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안받습니다" 갈 곳 없어 파병간 여성 최초 707 출신 '투스타,' 정체 알고보니

이시은 2026. 3. 19. 15:40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YTN라디오(FM 94.5) [YTN 뉴스FM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 방송일시 : 2026년 03월 19일 (목)

□ 진행 : 박귀빈 아나운서

□ 출연자 : 강선영 국민의힘 의원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를 바랍니다.

◆ 박귀빈 : 대한민국 여군 창설 76년. 긴 세월 동안 '별'은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금녀의 구역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여기, '여자라서 안 된다'는 편견을 실력으로 잠재우고대한민국 건군 이래 최초의 여성 소장, 최초의 여성 항공작전사령관이라는 새로운 역사를 쓴 인물이 있습니다. 수천 명의 장병을 지휘하던 야전 사령관에서, 이제는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여의도의 전략가로 변신한 분입니다. <슬기로운 라디오생활> 'K-여성정치' 시민학교, 오늘 그 두 번째 수업입니다. 강인한 부드러움으로 국가 안보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선생님을 모십니다. 대한민국 여군 제1호 소장 출신, 강선영 의원입니다. 의원님, 어서오세요.

◇ 강선영 : 안녕하십니까.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 소장, 국민의힘 강선영 의원입니다. 이렇게 청취자 여러분 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 박귀빈 : 어서 오십시오. 대한민국 여군 제1호 소장 출신이십니다. 저희가 'K-여성 정치 시민학교' 다 보니까 강선영 선생님으로 제가 불러드릴 거고요. 저도 그렇고, 군을 잘 모르다 보니까 제1호 소장 출신이시잖아요. 소장이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계급이?

◇ 강선영 : 군대는 계급이 위관, 영관, 그리고 장성 이렇게 구분돼요. 그중에서 위관은 소위, 중위, 대위. 영관은 소령, 중령, 대령. 그다음에 장군은 네 개 계급으로 나눠져 있어요. 준장, 소장, 중장, 대장. 그중의 소장, 소위 말해서 '투스타'를 소장이라고 합니다.

◆ 박귀빈 : 투스타 소장 출신의 의원이신데요. 그러면 군복 입으신 날이 훨씬 더 많으실 것 같아요.

◇ 강선영 : 제가 66년생이니까요. 제가 올해 딱 만 60세가 됩니다. 생일은 아직 안 지났지만. 근데 31년 8개월 군복을 입었으니까 군복 입은 날이 사복 입은 날보다 훨씬 깁니다.

◆ 박귀빈 : 어떠세요? 군복을 입고 있을 때랑 사복을 입었을 때랑 어떨 때가 더 편하세요?

◇ 강선영 : 지금은 21년도에 전역하고, 한 5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군복을 입었을 때가 훨씬 편한 거 같아요. 사복은 어색하고 잘 안 어울리는 거 같고.

◆ 박귀빈 : 지금은 '의원님' 불리시잖아요. 요즘에 어떠세요?

◇ 강선영 : 군인이라고 생각하면 평상시에 늘 생각하는 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한다, 이런 생각을 주로 하지 않습니까? 근데 국회의원이 됐어요, 그사이 잠깐 학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기도 했지만. 크게 제가 생각할 때 살아온 게 군복이 더 길었던 것처럼 국가를 위한다는 본질에 있어서는 큰 차이는 없는 거 같고, 그런 의미에서 군인에서 군복을 벗고 사복을 입은 현재에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근무하는 거 같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박귀빈 :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일에 지금도 똑같은 마음으로 일을 하고 계신다고 했는데, 그래도 집중하고 있는 현안은 조금 달라지셨잖아요. 요즘엔 어디에 집중하고 계세요?

