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아닌 ‘모두의 집’에서 발견한 낯선 인간 본성

그게 되겠어? 항상 좀 허기져 보이는 동네 사람 ‘허기저’(별명, 안병주)가 계간지 ‘녹색평론’을 함께 읽는 네 사람과 함께 읍에 ‘모두의 집’을 만든다고 했을 때 속으로 그랬다. 읍에 방 세 칸짜리 적당한 공간이 나왔는데 전세 보증금이 2천만원이란다. 그 공간을 누구나 손님이자 주인으로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열어두겠다는 거다. 경남 남해군이 농어촌기본소득 시범지역으로 선정돼 2026년부터 2년 동안 모든 주민에게 매달 15만원씩 지역화폐를 주는 것도 계기가 됐다. 그 돈을? 나는 주유할 건데. 자기 집도 아닌데 누가 돈을 보탤까? 그러니까 나는 최대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 본성이라 생각했던 거다. 인간이 다 그렇지 않나? 그리고 두 달 뒤 ‘옆’이라 이름 지은 공유공간의 집들이 초대장이 날아왔다.
해방촌 ‘빈집’이란 선례 있었네
집들이 날, 휴지를 사 들고 갔다. 낡은 건물 3층 공유공간 ‘옆’ 거실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책 ‘자본의 바깥’(힐데와소피 펴냄)을 쓴 김지음씨의 북토크가 열릴 예정이었다. “부엌도 있네!” 한쪽 방엔 깔끔한 이층 침대가 놓였다. 다른 방은 큰 책상과 책장으로 꾸몄다. 가구는 중고거래로 구하거나 기부받았다. “침대 올리는 건 아무것도 아니야. 에어컨 실외기가 장난 아니에요.”(허기저) ‘녹색평론’ 모임 다섯 사람은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모자란 보증금을 채우고 중년의 허리를 혹사해 이 공간을 꾸몄다.
내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선례들이 있었다. 이날 김지음씨가 소개한 서울 해방촌 ‘빈집’만 해도 그렇다. 2008년 네 사람이 방 세 개짜리 전셋집을 마련하고 누구나 손님이자 주인인 환대의 공간을 열었다. 여기서 노래하고 술 마시다 잠든 사람들은 출근했다 이 집으로 돌아왔다. 낯선 사람이 있는 게 자연스러운 집이었다. 첫 한 달, 이 집에 살거나 방문한 누적 인원을 헤아려보니 200여 명이었다. 다 같이 밥해 먹다 옥상에 텃밭을 만들었다. 술값이 제일 많이 들어 아예 술을 빚었다. 관리비는? 식비는? 손님이 계속 그냥 얹혀살기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하루에 2천원씩 받기로 했다. “자본을 공유하고, 임금노동이 없고, 나눠 쓰니” 그거면 충분했다. 내고 싶으면 내는 돈통에 돈이 쌓여갔다.
손님이자 주인이 계속 늘었다. 해방촌 ‘빈집’ 주변에 ‘옆집’ ‘윗집’이 생기더니 나중엔 ‘빈마을’이 됐다. 풀어야 할 문제들도 생겼다. 공간을 늘리려면 보증금이 필요했다. ‘빈집’은 전세지만 ‘옆집’은 월세다. 그렇다고 ‘옆집’ 주인이자 손님한테만 돈을 더 내라고 할 순 없다. 보증금을 올릴수록 공동체 전체에 이익이 돌아간다. 애초에 보증금을 냈던 사람들이 돈을 빼고 싶을 수 있고 뒤에 들어온 사람들이 보증금을 내고 싶을 수도 있다. 돈을 더 낸 사람과 덜 낸 사람 사이엔 위계가 생기기 마련이다. 해법으로 나온 게 커먼즈은행 ‘빈고’다. 우리가 익숙한 교환은 그냥 주는 선물, 값 따져 주고받는 상품 그리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가져가는 수탈이다.
