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오른 퇴직연금 '무한 경쟁'…금융권 긴장 속 수익률 기대 커진다

이른바 ‘연금판 서바이벌’이 본격화하면서 500조 원을 넘어선 퇴직연금 시장이 본격적인 성과 경쟁 체제로 들어설 전망이다. 그간 영업력과 판매 채널이 좌우하던 시장이 수익률 경쟁 국면으로 바뀔 가능성이 커지면서 금융권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반면 투자자 실익은 한층 극대화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19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정부는 전일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퇴직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한 개편안을 보고했다. 핵심은 ‘성과 부진 상품의 시장 퇴출’이다. 운용 성과가 미흡한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 상품은 신규 가입을 중지하거나 아예 시장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것이 골자다.
정부가 강한 개편 카드를 꺼내든 것은 ‘방치된 노후자산’에 대한 위기감 때문이다. 실제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말 501조원(잠정)으로 1년 전(431조원)보다 약 70조원(16.1%) 늘었다. 하지만 5년 평균 수익률은 2.86%, 10년 평균 수익률은 2.31%에 그-친다. 계좌 기준으로도 여전히 87%가 일시금으로 수령돼 퇴직연금이 본래의 노후소득 보장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이는 가입자의 무관심과 금융회사의 소극적인 운용이 맞물려 수익률 제고 경쟁이 사라진 구조적 한계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조치가 본격화하면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 구도 역시 근본적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 은행권에서 증권사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이 나타난 만큼, 증권업계는 이를 점유율 확대의 계기로 보는 분위기다. 상장지수펀드(ETF)와 타겟데이트펀드(TDF) 등 수익률 가시성이 높은 상품 라인업을 앞세워 공격적인 마케팅에 나서는 모양새다. 반면 자산운용업계는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디폴트옵션 주요 상품군인 TDF 성과가 하위권으로 밀려 상품이 퇴출되면 브랜드 신뢰도 추락은 물론 대규모 자금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 개편이 퇴직연금 시장을 ‘영업의 전장’에서 ‘운용 실력의 전장’으로 바꿔놓을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는 계열사 상품 편입이나 판매 채널 장악력이 시장 점유율을 좌우했다면, 앞으로는 수익률이 낮은 상품은 아예 시장에서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과 증권사 입장에서도 단순 판매보다 수익률이 검증된 우량 상품을 얼마나 확보하느냐가 핵심 경쟁력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로보어드바이저 투자일임 서비스 제도화도 경쟁 구도를 바꾸는 변수로 꼽힌다. 데이터 기반으로 24시간 자산을 관리하는 인공지능(AI) 운용 서비스가 확산하면, 사람의 직관보다 일관된 운용 성과와 객관성을 앞세운 상품 경쟁도 한층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가입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질’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다. 성과가 검증되지 않은 이른바 ‘좀비 상품’이 걸러지면 장기 복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우량 상품 중심으로 포트폴리오가 재편될 가능성이 커진다. 원리금 보장 상품에 과도하게 묶여 있던 자산이 보다 생산적인 투자처로 이동할 경우 장기적으로 노후 수령액을 끌어올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부작용 우려도 적지 않다. 평가 경쟁이 과열되면 금융사들이 단기 수익률 방어에 치우치거나, 보수적 성향의 가입자에게 실적배당형 상품이 과도하게 권유될 가능성도 있다. 퇴직연금 도입 의무화 논의와 맞물려 중소기업과 영세 사업장의 관리 비용 부담을 덜어줄 세제지원 등 보완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단순히 저성과 상품을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가입자들이 자신의 연금이 어디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는지를 들여다보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퇴직연금이 단순 저축을 넘어 투자 자산으로 자리 잡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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