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發 데카콘 등장 이어질 것…초대형 펀드 만들어 기업 키우자

이유진 기자(youzhen@mk.co.kr) 2026. 3. 19.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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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하기 좋은 나라' 좌담회
AI기업 성장모델 다른데…제조업시대 정책 적용돼
정부 앞서야 기업도 편해
상장까지 가도 돈줄 막히면 글로벌 기업 육성 꿈도 못꿔
코스닥 활성화 펀드 조성을

창업 생태계는 창업가 홀로 만들어갈 수 없다. 창업가를 키우는 환경과 잠재력에 투자하는 자본, 실패와 재기를 지원하는 정책이 맞물려야 건강한 생태계가 만들어진다. 매일경제는 창간 6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 창업 리셋' 기획을 진행하며 창업 생태계에서 뛰고 있는 다양한 구성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좌담회를 열었다. 이들은 "한국은 이제 초기 창업 시스템은 잘 갖춰져 있다"면서도 "창업이 제2의 취업이 되는 시대,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을 넘어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이 나오는 시대를 만들려면 벤처투자 시장 활성화와 지역 창업 장려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매경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김학균 한국벤처캐피탈협회 회장, 송민용 한국창업보육협회 회장, 김경환 성균관대 글로벌창업대학원장, 이세영 뤼튼테크놀로지스 대표, 조민경 대학생IT연합 창업동아리(SOPT) 회장이 참석했다.

-한국에 혁신 창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이세영 대표=그렇지 않다. 과거 인터넷 시대부터 한국은 뛰어난 포털 기업을 배출했다. 2000년대 초 전 세계적으로 초고속인터넷망이 깔리던 시기에 '다크파이버(사용되지 않는 광섬유 네트워크)' 문제가 컸다(당시 통신사들은 인터넷 트래픽이 늘 것을 예상하고 광케이블을 크게 늘렸으나 케이블 대부분이 사용되지 않아 통신 가격이 폭락하고 관련 기업이 파산하는 공급 과잉 문제가 발생했다). 하지만 이때 한국에서는 온라인 게임 기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초기 형태의 콘텐츠 기업이 탄생해 실수요를 만들었고, 다크파이버 문제를 해결하는 산업이 등장했다. 이런 창업 사례는 이후 다음 세대 창업자에게 큰 힘이 됐다.

모두가 (AI가 없던 시대에서) 인공지능(AI)을 만드는 식의 창업을 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지금 우리 시대에는 이미 AI라는 큰 판이 깔려 있다. 창업 열풍을 불게 하려면 이 기술을 어떻게 응용할지, 이 기술을 활용할 창업가에게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를 찾아야 한다.

-AI로 혁신 기업이 나오기 더 좋은 환경이 됐나.

이 대표=기술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가가 서비스를 구현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매우 짧아졌다. 데스밸리(스타트업이 창업 후 자금 조달·수익 창출에 실패해 도산 위기에 처하는 시기)로 향하는 기업도 줄었다. 아이디어를 서비스로 구현해 시장에서 테스트하고 실패하면 다른 아이디어를 시도하는 데 드는 비용이 훨씬 줄어서다. 불과 5년 전엔 'AI가 바꿀, 존재하지 않는 시장'을 투자자에 설명하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설명하기 전에 바로 아이디어를 서비스로 만들어서 보여주면 되는 시대다.

조민경 회장=대학생 창업도 AI 도입 이후 변화가 크다. 이전에는 대학생 팀이 아카이빙이나 매칭 등 생활밀착형 플랫폼을 많이 만들었다. 최근에는 AI를 통해 사용자 맥락을 이해하고 실행까지 도와주는 에이전트 제품이 많다. 소규모 팀이라도 사용자가 어떤 문제를 불편해하는지를 명확하게 정의하고, 최소기능제품(MVP)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다는 게 달라졌다.

김학균 회장=AI는 언어장벽도 없앴다. 이제까지 토종 플랫폼 기업은 주로 한국 시장에서만 운영되는 로컬 서비스 회사였는데, AI가 언어장벽을 없애면서 해외 진출이 쉬워졌다.

-한국을 떠나 본사를 해외에 두는 플립 스타트업도 있다. 한국에서의 창업은 어떤 이점이 있나.

