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마 2만 필을 길러낸 곳 [제주 수망리 민오름]

이승태 여행작가, 오름학교 교장 2026. 3. 19.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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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쪽 상공에서 본 수망리 민오름과 한라산. 남쪽의 광활한 초지대는 사진명소다.

제주도에는 '민오름'이 다섯 개 있다. 이 중 제주시 오라동의 민오름(252m)이 가장 낮고, 절물오름 건너의 봉개봉 민오름(651m)이 가장 높다. 산굼부리와 거문오름 사이의 선흘리 민오름(518m), 송당리 민오름(362m)도 있다. 송당목장 안에 있는 송당리 민오름은 목장 방역 문제로 탐방할 수 없다. 다섯 민오름 중 수망리 민오름(447m)은 인적이 드문 중산간 산림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름이 무색해진 민오름

제주에서는 옛날부터 큰 나무가 없이 초지대를 이루며 민둥민둥한 오름을 '민오름'이라 불러왔다. 고유의 이름이 아니라 외형 때문에 붙은 것이다 보니 비슷한 형태의 오름 여럿이 같은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국어사전에 '민'은 '꾸미거나 덧붙인 것이 없는'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설명된다. 땔감에 쓰고 초가지붕을 이느라 오름의 나무와 억새를 다 베어가는 통에 오름 사면은 민둥산처럼 키 작은 풀만 자라는 경우가 허다했는데, 그 산물이 '민오름'인 것이다.

현재 제주에서 '민오름'이라는 이름에 어울릴 만한 외형을 가진 오름은 구좌읍의 용눈이오름 정도, 나머지는 모두 울창한 숲에 덮였고 또 덮여가는 중이다. 이는 다섯이나 되는 '민오름'들도 마찬가지다. 1960~1970년대 나무 심기 운동의 결과로 하나같이 울창한 숲에 덮였고, 초지대를 찾기 힘들어서 '민오름'이라는 이름이 무색해졌다.

말의 등처럼 평평하고 긴 오름 정상부. 평상과 전망 데크가 조성되어 있다.

수망리 민오름은 정상의 화구호로 유명한 물영아리오름 남서쪽에 우두커니 솟았다. 제주시 조천면과 서귀포시 남원읍을 잇는 남조로가 그 사이를 지난다. 그러나 들머리는 오름 남쪽의 서성로에서 이어진다. 서성로에 면한 '헌마공신 김만일기념관' 앞에서 북쪽으로 2.2km 더 들어선 곳에 민오름이 있다. 들어서는 길에 '남원파크골프장'과 '옷귀마테마타운'을 지난다.

남쪽으로 오르고, 북쪽으로 내려가다

탐방로의 들머리와 날머리가 다르다. 오름 남쪽 등성이를 따라 정상에 올랐다가 북동쪽으로 트인 말굽형 굼부리의 서북쪽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동선이다. 날머리가 들머리의 반대편이니 출발지까지는 오름 서쪽을 에두른 콘크리트 포장 임도를 따라 돌아와야 한다.

우마의 출입을 막기 위해 만든 문을 지나면서 탐방이 시작된다. 곧 울창한 삼나무 숲이 나타나고, 길은 짙은 숲을 휘휘 저으며 지그재그 모양으로 조금씩 올라간다. 곳곳에 간벌한 나무가 보이는데도 숲은 여전히 빼곡하다. 바닥을 가득 덮은 삼나무 이파리 사이로 관중을 비롯한 양치식물들이 푸릇푸릇하고, 섬천남성의 빨간 열매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후박나무와 녹나무 같은 상록수의 어린 개체가 삼나무 아래에서 그들만의 숲을 이뤘고, 그루터기에 핀 초목과 이끼도 날 좀 봐달라며 아우성이다. 그 사이로 통나무 계단이 굽이굽이 길 안내를 한다.

빼곡한 삼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탐방로.

정상부 능선이 가까워지자 숲은 소나무가 섞인 편백으로 수종이 바뀌더니, 마지막엔 코가 땅에 닿을 만큼 경사진 구간을 곧장 치고 오른다. 평상과 동백나무 몇 그루가 반기는 정상부 능선은 말의 등처럼 길고 평평하다. 조망도 트여 하늘이 훤하다. 서쪽으로 논고악과 사라오름을 품은 한라산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데크로 이어진 전망대도 마련되었다. 그러나 웃자란 나무들 때문에 사방으로 풍광이 열리진 않아 아쉽다.

삼나무 그루터기에 뿌리를 내린 양치식물. 생명의 순환과정이 신비롭다.
섬천남성 열매. 독성이 강해서 손을 대면 안 된다.

