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독자권익위원 칼럼]우리는 언제부터 이웃의 이름을 모르게 되었을까?

주재환 2026. 3. 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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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환(광주사랑나눔공동체 대표)
주재환 광주사랑나눔공동체 대표

아파트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는 생각보다 무겁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닫히는 몇 초 사이, 우리는 종종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각자의 휴대전화 화면으로 시선을 떨군다. 같은 층에 살면서도 이름은커녕 얼굴조차 익숙하지 않은 이웃들이 늘어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웃의 이름을 모르게 되었을까?

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동네는 지금보다 훨씬 느슨하면서도 가까운 공간이었다. 저녁이 되면 골목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섞였고, 부모들은 서로의 집을 자연스럽게 드나들었다. 누가 누구의 엄마인지, 어느 집 아이가 몇 학년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특별히 친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든든했다. 동네는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관계가 살아 있는 생활 공동체였다.

지금 우리의 삶은 훨씬 편리해졌다. 택배는 문 앞까지 오고, 음식은 버튼 하나로 도착한다. 필요한 대부분의 일은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해결된다. 편리함은 시간을 아껴주었지만, 동시에 사람을 만날 이유도 조금씩 줄여버렸다. 예전에는 우연히 마주치는 순간들이 관계의 시작이었는데, 이제는 그런 우연 자체가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특히, 도시의 아파트 문화는 '가까이 살지만 멀리 지내는' 생활 방식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이 중요해지면서 서로 말을 거는 일조차 조심스러워졌다. 층간소음 문제나 공동주택 갈등이 뉴스에 오를 때마다 우리는 더 조용히, 더 조심스럽게 살아야 한다고 배운다. 관계를 맺기보다 관계를 피하는 것이 편안해진 사회가 된 셈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이웃을 보면 먼저 인사를 하는 분위기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오간다. 하지만 그뿐이다. 인사를 나눈 뒤 우리는 다시 각자의 층에서 내리고, 서로의 이름도 모른 채 일상으로 돌아간다. 어색함은 없지만, 그렇다고 관계가 시작되었다고 느껴지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람은 결국 혼자 살아가기 어려운 존재다.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이 되는 사람은 멀리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옆집 사람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지역사회에서 작은 사고나 위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웃의 관심과 도움이 큰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평소에는 스쳐 지나가던 사람들이지만, 서로를 알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가 위기의 순간을 다르게 만든다.

최근 들어 지역 봉사나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다시 늘어 나고 있다. 거창한 이유라기보다 '사람을 좀 만나고 싶어서' 시작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함께 물건을 나누고, 행사 준비를 하며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는 과정 속에서 낯설던 사람들이 조금씩 이웃이 되어 간다. 관계는 특별한 계기가 아니라 반복되는 작은 만남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웃과의 관계는 거창할 필요가 없다.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인사를 건네는 일, 마주쳤을 때 가볍게 안부를 묻는 일, 아이들이 함께 놀 때 잠시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일 정도면 충분하다. 이름을 외우지 못하더라도 얼굴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관계는 시작된다. 서로를 알아본다는 감각은 생각보다 큰 안정감을 준다.

물론 모든 사람이 가까운 관계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순간도 많다. 그러나 완전히 단절된 삶은 어느 순간 우리를 예상보다 더 외롭게 만든다. 사회적 연결망이 약해질수록 작은 갈등은 쉽게 오해로 번지고, 이해보다 거리감이 먼저 자리 잡는다. 서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거창한 공동체가 아니라, 일상의 작은 관심일지도 모른다. 예전처럼 골목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더라도, 지금의 방식에 맞는 새로운 이웃 관계는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지역 모임, 학교와 마을 활동 등 다양한 접점이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문제는 기회가 없어서가 아니라 먼저 한 걸음을 내딛는 사람이 줄어들었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가끔은 생각해본다. 만약 오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넨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아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작은 인사가 반복된다면, 언젠가는 서로의 이름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공동체는 거대한 계획으로 만들어지기보다, 이런 사소한 순간들이 쌓이며 형성되는 것이니까?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각자의 삶을 이어가지만,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이웃의 이름을 다시 알게 되는 일은 거창한 사회 변화가 아니라 서로를 한 번 더 바라보는 일에서 시작될지 모른다.

문이 닫히기 전, 잠깐의 여유를 내어 인사를 건네는 일. 그 작은 행동이 잊고 지냈던 공동체의 감각을 다시 불러올지도 모른다. 우리가 언제부터 이웃의 이름을 모르게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다시 서로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순간은 어쩌면 오늘일지도 모른다.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