◇ 강선영 : 군인은 그 자체가 부여된 임무가 명확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주적, 북한에 대한 대비 태세, 군사 안보 태세에 집중한다면 지금은 조금은 국가 안보를 폭넓게, 군사적 분야에서 폭넓게 국가 안보 분야를 대한민국의 국익도 생각하고, 국민의 일상도 안전하게 지키는 확장된 의미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측면으로 넓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 박귀빈 : 더 많이 고민을 하시겠네요. 강선영 의원님은 '최초'라는 수식어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가 어쩌다 보니까 이 자리에 다 오신 분들이 최초의 수식어를 쭉 오랫동안 함께 하셨던 분들이에요. 아무래도 여성 정치, 여성에게 있는 장벽을 넘으신 분들께 저희가 말씀을 듣다 보니까, 이렇게 모시게 되는데, 여군 최초의 소장, 최초의 여성 항공 작전 사령관. 군대라는 곳은 가장 남성적이고 가장 보수적인 조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거기에서 여성으로서 최초라는 말을 계속 그 길을 걸어오셨어요. 선생님께 최초라는 의미 남다를 것 같아요.

◇ 강선영 : 흘러서 지나고 보니까 최초가 많아요. 제가 당시에는 그것이 최초지만 최초를 인식할 여유도 없었다고 할 수 있어요. 당시에도 여군이 얼마 없을 때 시작을 했기 때문에 저한테 기회가 부여되는 것이 만약에 기회를 부여받았지만, 제가 똑바로 못 하면 후배들한테는 기회조차 오지 않을 것이 아닌가. 개인의 한계가 여성의 한계로 제한될 것이 가장 두려웠던 거 같아요. 그래서 서산대사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어지럽게 다니지 말라.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된다.' 그래서 걸어가기 위해서 바른 발자국을 내기 위해서 노력했던 거 같습니다.

◆ 박귀빈 : 한 40년 전쯤이라고 생각하면 될까요? 1990년도 3월에 군에 최초로 들어갔으니까 36년 전이죠. 그 당시에 여자인데 군인이라는 직업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을 어떤 계기로 하셨을지가 궁금해요.

◇ 강선영 : 그 계기가 오랫동안 여군이 되고 싶다든지 계획을 했다면 아마 못 했을 거 같아요.

◆ 박귀빈 : 그 당시에 실제 군에 여군이 없었을 거 같아요.

◇ 강선영 : 제가 임관, 교육을 마치고 소위 계급장을 단 걸 임관이라고 하는데, 임관했을 때 간호장교는 약간 직역이 달랐어요. 간호사관학교가 있었고, 그때 일반 전투병과에는 없었는데 저희 동기가 35명 임관했는데, 35명을 포함해서 여군 장교가 99명, 100명이 안 될 때 시작했어요. 저희 선배들이 저희를 빼고 60여 명 정도 될 때 군 생활 시작했습니다.

◆ 박귀빈 : 그러면 여자라고 해서, 요즘에는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겠습니다만 봐주는 거 없잖아요. 군대는 더 그럴 거 같은데 훈련 그대로 받으신 거잖아요.

◇ 강선영 : 그렇죠. 훈련 그대로 받았습니다. 보병으로 임관하셔서 특전사 707 특임대대 대테러 임무 부중대장 근무하셨대요. 여군 팀장 하셨고, 707 훈련. 어떤 훈련들을 다 견디신 거예요?

◇ 강선영 : 707은 특전사 중의 특전사라고 합니다. 임무 자체가 대테러잖아요. 그러니까요. 테러는 전시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니잖아요. 평시에도 발생하죠? 그리고 테러에는 다양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훈련은 크게 보면 낙하산 훈련은 기본이고요, 당연히 특전사니까. 그다음에 건물에서 뛰어내릴 때 레펠이라는 게 있어요. 레펠도 훈련하고요. 그다음에 동계 시즌에는 스키 타는 훈련도 하고요. 그다음에 바다에서는 스킨스쿠버 훈련도 하고요. 그런 훈련을 다양하게 하게 됩니다.

◆ 박귀빈 : 이 훈련은 다 대테러 작전에 투입되기 위한 임무로서 훈련을 하신 거잖아요. 사격도 많이 하고. 원래 그런 거 하실 수 있으셨어요?

◇ 강선영 : 갑자기 어느 날 군인 명령이 나면 가거든요. 어느 날 저한테 특전사로 가라고 그랬을 때, '왜 내가 특전사로 가지? 체육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그런데.' 근데 제가 임관 교육을 받을 때 훈련을 받는데, 제가 고소공포증이 없어요. 높은 데서 뛰어내리는 거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던 거 같아요. 그게 체력이 좋다고 해서 고소공포증이 없는 게 아니고. 근데 그런 사람이 드문 거 같아요. 고소공포증이 없어서 간 거 같아요.

