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이 무너진 그다음엔

2023년 10월7일 이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7만여 명을 희생시킨 소행을 국제사회는 ‘집단살해’라 부른다. 그럼에도 가자 주민들은 식민지배에 맞서 싸운다. 이 멀고도 가까운 이야기를 한국의 장르소설 작가들이 엽편소설(기획 서계수 작가)로 다섯 차례 연재한다. _편집자
교회 길 건너편에서 은찬을 기다리며 미숙은 찬송을 흥얼거렸다. 미숙이 다니는 교회에서는 정성스러운 기도로 사람들을 일깨워 교회의 품으로 데려오자는, ‘여리고 작전’이 한창이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설 때,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모든 군사가 엿새 동안 매일 한 번씩 여리고 성을 돌고, 이레째 날에는 일곱 번 돈 뒤 나팔을 불며 큰소리를 지르면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1 여호수아가 믿음으로 순종하자 하나님은 정말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주셨다는 이야기다. 목사님은 여호수아를 본받아 믿음과 일곱 번의 기도로 주변 사람들을 교회로 인도하자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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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험생인 아들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요즘은 새벽마다 이스라엘을 위한 100일 특별기도에도 참석할 만큼 믿음이 깊은 미숙이었지만 전도만큼은 쉽지 않았다. 목표를 정해서 믿음으로 설득해 교회로 인도해야 하는데 낯선 사람은 무섭고, 주변 사람에게 말하자니 공연히 서먹해질 것 같았다.
고심 끝에 목표로 삼은 사람이 조카인 은찬이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은찬은 어디 번듯하고 큰 종합병원에 취직할 생각은 않고 나이가 마흔이 다 되도록 ‘국경없는의사회’에서 일하고 있었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둘 다 원어민같이 하는 능력자면서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병원 하나 없는 가난한 나라나 전쟁터 같은 데서 일한다니 슈바이처 박사가 따로 없지만, 그 부모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갈 일이다.
이왕 슈바이처 박사 흉내를 낼 것 같으면 하나님도 좀 독실하게 믿을 것이지. 은혜와 찬양에서 따와 지었다는 그 이름이 무색하게 은찬은 교회에 안 다닌 지도 꽤 됐다고 들었다. 바빠서 못 다니는 거야 이해가 가지만, 사람이 고생할수록 신앙이 필요한 법인데…. 그래도 일단 의사인 은찬을 한두 번 데려가면, 교회 사람들 보기에 남부끄럽진 않을 것 같았다. 기껏 전도했는데 왜 교회에 나오지 않냐고 누가 묻더라도, 외국에서 의사를 하느라 그렇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때 지하철역 출입구에서 키가 크고 얼굴이 새카만 여자가 걸어 나왔다. 미숙은 볕에 그을리고 거칠어진 얼굴에 화장기도 한 점 없이, 펑퍼짐한 바지에 낡은 운동화 차림으로 나타난 은찬을 보고 입을 딱 벌렸다.
“아니, 너는 의사 선생님이…. 어디서 농사라도 짓다 온 거니?”
“환자 없을 때는 밭도 매다 왔죠.”
은찬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대답했다. 미숙은 속이 상했다. 이왕이면 번듯하고 멋있는 의사 조카를 교회에 데려가서 자랑하고 싶었는데, 이런 초라한 모습으로는 영 체면이 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미숙은 은찬의 팔짱을 끼며 아까부터 연습한 대로 활짝 웃음 지었다.
“우리 은찬이, 이렇게 고생 많이 하는데…. 하나님이 우리 은찬이에게 응답해주셔야 할 텐데.”
“…커피 드실래요?”
은찬은 미숙의 말에 동문서답처럼 딴 이야기를 하며 지하철역 바로 앞의 커피숍을 쳐다보았다. 미숙은 조금 마음이 불편했지만, 여리고 성을 빙빙 돌던 여호수아를 떠올리며 밝게 말했다.
“여긴 비싸기만 하고 맛도 별로야. 길 건너 우리 교회 1층에 카페가 있는데 거기 가자. 이 동네 맛집이잖니.”
