성물산 합병이 부당했는지, 이 과정에서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는지를 먼저 정리해달라고 밝혔다. 또 “빠른 진행을 위해 손해배상 책임의 발생, 상당 인과관계, 손해배상 책임 범위를 정리해달라”고도 했다.

이어 이 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1600억원 상당을 지급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에 불복해 낸 취소소송에서 지난 2월 승소한 판결문과 메이슨 ISDS 중재 판정문 등도 제출해달라고 밝혔다. 다음 변론은 오는 6월4일 오후 3시 열린다.

김정화 기자 cle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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