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제폭력, 가해자 통제 없이 끝날 수 없는 [플랫]

플랫팀 기자 2026. 3. 19.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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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워치 있었지만 살해된 여성
피해자의 신고에만 의존하지 말고
위치추적·구금처럼 강력한 조치로
가해자의 접근 자체를 막아야 한다
이미지컷. unsplash

비상용 스마트워치. 살인 같은 강력범죄 신고자, 성폭력·가정폭력·스토킹 등의 피해자에게 지급되는 위치확인 장치다. 긴급호출 버튼을 누르면 경찰과 연결되고, 경찰이 실시간으로 대상자 위치를 확인해 출동한다. 스마트워치는 스토킹 피해자 보호의 핵심 축이다. 범죄 피해자 안전조치 중 스마트워치 지급 건수는 112시스템 등록, 맞춤형 순찰에 이어 세 번째로 많다.

지난 14일 아침 출근길에 경기 남양주시 길거리에서 과거 사실혼 관계였던 남성에게 살해당한 20대 여성도 이 스마트워치를 갖고 있었다. 피해자는 가정폭력과 스토킹으로 이미 가해자를 여러 차례 경찰에 신고한 상태였다.

올해 들어서만 5차례 경찰에 신고했고, 자신의 차량에 가해자가 부착한 위치추적 장치가 발견됐다는 사실도 경찰에 알렸다. 직장도 여러 차례 옮겼다. 그가 가해자를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조치가 더 있었을까. 경찰이 가해자에 대한 구속영장 신청을 미루고 있는 사이 피해자는 살해당했다. 사건 발생 2분 전 스마트워치를 눌렀지만 끝내 구조되지는 못했다.

이런 비극은 낯설지 않다. 이광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2021년부터 2025년 8월 말까지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피해자가 살인이나 살인미수 범죄를 당한 경우는 23건에 이른다. 스마트워치는 빠른 신고를 돕는 장치일 뿐 범죄를 막고 피해자를 능동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도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의 빠른 신고를 기다릴 게 아니라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아예 접근하지 못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남양주 사건의 가해자는 피해자를 폭행하고 스토킹해 인근 100m 이내 접근 등이 금지되는 스토킹처벌법상 잠정조치 1·2·3호를 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가해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는지 경찰이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는 잠정조치 3의2호는 적용되지 않았다. 가해자를 최대 한 달까지 구치소에 유치하는 잠정조치 4호도 ‘검토 중’인 단계였다. 피해자가 가해자의 추적을 두려워하며 숨어 지내야 하는 동안 가해자를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없었다는 얘기다.

스토킹 위험성이 높은 가해자를 구금하는 잠정조치 4호는 경찰이 별로 신청하지도 않고, 법원이 쉽게 허락하지도 않는다. 양부남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스토킹 112 신고 건수는 1만4088건이었지만 경찰이 잠정조치 4호를 신청한 경우는 189건이었다. 법원은 이 중 41.8%인 79건에 대해서만 조치를 결정했다. 가해자를 인신구속하거나 위치를 추적하는 대신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를 채우고 위험을 느끼면 신고하라고 당부하는 일만 반복되고 있다.

왜 피해자 보호조치에 자꾸 실패하는데도 가해자를 더 통제하지는 않을까. 교제폭력을 오랫동안 연구한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최근 펴낸 책 <이처럼 친밀한 살인자>에서 지난해 들었던 한 공직자의 발언을 소개했다.

국회 토론회 참석자였던 그는 ‘스토킹 잠정조치를 내리면 당사자가 분명 위반할 텐데, 그러면 전과자가 되는데 해당 조치를 허락하는 게 맞는지 고민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허 조사관은 이 말을 듣고 왜 공권력이 가해자를 제재하는 데 그렇게 소극적인지 한 번에 이해됐다고 썼다. 남자가 옛 여자친구를 좀 쫓아다녔다는 하찮은 이유로 앞길이 창창한 남자를 전과자로 만드는 게 맞느냐, 헤어진 여자친구 마음을 돌리기 위해 집착을 좀 했다고 해서 위치추적이나 구금처럼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강력한 조치를 하는 게 맞느냐는 생각을 결정권자들이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게 정말 하찮거나 사적인 문제일까? 우리는 지속적인 스토킹이, 접근금지 위반이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로 이어지는 장면을 거의 매일같이 목격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2025년 분노의 게이지’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언론에 보도된 ‘친밀한 관계 내 여성살해’는 최소 137건이었고, 살인미수 등 ‘살해될 뻔한 경우’를 포함하면 389명이었다. 스토킹과 교제폭력은 남녀 사이에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강력범죄의 강력한 전조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피해다니도록 할 것이 아니라 가해자를 피해자의 일상에서 분리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되풀이하는 동안 사람이 계속 죽고 있다.

▼ 남지원 젠더데스크 somnia@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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