“3년 만에 조카를 만나서 교회라니….”
“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커피가 맛있어서 가는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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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단보도에 파란불이 켜지자마자 미숙은 은찬의 손을 붙잡고 길을 건넜다. 그런데 횡단보도 중간에서 은찬이 걸음을 멈추었다. 은찬은 교회 외벽에 붙어 있는 ‘여리고 작전’이라고 적힌 커다란 펼침막을 보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미숙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 은찬을 뒤쫓아갔다.
“은찬아! 아니, 은찬아!”
횡단보도를 되돌아 건너가자마자 은찬은 있는 대로 낯을 찌푸리며 교회에 걸린 펼침막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여리고? 지금 ‘여리고 작전’이라고 그러는 거예요? 교회에서? 여리고가 뭔지 다 알 만한 사람들이?”
미숙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열심히 전도하자는 이야기일 뿐인데, 왜 이렇게 애가 질색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은찬아. 네가 무슨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고모, 교회에서 집중 전도 기간을 ‘여리고 작전’이라고 부르는 것 정도는 저도 알아요. 그러니까 고모도 몇 년 만에 보는 조카라도 교회에 데려가서 체면치레하고 싶으셨겠죠. 그건 알겠는데, 사람이 성경을 읽었으면 히브리인들이 여리고 성을 함락하고 무슨 짓을 했는지는 아실 거잖아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성 주변을 돌고 나팔을 불며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2 하고 외쳤더니 하나님께서 성벽을 무너뜨려주신 것처럼, 굳게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리라는 이야기 아니니.”
“그러니까 그다음에 말입니다!”
은찬은 자신을 붙잡으려 내미는 미숙의 손을 매몰차게 뿌리쳤다.
“고모, 제가 어디로 파견됐는지는 아세요?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 있다 왔어요. 이스라엘 군인이 학교며 병원이며 가리지 않고 때려 부수고, 수도 없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의사와 기자들은 아예 돌아다니는 표적지라도 되는 듯이 쏘아 죽이는 곳 말이에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목사님은 전쟁과 폭력이 멈추고, 군사적 충돌이 끝나고, 하마스 지도자들의 악한 마음이 꺾이어 이스라엘 땅에 평화가 오기를 함께 기도하자고 하셨는데, 은찬은 대뜸 목소리를 높이며 이스라엘을 비난부터 하고 있었다. 미숙은 혹시라도 지나가던 교인들이 이 모습을 볼까 덜컥 겁이 났다.
“너 그러면 못써! 그렇지 않아도 가짜뉴스나 보고서 이스라엘이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들 때문에 큰일인데.”
“가짜뉴스라고요?”
“은찬아, 그쪽 동네에서 전쟁 중인 건 고모도 알아. 그래서 교회에서도 이스라엘을 위해 100일 기도를 하고 있잖니.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회복되어 평화를 맞이하기를 함께 기도해줘야지, 넌 왜 대뜸 화부터 내는 건데?”
“고모, 2023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2년 반도 안 되는 기간 동안 가자지구에서 국경없는의사회 동료가 열다섯 명이 죽었어요. 전쟁 중에도 의료진은 해치지 않는 법인데, 멀쩡히 의료진 조끼를 입고 안전지대에서 환자를 돌보다가도 살해당한다고요.”
“하마스가 악독하다더니, 정말 너무하는구나. 너는 다치지 않았고?”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살해당했다고요! 그냥 사람 살리러 갔던 의사, 간호사들이! 팔레스타인 사람들 살리려 했다고!”
은찬은 치가 떨린다는 듯 한마디 한마디를 힘주어 말했다.
