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약육강식' 시전하는 트럼프 뒤에 줄 서기? 김대중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2026년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불법적인 군사행동으로 세계 2차대전 이후 위태롭게 이어졌던 세계질서가 무너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제법과 윤리는 흐려지고 힘을 통한 의지의 관철이 강조되면서 약육강식의 국제사회로 재편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소위 '글로벌 책임 강국'이라고 스스로를 규정하고 있는 한국은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각 독립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고 국제법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수호할 것인지,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한 힘이 지배하는 국제질서에 편승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하고 있는데, 트럼프 대통령의 호르무즈 해협 군함 파견 요구는 한국이 처한 어려움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외교에서는 국익이 최우선돼야 하고 이를 기준으로 정책이 실현되고 마련되어야 한다. 그런데 '국익'을 어떻게 정의할지에 따라 그 방향은 달라질 수 있다. 국익을 "강자의 편에 서서 다른 국가를 괴롭히며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길을 따라가는 것이 국익에 부합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인류 보편적 가치를 중시하며 지속가능한 국가와 세계를 만들어 나간다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다른 접근법을 택해야 한다.
한국이 어떤 선택을 할지 현 시점에서 확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세계에서 손에 꼽는 민주주의 국가로 평가받는 한국이 트럼프의 길을 따라가는 것은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쉽지 않은 갈림길에 놓인 한국이 어떤 경로를 택할지에 대해 국민적 합의, 사회적 공론화가 필수적이지만, 이에 못지 않게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인의 통찰도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대외 관계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있었던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혜를 빌려올 필요가 있다.

개별 국가를 넘어 인류 문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김 전 대통령의 이같은 단호한 명제는 폭력적이고 혼란스러운 국제질서가 펼쳐지고 있는 지금의 세계에 더 큰 울림을 주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김 전 대통령이 역사상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만큼, 남북관계와 관련한 많은 어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 중 김 전 대통령이 일본 <세카이>의 1983년 9월호 야스에 료스케 편집장과 대담에서 "나는 결코 통일에는 몽상을 갖지 않습니다. 그러나 절망은 더욱더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 부분이 눈에 띈다.
남북관계는 지난 2019년 이후 7년 동안 사실상 별다른 교류 없이 막혀있는 상황이다. 남북을 이어주는 통신선도 모두 작동하지 않고 있는데,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 이후 가장 위험한 상황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여기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남한과 관계를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하면서 관계 단절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러한 남북 간 상황으로 인해 한반도 평화에 대해서는 회의적 시각이 지배적이다. 북한과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무기력한 분위기도 팽배해진 상태다. 이럴 때 절망하지 않는다는 김 전 대통령의 다짐은 현재를 살아가는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과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이정표를 제시해주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김 전 대통령은 정치 분야 어록에서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으로 실사구시를 강조하기도 했는데,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와도 닿아있는 부분이다.
그는 1981년 6월 23일 옥중서신에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을 아울러 갖추어야 한다"며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하려면 서생과 같이 양발을 원칙 위에 확고하게 딛고, 상인과 같이 양손은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두 가지의 조화로운 발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학순 김대중 학술원장은 책 후기에서 "요새같은 어려운 시기에 김대중 어록이 국민들에게 우리 나라 정치, 외교, 군사, 안보, 경제, 통상, 사회, 과학기술, 문화 모든 부문에 걸쳐 선한 영향력을 미칠 것을 믿는다"고 밝혔는데 지금의 한국 정치 상황과 한반도 및 국제정세가 다시 김 전 대통령의 어록을 불러내고 있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권노갑 김대중 재단 이사장은 발간사에서 "이 어록집은 모두 김대중 대통령 자신이 직접 말하고 쓰고 연설한 것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그분이 순간적인 충동으로 한 말들이 아니라 역사와 시대, 후손을 의식하고 진지하게 남긴 통찰과 지혜의 어록, 그래서 불멸의 언어가 된 말들을 정리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책은 50개의 주제를 선정해 각각 주제에 맞는 김 전 대통령의 어록을 수록했다. 큰 목차로는 제1부 "사상가 김대중"편과 제2부 "정치지도자 김대중" 편으로 나눠서 어록이 배열됐는데 남북관계나 대외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경제 등 각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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