◆ 박귀빈 :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담담하게 말씀을 하셔서 청취자 여러분 혹시 오해가 생길까 봐 제가 다시 말씀드리면, 특전사 707 특임 대테러 임무 훈련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그걸 다 견디시고 부중대장까지 근무하셨고, 여군 팀장까지 겸임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육군 그 이후에는 항공병과로 전과를 하셨네요. 헬기 조종사를 하셨네요? 이건 어떻게 또 전과를 하신 거예요?

◇ 강선영 :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특전사는 일단 특전사에 간 군인은 검은 베레모를 쓰기 위해서 모두 공수 훈련을 받아야 돼요. 낙하산을 타는 훈련을 받아야 되는데, 거기서 그걸 받고 낙하산을 타는 사람을 뛰어내리게 하는 조건이 되는 게 강하 조장 임무인데, 점프 마스터. 점프 마스터 훈련을 또 받았어요. 그래서 헬기를 많이 탔어요. 점프 마스터 훈련을 받으면서 치누크 헬기라는 걸 많이 타고, C-130이라는 고정익 비행기를 많이 타고 낙하산을 탔는데, 어느 날 제가 수동적으로 그냥 위에서 뛰어내리는 거 말고 하늘을 날고 싶다. 그래서 항공을 지원하게 됐죠.

◆ 박귀빈 : 그래서 직접 조종을 하신 거예요? 그러면 주로 조종하신 헬기는 어떤 헬기를 조종하신 거예요?

◇ 강선영 : 기동 헬기는 거의 대부분 했어요. 기동 헬기는 UH-1H, UH-60, 그다음에 최근 한국에서 개발한 수리온, 그다음에 치누크라고 하는 CH-47 거의 탔고, 공격 헬기는 제가 대대장을 500MD를 가진 대대장을 해서 공격 헬기는 500MD 타고 다양한 기종을 탔습니다.

◆ 박귀빈 : 남성 동료들과 함께 근무를 하신 거잖아요. 근무하시기는 괜찮으셨어요?

◇ 강선영 : 처음에 편견이 되게 심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는 문화적으로 기계를 다루는 부분에 여자와 같이 근무하는 거에 대해서 편견이 있었어요.

◆ 박귀빈 :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분야가 다 여성이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있을 수밖에 없는 분야를 다 해 오셨거든요.

◇ 강선영 : 그래서 편견이 있었는데, 헬기는 좌우에 두 명이 같이 타게 돼 있어요. 앞뒤로 타는 기종도 있지만. 근데 옆에 탄 사람이 나보다 연구를 많이 하거나 또는 위기 상황에서 조치를 잘하는 사람이랑 같이 타고 싶어 하는 게 인지상정이잖아요. 위험하면 안 되니까. 그러다 보니까 더 많이 공부하고, 같이 조력을 하는 데 있어서 부족하지 않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 비행 연구, 그다음에 항공기 정비 매뉴얼을 많이 공부했습니다. 부족했지만 그래서 인정을 해 준 거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 박귀빈 : 그러면 고소공포증도 없고 이런 말씀 하셨지만, 기본적으로 타고난 여성과 남성의 체격이 있고, 체력이 다르기 때문에, 그걸 그대로 하셨고 거기서 똑같이 동료들과 함께 앞에 나가셨다는 건 동료들보다 두세 배 더 열심히 하셨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셨어요?

◇ 강선영 : 지금은 제가 건강한데 처음에 군에 갔을 때 되게 말랐었어요.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어요, 체력적으로. 돌이켜 보니까 오히려 만약에 특전사를 안 갔다면 아마 조기에 군 생활을 마쳤을지 모르는데, 그 육체는 본인이 단련하는 거에 따라서 본인의 한계를 늘려주는 게 있어요. 그래서 특전사는 아침에 출근하면 한 두세 시간, 퇴근할 때 전에 두세 시간, 하루에 어떨 때는 네다섯 시간씩 체력 단련 합니다. 왜냐하면 체력이 강해야 정신력도 강하니까. 그래서 체력 단련을 지속적으로 한 3년 정도 하니까 몸이 굉장히 건강해져서 그 이후에 오히려 저의 군 생활을 지원해 준 역할이 된 거 같아요.