“고모, 성경 끝까지 안 읽어보셨죠? 여호수아서도, 목사가 설교하는 것만 듣고 성경은 제대로 안 읽으신 것 아니에요? 읽어봤으면 이게 왜 이상한지 모를 수가 없는데. 고모, 기도로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린 다음에 그 사람들은 가나안인들을 학살했어요. 지금 저 이스라엘 군인들이 가자지구의 사람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식량이 반입되지 못하게 길을 막아서 어린애까지 굶겨 죽이고, 기자도 의료진도 다 죽이고 다니는 것처럼 말이에요. 목사가 그런 말을 했겠어요? 하나님 뜻대로 성을 무너뜨려서는, ‘그 성안에 있는 모든 것을 온전히 바치되 남녀노소와 소와 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3 그렇게 여리고 성안에 살아 있는 것은 남아나지 않을 만큼 학살했다는 소리를 목사가 했겠냐고요! 어차피 사람들이 성경을 끝까지 읽지도 않는데, 뭘. 아니에요? 고모도 그래요. 여리고 성 무너뜨리고 나서 학살한 건 아셨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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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숙은 억울했다. 읽기야 했지만 기억에 남을 정도는 아니었고, 목사님도 여리고 전투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응답받은 온전한 승리이며, 하나님의 계획은 광대무변한 것이니 사람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들어 아는 대로 말한 것뿐인데도, 어쩌면 은찬은 고모가 무슨 나쁜 마음을 먹고 흉악한 곳으로 유인하기라도 한 것처럼 이렇게 모질게 구는지.
“지금 가자지구가 그래요. 아침에 인사했던 기자가 머리가 날아간 채 실려 오고, 아기가 태어났다고 달려오던 젊은 아빠가 폭발에 휩쓸려 죽어요. 바로 몇 달 전에 내 손으로 받은 아기가 젖도 못 먹고 굶주려서 뼈와 가죽만 남은 시체가 되어 돌아오는데. 여섯 살 난 여자애가 가족과 함께 피란을 가다가 이스라엘군의 공격을 받아 온 가족이 다 죽었는데, 우린 그 어린애가 제발 구해달라고 애원하는 목소리를 듣고도 갈 수가 없었어요. 열흘이 넘도록 이스라엘군이 물러나질 않아서. 그 애와 가족들, 목숨 걸고 나갔던 구조대원까지 다 죽었는데도, 만족하지 않고, 아주 사람 씨를 말리듯이! 가자지구를 봉쇄해놓고 죽인 어린아이만도 만팔천 명이 넘는데, 교회에서는 전도 열심히 하자면서 여리고가 어쩌고 저째요? 고모, 여리고가 어디 있는지는 아세요? 그 여리고 성도 지금 팔레스타인 땅에 있는 데라고요!”
“은찬아, 여리고 전투는 아주 옛날 일이야. 그때는 전쟁에서 패하면 다 죽이거나 노예로 삼던 시절이잖니.”
“예, 고대에는 그랬죠. 그런데 지금도 아이들 학교나 병원까지 폭격하는 것은요? 입으로는 신의 언약을 말하면서 그 여리고 성의 이름을 딴 대륙간탄도미사일4을 만드는 것은요? 그것보다도 신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짓이 또 어디 있겠어요?”
미숙은 수치스럽고 속이 상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교회 품으로 데려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잘난 조카가, 이런 식으로 길바닥에서 자신을 망신시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 미숙의 속도 모르고 은찬은 빈정거렸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한다고요? 고모, 마태복음에서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할 때 예수님이 뭐라고 하셨는지 기억나요? 자녀의 떡을 취하여 밥상 밑의 개들에게 던짐이 옳겠냐고.5 그게 예수님 이전까지의 생각이었지요. 예수님은 깨인 분이라 말씀은 그렇게 하셨어도 차별 없이 가나안 여자를 도와주셨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자기 이웃들을 학살하는 그 사람들도 그럴까요? 기자들을 과녁처럼 쏴 죽이고 다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건 의료진까지 살해하는 저 이스라엘 사람들도 우리를 이웃으로 생각하고 사랑할까요? 정작 그 사람들은 기도해주는 한국 사람들 따위 밥상 밑의 개만큼도 생각 안 할 텐데?”
전혜진 에스에프(SF) 작가
1. 개역개정판 여호수아서 6:2~5
2. 개역개정판 여호수아서 6:16
3. 개역개정판 여호수아서 6:21
4. 예리코 3호(Jericho 3). 1천㎏ 내외로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대륙간탄도미사일.
5. 개역개정판 마태복음 7: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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