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 계절이 아니라 기후가 되어야 한다 [EY한영의 비욘드 뷰]
이건영 EY AI Hub 금융AI센터장

계절은 왔다가 가지만, 기후는 생태계 자체를 바꾼다. 지금 AI 에이전트를 마주한 기업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AI를 일시적인 ‘계절’로 맞이하고 있는가, 아니면 거스를 수 없는 ‘기후’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2022년 11월 챗GPT가 촉발한 무엇이든 물어보면 답해주는 ‘대화형 AI’는 이제 사람을 대신해 자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는 ‘AI 에이전트’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이미 검증과 실험의 단계를 넘어,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전사적 전략 어젠다로 정착했다. 특히 EY한영이 연초 진행한 2026 경제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데이터와 디지털 기반이 앞선 금융업계는 100%가 생성형 AI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계획하고 있다.
그러나 지표 이면의 실상은 다소 냉소적이다. EY 일자리의 현재와 미래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다수 기업의 실제 활용은 여전히 검색, 문서 요약 등 단순 보조 업무에 머물러 있고, 업무 방식을 혁신하는 수준으로 AI를 활용하는 기업은 5%에 불과했다. 도입률 88% 대 혁신률 5%라는 이 역설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다. 모델 성능, 인프라, 데이터 수준을 아무리 개선해도 이 간극은 좁혀지지 않는다. 문제의 본질은 사고방식에 있다. AI 에이전트는 단순한 ‘자동화’ 도구가 아니라 업무의 ’무인화’를 가능케 하는 존재다.
최근 국내 대형은행 및 금융사의 AI 기반 업무 혁신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얻은 시사점은 명확하다. AI 에이전트 도입은 단순한 기술 적용이 아니라, 기업의 일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라는 점이다. 성공적인 AI 에이전트 적용을 위한 세 가지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적용 대상 업무를 완전히 재설계해야 한다.
자동화가 기존 프로세스의 속도를 높이는 작업이라면, 재설계는 불필요한 프로세스 자체를 소거하는 작업이다. AI 에이전트의 진정한 가치는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는 데 있지 않다. 데이터의 실시간 연결과 자율적 판단을 통해 기존의 복잡한 절차 자체를 ‘삭제’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은행의 전통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는 전문가가 조언하고 고객이 판단한 뒤 주문을 넣는 순차적 구조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AI 에이전트는 이 구조를 해체한다. 시장 변동과 세제 변화, 고객의 소비 패턴을 실시간으로 추론하며 스스로 포트폴리오를 리밸런싱한다. 고객은 "내년 아파트 중도금 1억 원 마련하겠다"는 목표만 설정할 뿐, AI 에이전트는 단순 추천이 아니라 수수료가 가장 적은 경로로 외화를 환전하고, 절세 혜택이 큰 상품으로 자금을 이동시키는 집행 권한을 위임받아 대리 수행한다. 자산관리 프로세스가 '상담'에서 '결과 모니터링'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조직 내 수용성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기존 업무를 단순 대체하면 인간과 AI의 성과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되고, 작은 오차에도 ‘인간의 우월성’을 들어 혁신을 저지하려는 관성이 작동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재설계된 업무에서 AI가 제공하는 가치는 비교 대상이 없는 고유한 영역이 된다. 이때 발생하는 시행착오는 '대체의 실패'가 아닌 '혁신 과정'으로 받아들여지고, 그것이 정착의 토대가 된다.
둘째, 기존에 불가능했던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업무를 찾아야 한다.
많은 기업이 AI를 비용 절감 도구로 접근한다. 그러나 비용 절감은 경쟁사도 똑같이 실행할 수 있는 전략이다. 계절처럼 지나가는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질문의 방향을 바꿔야 한다. "AI 에이전트가 없었다면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던 것은 무엇인가?"
기존 기업 서비스가 고객의 ‘요청’에서 시작되었다면, AI 에이전트가 만드는 가치는 ‘선제적 대응’에 있다. 고객이 필요를 인식하기 전에 기업이 먼저 상황을 파악하고 최적의 해결책을 준비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금융사의 AI 에이전트가 웨딩홀, 산부인과, 부동산 중개사, 이사업체와 같은 곳에서 고객의 거래 패턴 변화를 감지하면 생애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최적화된 패키지를 먼저 제안할 수 있다. 고객이 필요를 말하기 전에 기업은 이미 답을 준비해 두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술적 진보를 넘어 고객과 기업 간 ‘관계의 진보’를 의미한다.
이 방향의 전환은 조직 내부의 심리적 저항도 상쇄시킨다. AI가 내 일자리를 빼앗는 위협이 아니라 '나를 유능하게 만드는 강력한 무기'로 인식될 때 AI 도입은 비로소 일시적 유행이 아닌 조직의 익숙한 ‘기후’로 자리잡는다.
셋째, 적용 범위를 지나치게 제한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의 디지털 기술이 특정 기능을 수행하는 도구였다면, AI 에이전트는 목표를 이해하고 추론하며 실행까지 수행하는 주체로 진화하고 있다. 이 차이는 전략의 출발점을 바꾼다. "어디에 활용할 수 있을까"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는 활용할 수 없는가"를 묻는 것이 정답이다.
법적 책임이 특정 인간에게 귀속되어야 하는 영역, 고도의 정서적 유대가 필요한 영역, 과거 데이터의 패턴이 존재하지 않아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창조해야 하는 영역 등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업무에 AI 에이전트를 적용할 수 있다. 심지어 이 세 가지 예외 영역조차 법과 제도,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점차 축소되고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쓸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고민 자체를 지우는 것이다. 모든 업무의 기본값이 'AI 활용'이 되는 순간, 직원들은 AI를 특별한 기술이 아닌 업무의 ‘표준 문법’으로 받아들인다.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되어 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기후다.
챗GPT가 등장한 지 불과 3년 만에 AI는 대화 상대에서 업무 수행 주체로 진화했다. 앞으로의 3년은 더욱 빠를 것이다. 그 변화의 끝에 서 있을 기업은 단순히 비용을 줄인 기업이 아니라,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고객과 연결되고 시장을 재정의하는 기업이다. 기후는 준비된 자에게만 유리하게 작용한다. 미래는 더 뛰어난 AI 모델을 기다리는 조직이 아니라, 지금 당장 업무를 다시 그리기 시작하는 조직에게 먼저 열릴 것이다.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상장 첫날 520% 불기둥...서학개미 고수, AI 드론주 '풀매수'[마켓PRO]
- 단종 보러 관광객 몰리더니…'왕사남' 흥행에 영월 상권 들썩
- '27세' 스키즈 창빈, 압구정 현대 94억 현금 매입 [집코노미-핫!부동산]
- 삼성 파운드리는 엔비디아 '그록 칩'으로 얼마를 벌까 [강해령의 테크앤더시티]
- 집주인 보유세 부담 가중…'매물 증가=집값 하락' 공식 통할까 [돈앤톡]
- 전쟁 덕분에 '신의 한 수' 되나…애물단지 '놀라운 변신'
- 취업하러 갔다가 결혼까지…한·일 국제커플 40% 급증
- 가성비템 줄줄이 내놓더니...다이소 온라인서 월 100억씩 '대박'
- 정부가 돈 꽂아주는 '청년미래적금' 무조건 들어라
- [단독] 원유 수급 '초비상'…정유4社 "러시아산 원유 도입 검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