◆ 박귀빈 : 선생님 말씀 너무 아무렇지 않게 하시는데요. 대단하십니다. 일 시작하기 전에 아침에 두세 시간, 끝나고 나서 또 두세 시간은 몸에 집중해서 체력 단련을 하셨다는 것, 그걸 다 견뎌내셔서 여성 최초의 자리에 계속 가셨던 건데요. 앞서도 말씀하셨지만 남성이 절대 인 곳이 바로 군대라는 조직입니다. 여성이 소수일 수밖에 없고 당시 여성의 규모, 여군의 역사가 어땠나요?

◇ 강선영 :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임관했을 때 여성 장교가 간호장교 빼고 한 99명 됐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근데 여군의 역사는 생각보다 굉장히 깊습니다. 6.25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1948년도에 간호장교가 먼저 있었어요. 그다음에 의외로 여자 항공대가 있었습니다. 여자 항공대가 6.25 전에 있었고, 그다음에 여자 학도 의용군 형태로 또 존재했어요. 그러다가 6.25 전쟁이 나면서 여자 배속장교라고 그래서 여군들이 자발적으로 참전을 했고요. 그 이후 여군 훈련소, 여군단이 창설돼서 제가 90년도 임관할 당시에는 그전에는 병과가 여군이었어요. 간호 또는 여군. 아예 나눠져 있었네요. 근데 90년도 저희부터 병과가 남성들이 있는 병과로 확대되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최초 기수예요. 그래서 보병으로 임관했죠. 그래서 지금은 전 병과에 다 여군이 근무합니다.

◆ 박귀빈 : 그 길을 만드신 분인 거예요, 우리 의원님이.

◇ 강선영 : 만드는 데 동참한 사람입니다.

◆ 박귀빈 : 아, 여군의 역사가 오래됐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 중에는 솔직히 잘 안 느껴지지만 여자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보이지 않는 차별, 벽 분명히 있으셨을 것 같아요.

◇ 강선영 : 군인은 장교들은 어차피 본인이 약간 직업성을 갖고 군 생활을 하잖아요. 그게 보장되려면 저희는 일반 공무원은 진급하지 않아도 9급 말단으로 임기까지 62세까지 할 수 있잖아요. 저희는 계급 정년이 있고, 연령 정년이 있어요. 그 계급에서 어느 정도 진급을 못 하면 전역을 해야 됩니다. 그러다 보니까 남성들은 대부분 가장이라는 전통적으로 남성이 가장이라는 관념에서 남성들 위주의 있다 보니까 진급을 하는 데 경쟁이 되게 심해요. 근데 여성이 임관했을 때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또 보직의 기회가 많지 않아요. 근데 보직이라는 것은 근무하는 직종인데, 그것이 곧 진급과 연관이 되거든요. 여성이 최초로 많이 가다 보니까 여성에게 보직 기회가 많지 않아요. 결과적으로 진급 기회도 많지 않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진급 공석이 진급 발표 전에 있는데, 공석이 0에서 1이에요. 진급이 그해당도엔 없을 수 있다는… 계속 0에서 1인 경우를 뚫고 왔는데, 제가 여기 오기 전에 생각해 보니까 어떻게 그럼 장군이 됐을까 생각해 보니까 제가 소령 때 진급을 했는데 저를 받아주는 부대가 없는 거예요. 영관 장교 최초로 항공 장교에서 영관 장교로 거의 된 편인데. 해서 받아주는 데가 없어서 해외 파병을 갔어요, 동티모르에. 해외 파병을 갔다 오니까 보직 기회가 됐죠. 대대장을 또 마쳤어요. 중령 대대장을 마쳤는데 또 갈 데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연합사를 갔어요. 그런 것들이 제 인생의 커리어가 돼서 좋은 경력으로 인정받고, 진급이 된 거 같아요.

◆ 박귀빈 : 그때 나를 받아주는 데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굉장히 두껍고 큰 벽인 거잖아요.

