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칼 경영권 분쟁 임계점 접근···관건은 ‘산은 지분 매각' 시점
산은이 추후 ‘공적 자금 회수’ 명분에 지분매각하면 구조적 불안정성 노출
호반이 산은 지분인수 시 경영권 순식간에 역전 가능성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한진그룹 지주사 한진칼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의 기류가 심상치 않다.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인 구도를 유지하는 듯 보이나 수치를 보면 분쟁 임계점에 다다랐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건은 2대 주주인 호반그룹의 지분 매집 기세와 산업은행의 지분 매각 시점이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호반그룹은 한진칼 지분을 조용히 추가 매집하며 최대주주 측을 턱밑까지 추격했다. 호반은 작년 5월 지분율을 18.46%로 확대한 이후에도 매집을 이어가며 현재 18.78%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써 최대주주인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특수관계인 포함 20.56%)과의 지분율 격차는 1.78%포인트로 좁혀졌다.
수치상으로는 격차가 좁혀졌지만 당장 경영권 분쟁이 발발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시선이다. 조원태 회장 측이 확보한 확고한 우호지분 영향이다. 조 회장의 직접 지분은 20.56%에 불과하지만 여기에 우군으로 분류되는 델타항공(14.90%)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10.58%)의 지분을 포함하면 약 46.04%로 안정적인 우호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호반의 지분(18.78%)과 비교하면 27.22%포인트나 앞서는 압도적인 우위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 구도가 내포하고 있는 구조적 불안정성에도 주목한다. 이 우호지분 46%는 특정 시점이 되면 균열이 생길 수 있는 한시적인 임시 방어막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구조적 불안정성 심화와 산업은행의 불가피한 엑시트
한진칼 경영권 구도의 구조적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산업은행의 지분 보유 명분과 향후 처리 방향이다. 산업은행은 현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통합이라는 공익적 목적을 전제로 지분 10.58%를 보유 중이다. 즉 통합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조원태 회장의 백기사 역할을 자처하지만 통합 작업이 완료되고 나면 명분은 상실된다.
통합 완료 후에는 국책은행이 되레 특정 민간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해 준다는 재벌 특혜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또한 수천억원에 달하는 공적 자금을 회수해야 한다는 국회와 정치권의 압박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 실제 산업은행은 작년 상반기 국회 정무위원회에 "통합작업 완료 후 대한항공 지분을 매각하겠다"고 보고한 바 있다.

◇실탄 충분하고 항공업 집념 강한 김상열 회장, 산은 지분인수 가능성?
이러한 상황에서 호반그룹의 존재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호반 관계자는 지분 확대에 대해 여전히 "최근 지분 투자 역시 단순 투자라는 메시지는 변함이 없다"고 설명하지만 세간에서는 지배력 확대를 위한 조용한 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장내에서 소량씩 분할 매수하는 방식, 지분 격차를 1%대까지 좁힌 점, 그리고 무엇보다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의 과거 행보를 고려할 때 단순 투자라는 주장은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이다. 김 회장은 과거 아시아나항공의 모회사인 금호산업 인수전에도 뛰어들었을 만큼 항공업에 대한 집념이 강한 인물로 알려진다.
호반그룹의 현금동원력은 조원태 회장을 압도한다. 작년 4월 공시된 2024년 연결재무상태표를 보면 호반건설에서만 즉시 가용할 수 있는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9711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단기 금융상품 3550억원을 포함하면 최소 1조3000억원 이상의 자금을 언제든 동원할 수 있다. 조원태 회장은 지난 2024년 10월까지 약 600억원의 상속세를 분할 납부하느라 주식담보대출까지 낸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만약 산업은행이 통합 완료 후 지분 10.58%를 매각하고, 이를 호반그룹이 블록딜 등의 방식으로 전량 인수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면 경영권 구도는 순식간에 역전된다. 이 경우 호반의 지분율은 단숨에 약 29% 수준으로 상승한다. 이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측의 직접 지분 20.56%를 8%포인트 이상 상회하는 수치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조 회장은 델타항공(14.90%)이라는 우군만으로는 경영권을 방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새롭게 주요 주주로 등장한 국민연금(5.44%)의 행보도 중대한 변수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재의 안정적인 구도는 사실상 백기사 역할인 산업은행이 매각으로 이탈하는 순간 허물어질 수 있다"며 "한진칼 측에서는 델타항공과의 결속력을 더욱 공고히 하고, 산업은행의 지분매각시 이를 인수해 줄 제3의 백기사를 물색하는 등 포스트 통합 시대의 방어전략을 수립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진칼 관계자는 "(지분 이슈와 관련) 공식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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