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神과 함께’… 정치, 표를 위해 경전 펼치다[Global Focus]

박상훈 기자 2026. 3. 19.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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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종교로 민심 얻고 결집”… 동남아·인도 등 정교 분리 ‘세속주의’ 후퇴
인니, 율법기반 형법 시행 중
말레이선 기도 빼먹으면 처벌
튀르키예는 학교에 종교 지침
트럼프의 美, 복음주의 ‘파워’
인도 ‘힌두교 민족주의’ 확산
양극화·이민 등 사회이슈 속
종교 통해서 민심 통합 효과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세계 각국에서 정치와 종교가 엄격하게 분리되는 세속주의 대신 종교가 재차 정치와 법, 문화 등 다양한 공적 영역에서 존재감이 커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는 아시아 무슬림 국가들뿐 아니라 미국의 복음주의 부활과 인도의 힌두 내셔널리즘 등 전 세계에서 다양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한 원인으로 최근 세계화나 이민자 증가 등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가장 오래된 집단 정체성인 종교를 활용할 경우 유권자 동원이 용이하고, SNS 등을 활용한 포교나 종교적 공감대 형성이 더 쉬워졌다는 점이 꼽힌다.

게티이미지뱅크

◇경제 성장하면 세속화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종교화되는 동남아 무슬림 국가들= 18일(현지시간) 외신들은 동남아 최대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가 최근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세속화보다 종교화를 택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지난 1월 2일 인도네시아에선 2022년 제정된 이슬람 기반의 새 형법 시행이 시작됐다. 개정 형법에 따르면 혼외 성관계가 적발될 경우 최대 징역 1년, 혼전 동거는 최대 징역 6개월의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사실상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전국적으로 시행한 것으로, 친고죄긴 하지만 법 적용 대상에 발리 등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까지 포함되며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

말레이시아에서도 비슷한 종교 기반의 법 개정들이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8월 말레이시아 테렝가누주는 샤리아 일부를 주 법에 적용시켜 금요일 기도를 한 번이라도 빼먹는 무슬림 남성에게 최대 3000링깃(약 114만 원)의 벌금을 부과하거나 징역 2년형에 처하도록 했다. 기도 회피를 처벌하는 법안은 대표적인 이슬람 정교일치 국가인 이란에서도 시행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세속주의 무슬림 국가 중 하나였던 튀르키예에서는 지난달 교육 당국이 공립학교에 이슬람교의 금식성월 라마단과 관련한 활동을 반영하겠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세속주의 진영이 “튀르키예가 탈레반화되고 있다”고 비판하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 청년들 입에서 저주와 모욕 대신 알라의 말씀이 나오는 것이 뭐가 그리 불편한가”라며 반박하기도 했다.

◇미국, 브라질, 인도 등에서도 기독교·힌두교 등 각종 종교 부활= 종교화는 이슬람뿐 아니라 기독교와 힌두교를 중심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 집권한 2017년 이후 공적 영역에서 복음주의 기독교의 영향력이 커졌다. 미국 내 기독교 인구는 점점 줄고 있지만, 기독교 신자들이 결집해 2016년과 2024년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과 공화당의 수차례 선거 승리를 이끈 데 따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화당 인사들과 ‘전국믿음정상회의’ 등 행사에 참석해 “미국에서 종교를 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백악관은 목사들이 트럼프 대통령 주변에서 함께 기도하는 사진이나 영상을 공개하는 등 공적 영역에 다시 복음주의 기독교가 대거 등장하기 시작했다. 또 브라질에서도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 집권 시기를 전후로 기독교 영향력이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9%에 불과했던 복음주의 기독교 인구는 2022년 26.9%까지 늘었다.