◇ 강선영 : 받아주는 데가 없는 게 통상은 보직 명령이 육군본부에서 나기 전에 그 원래 있던 부대의 상급자들한테 이러이러한 대상자인데 이 사람이 가도 되겠습니까 라고 문의를 합니다, 사전에. 그랬을 때 나는 얘 받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안 되는 거죠. 처음이고 여성이 겪어보지 않았고 과거에 거기서 근무해 본 여성이 없다.

◆ 박귀빈 : 그러면 그 벽 앞에서 해외 파병을 선택하시고, 연합사를 선택하시고 그 선택의 기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선택을 하셨던 거예요?

◇ 강선영 : 남이 가기 싫어하거나 힘들어하는 곳을 갈 수밖에 없었던 거죠, 당시에. 파병도 쉽지 않은 거고, 그 당시 연합사는 전작권 전환이 추진되고 있어서 제가 가던 시기에 2년 후면은 부대가 전작권 전환이 돼서 해체될 위기가 있던 부대다 보니까 남성들이 선호하지 않았어요. 경력이 도움이 안 되니까. 갔는데 전작권 전환이 미뤄지고 오히려 중요한 부대가 되다 보니까 거기서 진급이 됐던 거 같아요.

◆ 박귀빈 : 자기에게 있는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바꾸는 게 상당히 어렵지 않습니까? 어떻게 보면 그렇게 걸어오신 거 같은데, 그런 과정을 거쳐서 장벽들을 깨고 전투병과 여성 최초 소장으로 진급하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 강선영 : 지금도 생각나는데 굉장히 부담스러웠습니다. 왜 부담스러웠냐면 이제부터 제가 하는 모습들이 앞으로 여성 장군은 이래서 안 돼 라는 모습이 될 수도 있잖아요. 여성은 장군 뽑으면 안 되겠다는 모습이 되면 안 되니까, 매 순간 두렵고 책임감을 다하고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마치 성공담처럼 얘기하고 있지만 제가 소장이 돼서 지휘한 부대에서 부하들이 잘 따라주고, 저를 지휘관으로서 그들의 역할을 해 준 부하가 없었다면 이 자리가 없었겠죠. 그래서 저도 책임감도 느꼈지만 저의 부하들도 무척 당황했을 겁니다. 여성을 지휘관으로 모시고 군 생활 하는 거. 거기서 그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 박귀빈 : 수천 명의 장병을 지휘하셨습니다. 여성 지휘관으로서 리더십이 없다면 불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장병들이 믿고 따라주는 것도 필요했겠지만 당연히 첫 번째는 리더십입니다. 우리 선생님의 리더십, 지휘 철학이 어떤 건지가 궁금해요.

지휘 철학이라기보다는 제가 부하였을 때가 있었잖아요. 제가 부하였을 때 나는 어떤 지휘관을 선호했는가를 생각해 봤어요. 가장 중요한 건 책임감이었어요. 평상시에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근데 위기가 생기면 이 사람이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냐. 그다음에 어려울 때 이걸 극복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냐, 그리고 부하를 아끼나. 이런 것을 보게 됐어요, 제가. 그래서 참모들과 다양한 절차를 통해서 의사결정을 하거든요. 지휘관이 단독으로 하지는 않아요. 부하와 지휘관 간의 참모 절차라는 걸 통해서 의사결정을 하지만, 그 결정이 이루어진 다음부터는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그다음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거에 대해서 내가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사전에 충분히 미리미리 고민한다. 그리고 부하를 아낀다. 그런 마음으로 했는데, 실제로 제가 그렇게 부하를 아끼는 것을 막 표현하는 따뜻한 리더십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그렇지 않았어요. 이러한 상황에서 당시에 다 잘 따라준 우리 부하들이 있어서 잘 성공적으로 사령관을 마쳤던 거 같아요.

◆ 박귀빈 : 이런 말씀이 굉장히 따뜻합니다. 강선영 의원님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군대는 앞서도 말씀하셨지만 명령이 우선인 조직이고, 국회는 많은 의원님들이 나와서 하시는 말씀은 타협과 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하시거든요. 어떻게 보면 문화 충격도 느끼셨을 것 같아요, 국회로 들어오시고 어떠셨어요?