37명이었던 ‘빈고’ 조합원 540명으로
빈고의 실험은 그 밖으로 뻗어간다. ‘사양의 교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출자자는 ‘내가 사는 집 보증금 낸 건데 손님한테 어떻게 돈을 뜯어내?’라며 자본 수익을 사양한다. 이용자들은 ‘나도 주인인데 이자라도 낼 거야’라고 우긴다. 운영자는 ‘내가 양쪽에서 돈을 받으면 배신이지’라고 한다. 모두 자본 수익을 사양하니 돈이 불어났다. ‘빈고’에서 출자자는 언제든 출자금을 찾아갈 수 있다. 안 받겠다고 버텨도 배당을 준다. 공동체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적립금과 연대의 자금을 모은다. 출자자들이 원하는 곳에 기부하거나 다른 공동체가 이용하도록 한다. 누구도 손해 보지 않는다. 1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고양이, 개, 지렁이까지 지지고 볶고 산 해방촌 ‘빈마을’은 10여 년 이어지다 해산했다. 2010년 37명이었던 커먼즈은행 ‘빈고’의 조합원은 2025년 540명으로 자랐다. 공유공간은 해방촌을 넘어 강원, 충청 등 이곳저곳에서 싹텄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어요. 자본 수익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고 하지만 자본 수익을 사양하는 것도 인간 본성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기회만 준다면 말이에요. 만약 우리가 사양의 시스템을 살아가고 익숙해진다면, 사양은 어느새 우리의 본성과 같은 사실로 굳어질 거예요.”(김지음)

“허기저는 사람을 믿나봐”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인간의 본성은 사실일까? 자신과 타인을 도구가 아니라 목적으로 삼으려는 노력을 사랑이라고 한다면, 경계의 가드를 올리고 서로에게 붙은 가격표를 확인하며 사는 삶에 사랑이 가능할까? 북토크가 끝나고 밥과 술이 돌았다. ‘허기저’ 5인방 중 한 사람인 한중봉 남해시대 기자한테 물었다. “이걸 왜 하세요?” “술 마시다 하기로 한 건데요. 놀러 와서 자고 갈 수도 있고 편하게 이야기할 공간이 있으면 좋잖아요. 앞으로요? 아무 생각 없어요. 기부할 수 있는 ‘엽전함’을 두긴 했는데 모자라면 우리가 내면 되지. 그냥 해보는 거죠.”
5인방 중 한 명인 정보름씨는 8년 전부터 이런 공간을 만들고 싶었단다. “타로리딩이랑 페미니즘 책읽기 모임도 하려고요.” 보름씨는 이 공간을 카펫과 패브릭으로 장식했다. ‘허기저’가 구시렁거렸다. “내가 구운 계란 사자고 했을 땐 안 된다고 해놓고선.” “계란 한 판 삶으면 되는데 구운 계란을 왜 비싸게 사!”
구운 계란을 끝내 관철하지 못한 ‘허기저’는 10년 전 남해로 와 동고동락협동조합을 만들고 여러 모임을 꾸렸다. “농어촌기본소득이 소비는 활성화할 수 있겠지만 근본 대책은 아니잖아요. 돈 때문에 관계가 망가지기도 해요.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보기로 한 거예요. 그러다 새로운 일이 벌어지고 관계도 생기겠죠. 그 과정이 재밌었으면 좋겠어요. 갈등도 괜찮고요. 저는 그냥 우리 서로 잘 지내고 싶어요.”
“허기저는 사람을 믿나봐요.”
“잘 모르겠어요. 못 믿을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문제일까? 이 사회 조건이 나쁜 사람을 계속 만드는 거 아닐까? 다른 조건이라면 다른 관계가 가능하지 않을까?”
내가 사실이라고 믿는 것은 내가 그렇게 믿기 때문에 사실이 돼가는 건 아닐까? ‘사람이 다 그렇지’라는 냉소는 인간의 심연에 대한, 그 인간 중 하나인 나 자신에 대한 모욕이 아닐까?
“허기저는 왜 이런 실험을 계속해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정말 그러고 싶지 않아요?”(허기저)
글·사진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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