인도에서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여당인 인도국민당(BJP)을 필두로 힌두교를 중심으로 인도의 국가정체성을 강조하는 힌두 내셔널리즘이 확산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종교 활용해 유권자 동원 쉽고, SNS 활용한 포교도 용이해져= 이처럼 전 세계 각국에서 종교의 존재감이 다시 커지는 현상의 배경에는 결국 정치적 셈법이 있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종교가 이념보다도 더 오래된 집단 정체성이고, 모스크·교회 등 물리적 공간을 중심으로 인파가 모이는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각종 투표에서 유권자를 동원하기 용이한 도구로 떠올랐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나 인도처럼 무슬림이나 힌두교 인구가 대부분인 국가에서는 종교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다수 신자들의 표를 가져올 수 있고, 미국처럼 기독교 인구가 점차 줄고 있더라도 종교는 유권자 결집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특히 소련 몰락과 냉전 종식 이후 이념이라는 유권자 결집 도구를 잃은 정치 세력들이 종교 정체성으로 이 공백을 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또 양극화나 이민자 문제 등 경제적·사회적 불안이 커진 상황에서 종교가 현실에서의 불만을 잠재울 뿐 아니라 다양한 계층에 퍼져 있는 유권자들을 효과적으로 한데 모으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서는 SNS의 확산으로 종교의 전파나 공감대 형성이 더 용이해졌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인도네시아에서는 거대 인플루언서들이 수백만 명의 팔로어들에게 이슬람교를 소개하거나 이슬람 규율에 대한 보수적 해석을 전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국가에서는 온라인상에서 여성이 히잡을 쓰지 않는 등 신체를 부분적으로 노출하거나 이용자들이 신에 대한 모독을 하는 상황이 SNS에서 확산하면서 국가가 직접 나서 처벌하는 사례도 전해지고 있다. 지난해 암살당한 미국의 청년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 역시 기독교 신앙이나 낙태, 혼전 성관계 등 종교적 이슈에 관해 대학생들과 토론하는 영상을 SNS에 업로드해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들의 큰 관심을 받은 바 있다.

“머리 스카프 금지”… 反이슬람·극우 물결 유럽은 ‘세속주의’ 강화

유럽에서는 무슬림 이민자 확대에 대응해 이들에게 유럽식 가치와 생활 방식을 요구하는 세속주의 기조가 강화되고 있다. 유럽 일각에서는 반이슬람 정서가 커지면서 반이민을 앞세운 극우 세력이 힘을 얻고 있다.

유럽 주요국들은 세속주의 원칙을 내세워 무슬림 대상 복장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오는 9월부터 아동 권리 보호를 기치로 14세 미만 무슬림 여학생의 학교 내 이슬람식 머리 스카프 착용이 전면 금지된다. 히잡부터 부르카까지 모두 포함되며 이를 반복적으로 위반할 경우 부모에게 벌금형 또는 최대 2주 징역형이 부과될 수 있다. 오스트리아를 비롯해 프랑스, 독일, 벨기에 일부 지역에서는 공공 수영장에서 이슬람식 수영복인 브루키니 착용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사실상 이슬람권 이민자에게 생활 방식의 동화를 요구하는 정책으로 해석되며 반이슬람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민자의 가치관이 체류에 적합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프랑스는 지난 1월 도입한 ‘의무 시민권 시험’에 이슬람권 이민자의 종교적 신념과는 배치되는 세속주의 문항을 포함했다. 프랑스 내무부가 공개한 예시 문항에는 ‘부모가 체육 수업이 남녀 혼합이라는 이유로 자녀의 참여를 거부할 수 있는가’ ‘공립학교에서 종교적 상징을 착용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 등이 포함됐으며, 후자의 경우 ‘학생과 교사 모두 금지된다’라고 답해야 정답이다.

유럽 극우 세력이 세속주의와 결합된 여성·성소수자 권리를 앞세워 무슬림 이민자 배척을 정당화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동성 파트너와 함께 아들 둘을 키우는 알리스 바이델 독일을위한대안(AfD) 대표는 “독일 한복판에서 무슬림 갱단이 동성애자들을 사냥하고 있다”며 “시민들이 단지 자신의 성적 지향 때문에 독일에서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반이슬람 논리를 설파했다. 같은 당 소속 프랑크 크리스티안 한셀 베를린 시의회 의원은 “동성애자들을 폭행하고, 레즈비언들을 모욕하고, 지하철역이나 공원에서 트랜스젠더 혐오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은 보수적인 독일인들이 아니라 샤리아법을 들먹이는 이민자 출신 남성들인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박상훈·김유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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