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선수촌의 변화와 인천선수촌의 기대

이종헌 2026. 3. 1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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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헌 한양대학교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

기성세대인 필자에게 '선수촌'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은 태릉선수촌이다. 1966년 개촌 이후 2017년 충북 진천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태릉선수촌은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들의 요람이자 종합 트레이닝 캠프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태릉 일대는 태릉과 강릉 조선왕릉이 자리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구역으로 시설 확장이 쉽지 않았다. 늘어나는 훈련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결국 선수촌은 진천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현재는 1000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시설로 발전해 세계적으로도 주목받는 선수촌으로 자리 잡았다. 이 밖에도 고지대 훈련을 위한 태백선수촌이 있으며 과거에는 제2훈련원 역할을 했던 진해선수촌도 운영된 바 있다.

'선수촌'이라는 개념은 원래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 기간 선수들이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조성된 '올림픽 빌리지(Olympic Village)'에서 유래했다.

최초의 선수촌은 1924년 프랑스 파리 하계올림픽에서 등장했다. 당시 선수들이 비용 문제 등으로 숙소를 구하기 어려워지자 대회 조직위원회가 임시 오두막을 지어 선수들에게 제공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193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올림픽부터 선수촌은 본격적으로 건설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1978년 세계사격선수권대회 참가 선수들을 위해 건립된 서울 광장동 워커힐아파트가 최초의 선수촌으로 평가된다. 이어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때 잠실동 아시아선수촌아파트가 건설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는 오륜동 올림픽선수기자촌아파트가 마련됐다. 이후에도 국제대회를 계기로 선수촌이 조성됐으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는 구월동에 구월아시아드선수촌이 건립되어 대회 이후 민간에 분양되었다.

해외의 경우 국가대표 훈련시설은 더욱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미국은 콜로라도 스프링스 올림픽훈련센터를 통해 국가대표 전용 훈련 시스템을 구축했고, 일본 역시 국가트레이닝센터를 운영하며 올림픽 대비 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은 여러 국가대표 훈련기지를 분산 운영하고 있으며 영국은 대학과 연계한 스포츠과학 기반 훈련으로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과거 대회 기간 숙식을 해결하는 공간이었던 선수촌은 이제 스포츠과학과 전문 훈련시설을 갖춘 종합 트레이닝센터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지역을 대표하는 선수들을 위한 선수촌 형태의 시설이 늘어나고 있다. 경북 김천, 충북 진천, 강원 강릉, 전남 목포 등에서는 지역 특성에 맞춘 훈련시설과 선수촌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인천 역시 지난해 인천광역시선수촌을 새롭게 개촌했다. 노후화된 기존 시설을 철거하고 3년 만에 새로운 보금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과거 숭의동 체육회관을 활용하던 선수촌은 이제 문학동에 자리 잡으며 인천 엘리트 체육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문학경기장과 야구장을 중심으로 스포츠 인프라가 스포츠 선진국처럼 스포츠과학 기반의 종합 트레이닝센터로 발전하기를 기대한다. 인천선수촌이 단순한 숙소를 넘어 미래 인천 체육을 이끌어갈 선수들을 키우는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이종헌 한양대학교 미래인재교육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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