이 대표=한국은 기술 수용도가 높고, 기술 인프라도 잘 갖춰졌다. 한국에서 서비스를 만들면 기꺼이 돈을 지불하려는 고객이 많고, 이 고객들이 주는 피드백의 질도 높다. 뤼튼도 한국에서 서비스를 검증한 뒤 곧장 글로벌로 나갔다. 과거엔 한국 시장이 작다는 게 한계였지만, 이제는 시장 규모에 대한 부분도 많이 해소됐다.

-한국은 투자 회수 경로 대부분이 기업공개(IPO)를 통한 상장에 쏠려 있다.

김 회장=국내에선 인수·합병(M&A)을 통한 회수 성공 사례가 적다. 세제 혜택 등을 통해 제도적인 뒷받침도 필요하다. 코스닥시장이 더 활성화돼야 하는 측면도 있다. 특히 기업이 상장한 후 자금 지원 수단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나라 벤처투자 규모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미국의 80% 정도로 작지 않다. 문제는 상장 이후다. 미국은 나스닥 상장 이후에 공모 자금 외에도 전환사채(CB), 신주인수권부사채(BW) 등을 발행하거나 유상증자를 통해 모을 수 있는 자금 규모가 상장 전보다 커진다. 반면 우리나라는 상장 이후 조달 가능한 투자금이 제한적이다. 데카콘 기업이 나오려면 상장 후 자금 조달에 대한 부분을 풀어줘야 한다. 그러면 비상장 투자, 민간 투자가 늘고 창업도 늘어난다.

-상장 후에 기업이 자금 조달하기 어려운 이유는.

김 회장=코스닥시장이 벤처투자 규모에 비해 한참 낙후돼서다. 혁신 생태계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인데도 연간 3조~4조원 벤처투자에 어울리는 규모에 머무른다. 기관투자자 비중도 너무 낮다. 코스닥시장에 대규모 장기 펀더멘털 기관투자자를 유치해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 개인투자자 중심의 코스닥시장으로서는 기업들이 장기 기술 개발에 매진하기 어렵다. 정부가 조성하기로 한 국민성장펀드에서도 10조원가량은 코스닥시장에 배치하고, 민간 자금 20조원을 매칭해 30조원 규모의 코스닥 활성화 펀드를 조성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AI시대에는 유니콘·데카콘 기업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을까.

이 대표=향후 유니콘이나 데카콘 기업은 이전과 달리 매우 빠른 속도로 나올 수 있다. 또 한 유니콘이 채용하는 인력은 적을 수 있지만, 대신 유니콘 개수가 엄청나게 많아지는 시대가 온다. 미국에서는 이미 유니콘 형태가 이렇게 바뀌고 있다. 한국도 AI시대에는 유니콘이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 될 수 있게 포스트 유니콘 관련 지원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벤처 특화 대출이 있다. 매출이 주 단위·월 단위로 급성장하는 AI기업이 등장하면 이런 속도에 맞는 특화대출제도가 필요하다. 또 해외로 사업을 확장할 때 현지법인 설립이나 시장별 규제 대응 등이 중요해지는데, 이런 정책이 미리 준비된다면 기업에는 큰 힘이 된다.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투자 라운드를 거듭할수록 해외 자금 비중이 높아진다. 이때 한국 자본이 적절히 해외 자본과 함께 매칭돼 성장하면 글로벌·국내 간 균형 잡힌 거버넌스가 가능해진다. 이 과정을 반복해 국내 시장에도 더 많은 유니콘 기업이 머물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딥테크 창업도 학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김경환 대학원장=좋은 예가 카이스트(KAIST)다. 이광형 KAIST 총장이 창업을 강조하면서 혁신 창업이 늘었다. 하지만 모든 대학이 KAIST처럼 할 수는 없다. 대다수 대학은 여전히 교육과 연구개발이라는 이전 세대 역할에 주력한다. 교수 평가항목이 주로 논문이나 학생지도 위주다 보니 그쪽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미국처럼 개발된 기술로 창업하고, 기술을 이전하고 사업화하는 3세대 미션으로 가야한다.

<시리즈 끝>

[이유진 기자 정리 / 사진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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