◇ 강선영 : 제가 군대는 명령과 복종의 조직이고, 국회는 설득과 합의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군대도 명령을 내린다고 해서 명령 전에 이루어진 절차에 부하와 참모가 충분히 논의하는 절차가 있다고 그랬잖아요. 제가 밖에서 볼 때 국회는 국민을 대변하는 분들이기 때문에 숙의와 합의, 존중과 배려가 있는 조직일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번 22대 국회에서 내가 느낀 거는 소수당의 입장으로서 이러한 소수당의 의견이나 차이가 있을 때 이거에 대해서 충분히 설득하거나 합의에 이르지 않고, 다수당이 그냥 숫자로 밀어붙이고 법안이 막 통과될 때 많은 절망감을 느끼고 있는 상태입니다, 개인적으로.

◆ 박귀빈 : 그러시군요. 어떻게 그걸 뚫어나가겠다 다짐도 있으실 거 같아요. 저희가 민주주의를 어떻게 발전시킬 것이냐, 삼권분립이 뭐냐고 생각하면 견제와 균형이 아니겠습니까? 입법 기관은 당연히 행정부를 지원하지만 필요에 따라서 행정부를 견제해야 되고, 행정부를 견제하려면 여야가 대한민국이라는 발전의 로드맵에서 같이 합의해야 되는 것도 필요하고, 서로 발목 잡으면 안 되겠지만 그러나 이것이 특정한 정당의 또는 특정한 정부의 입장만 대변하는 의사결정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가 더 숙의를 하고 합의하고 국민을 위해서 정말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여야 의원들이 다 노력해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 박귀빈 : 군 출신의 정치인이시니까 제가 이걸 한번 여쭤볼게요. 저출생 문제가 바로 병력 자원 감소로 연결이 되거든요. 그래서 이 문제 해결책 중의 하나로 언급되는 것들이 여군의 역할 확대라든가 모병제 논의예요. 직접 모집을 한다는 건데 어떻게 보세요?

◇ 강선영 : 병력 감축 문제는 굉장히 어려운 사안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이번 중동 전쟁에서도 드론이라든지 첨단 기술의 장비들이 많이 활용되고 있는 거 보시다시피, 이제는 과학 기술과 국방의 전력화가 같이 합의해서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 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남성이다, 여성이다, 현역이다, 예비역이라고 하는 병적 중심의 보다는 전문성과 적절한 무기 체계를 운용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의 활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에 모병제라는 게 딱 나오잖아요. 징병제로 남자들만 군대를 가다 보니까. 모병제라는 논의가 아주 정치권에서 많이 나오거든요. 근데 제가 안타까운 건 모병제의 논의가 정말 대한민국의 국방을 걱정해서 나오는 게 아니라 약간 정치적인 어젠다로 많이 다뤄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징병제와 모병제를 다룰 때도 정치적인 어젠다보다는 향후에 대한민국의 안보를 책임진다는 입장에서 정책적으로 정교하게 논의되고 그다음에 검토해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안보 환경이라든지 국가 재정, 그다음에 과학 기술의 발전, 군 구조 등을 다양한 면에서 함께 챙겨보고 다루어져야 할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 박귀빈 : 네, 청취자 한 분이 유튜브로 "투스타 출신 강선영 의원님 멋지네요!", "쉽지 않은 길을 뚫고 오셨어요. 존경합니다." 이런 의견들 주고 계시고 끝으로 제2의, 제3의 강선영 꿈꾸는 후배들에게 오늘 수업의 핵심 포인트 한 줄로 정리 부탁드립니다.

◇ 강선영 : 모든 정치, 분야에서 자신을 발전시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여성분들은 한계를 정하지 마라. 한계는 세상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만드는 거다. 길이 없다고 주저하지 말고 길을 만들어 가시라는 말씀을 하고 싶고요. 누군가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라면 도전이 되겠지만, 그게 또 기회일 수 있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믿고 끝까지 준비하고 흔들리지 않게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 박귀빈 : 오늘 'K-여성 정치 시민학교' 두 번째 수업이었습니다. 여군 최초의 투스타 장군이 전하는 도전 정신 배워봤습니다. 지금까지 강선영 의원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강선영 : 감사합니다.

YTN 이시은 (sieun0805@ytnradio.kr)

[저작권자(c) YTN 무단전재, 재배포 및 AI 데이터 활용 금지]

Copyright © YT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