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버티니 푸틴 웃는다…우크라 전쟁 더 유리해지고 원유로 떼돈

천호성 기자 2026. 3. 19.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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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모스크바 인근 노바-오가료보 관저에서 각료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EPA 연합뉴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이 출구 없는 전쟁을 이어가는 가운데 러시아가 미소를 감추고 있다. 방공 미사일 ‘품귀’로 러시아의 적수 우크라이나가 곤란해진 데다, 유가 급등이 러시아 자금 사정에 숨통을 틔워주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우방 이란에 드론 기술·교리를 전수하며 전쟁에 간접 관여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8일(현지시각) 비비시(BBC) 방송 대담에서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게 이란에서의 장기 전쟁은 ‘플러스’ 요인”이라며 “이는 미국의 비축 물자 고갈과 방공 무기 생산 능력 소진을 초래한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은 한 달에 60∼65기의 (방공) 미사일을 생산한다. 연 700∼800기 수준”이라며 “그런데 미-이란 전쟁 첫날에만 803기를 썼다”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미사일 격추에 쓰는 방공 미사일인 패트리엇 등이 세계적으로 부족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러시아 매체 이즈베스티야는 미-이란 전쟁이 군사 자원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가 됐다며 “우크라이나는 이스라엘·걸프 국가들과 자원을 나눠써야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치솟는 유가 역시 푸틴 숨통을 틔운다. 전쟁 전 배럴당 72달러였던 브렌트유는 이날 110달러를 넘었다. 또 미국은 국제 유가를 안정시킨다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도입된 대러시아 무역 제재를 완화하고 있다. 지난 12일 러시아산 원유 수출을 1달 동안 풀어줬다.

르피가로에 따르면, 크렘린 고문 출신의 정치 평론가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유가 상승 덕분에 러시아는 하루 1억5000만달러를 벌고 있다”며 “지금 상황은 현대 역사에서 가장 큰 에너지 위기의 시작일 뿐이다. 이는 좋은 일”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로선 미국이 벌인 전쟁이 ‘우크라이나 침략을 중단하라’는 서방 요구를 묵살할 구실도 된다. 서방도 국제법을 어겨 다른 나라를 침공하니 피장파장이라는 얘기다. 푸틴은 지난달 28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전 최고지도자가 공습으로 사망하자 “인간의 도덕과 국제법의 모든 규범에 대한 냉소적 위반”이라고 꼬집었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드론과 로켓 등 무기가 대규모로 저장된 지하 터널 영상을 지난 2일 공개했다. 지하 터널에는 드론 및 미사일 등이 상당량 비축돼 있다. 파르스 통신 텔레그램 갈무리

이에 러시아는 이란이 전쟁을 계속 하도록 막후에서 돕는다. 드론 분야가 대표적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부터 이란제 샤헤드-136 자폭 드론을 수입했고, 지금은 게란-2라는 이름으로 자체 생산한다.

르몽드에 따르면 신형 샤헤드는 재밍(전파 교란) 저항을 위한 ‘코메타-M’ 위성 수신기를 달고, 통신 안테나를 4개에서 8개로 늘렸다. 이 수신기는 지난 1일 키프로스의 영국 공군 기지에서 격추된 샤헤드 잔해에서도 발견됐다. 르몽드는 “(이란 드론은) 그 덕에 방공망을 돌파할 수 있었다. 러시아산 전자 부품도 잔해에서 나왔다”며 “이는 러시아-이란이 서로의 기술 혁신을 얼마나 깊이 통합했는지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러시아는 방공망 교란 노하우도 전수했다. 판자로 만든 값싼 미끼 드론을 보내 적 방공 미사일을 낭비시킨 뒤, 폭탄을 단 ‘진짜’ 자폭 드론을 날리는 식이다. 저공비행이 서방 레이더를 피하기 쉽다는 우크라이나전 교훈도 이란이 활용한다. 여기에 러시아가 제공한 위성 사진으로 이란은 미군 미사일·레이더 기지를 더욱 정교하게 맞히고 있다.

존 힐리 영국 국방장관은 12일 브리핑에서 “이란의 공격 패턴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하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며 “이란 전술 뒤에 푸틴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 않다”고 했다.

다만 러시아는 대규모 무기 공급은 자제하고 있다. 이란은 러시아의 최신예 방공망인 S-400 구매를 원해왔지만 계약하지 못했다. 이에 구형 S-300을 쓰고 있다. 이 무기는 1월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군사작전을 벌여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생포할 당시 카라카스에도 깔려 있었지만, 미 항공기를 한 대도 떨구지 못했다.

기존에 계약된 러시아제 휴대용 방공무기 베르바 500기와 Su(수호이)-35 전투기 16대도 인도되지 않았다.

이는 러시아가 우방 이란이 오래 버티도록 도우면서도, 미국 심기는 긁지 않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무역 제재 추가 해제 등 미국한테 ‘얻을 것’이 남았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편을 들지 않도록 관계 유지도 필요하다.

푸틴은 미국·이란 양쪽과 대화가 가능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해 이런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고 르몽드는 짚었다. 예컨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 근처 남캅카스에서 추진 중인 자원 개발 사업이 이란의 보복 공습 타깃이 되지 않도록 러시아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장피에르 필리우 파리정치대학 교수는 르몽드에 “5일 이란이 드론 2기로 아제르바이잔을 공격하는 등 이 지역 긴장 고조의 위험이 크다. 푸틴은 이란이 백악관 프로젝트를 공격하지 않도록 억제할 유일한 인물”이라고 썼다.

실제로 지난 9일 푸틴은 트럼프와 1시간 통화하며 미-이란 전쟁에 대해 논의했다. 트럼프는 통화 뒤 “푸틴은 매우 건설적인 역할을 하고 싶어한다”며 “그는 도움이 되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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