수망리 민오름은 북동쪽으로 구부러진 말굽형 굼부리를 가졌다. 동쪽 굼부리 능선은 온통 숲이 울창할 뿐 길이 없고, 서북쪽으로 굽어 도는 능선을 따라 탐방로가 조성되었다. 기울기가 완만한 탓인지 내려가는 길에는 계단이 없다. 주변 식생은 남쪽 사면과 비슷해서 편백과 삼나무가 주를 이룬 울창한 숲이 이어진다. 굼부리가 깊은 듯, 길 오른쪽 사면이 꽤 가파르게 치닫는다. 오를 때보다 훨씬 긴 코스지만 길이 순탄해서 산책하듯 내려선다. 날머리를 통과하고 보니 1시간 남짓 걸렸다.

헌마공신 김만일과 제주마 유적

민오름 북쪽 기슭엔 '중잣'이라 부르는 오래된 돌담의 자취가 계곡 쪽으로 이어진다. '잣' 또는 '잣성'이란 옛날 목마장과 목마장의 경계를 따라 쌓은 담장을 말한다. 방목하는 말들이 이웃 목장이나 험한 산간으로 넘나들지 못하게 하는 한편 마을 근처의 밭 침범을 막기도 했다. 저지대에 하잣, 중산간지대에 중잣, 한라산 부근에 상잣성을 쌓아 말을 키우고 관리했는데, 지금도 섬 곳곳에 그 흔적이 고스란하다. 수망리 민오름 일대엔 말 관련 유적과 시설이 집중 분포한다. 조선시대 헌마공신 김만일(1550~1632) 때문이다.

정상부 능선에서 보이는 한라산. 그 아래로 논고악과 사라오름이 겹쳐 있다.

민오름이 내려다보는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는 제주마의 본고장으로 통한다. 마을 이름인 '의귀衣貴'에는 김만일의 이야기가 얽혀 있다. 임진왜란 때 의귀 사람인 김만일이 국난극복에 일조하고자 나라에 말을 바친 뒤로 그의 후손이 어의御衣 한 벌을 받은 데서 '옷귀'라 불렸다고 전해진다. 의귀는 옷귀의 한자 차용 표기다.

민오름 정상부. 동백나무와 평상, 전망 데크가 보인다.

처가에서 얻은 말 한 필을 종마로 삼아 한라산 동쪽 100리 넘는 땅에서 수많은 말을 기르는 대목장의 경영인이 된 김만일은 임진왜란 등 전쟁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 수백 필의 전마를 나라에 바쳐 국난극복에 큰 공을 세웠다. 이에 광해군은 김만일을 정2품인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임명하고 '헌마공신獻馬功臣'이라는 칭호도 내렸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말을 바쳤고, 그 공으로 인조 6년(1628)에 현재의 부총리 직급에 해당하는 '종1품 숭정대부'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죽고 나서 후손 83명이 '산마감목관'이라는 직을 세습해 산마장을 운영하면서 고종 32년(1895)까지 300여 년간 국방의 기초가 되는 2만 필이 넘는 전마를 공급했다. 조선시대 관직 가운데 세습된 것은 산마감목관이 유일하다고 한다.

김만일 조상의 무덤이 자리한 반드기왓. 제주 7대 명당으로 알려진 곳이다.

한편, 김만일의 성공과 관련해 풍수지리설에 기반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민오름 남쪽의 '반드기왓'은 지관들이 제주도에서 손꼽는 명당인데, 이곳에 김만일의 증조부가 묻혀 있다. 이 때문인지 김만일은 준마를 길러 제주 제일의 부자가 되었고, 그의 후손은 대대로 나라에 말을 진상해 국방에 큰 공헌을 했다.

Info

교통

제주 중산간 깊은 곳에 자리한 수망리 민오름은 김만일기념관이 있는 서성로의 작은 네거리에서도 2.2km 더 들어서야 한다. 서성로 일대는 마을이 없어서 버스가 다니지 않아 택시나 승용차를 이용해야 한다. 내비게이션에 '옷귀마테마타운'을 입력해 도착한 다음 안쪽으로 1km 더 들어서면 오른쪽에 민오름 들머리가 나온다.

주변 볼거리
헌마공신 김만일기념관

김만일기념관.

서성로에서 민오름으로 들어서는 사거리에 '헌마공신 김만일기념관'이 있다. 서귀포시 남원읍 의귀리 출신인 김만일은 탁월한 목축 기술로 수많은 양마를 길러 임진왜란 등 전쟁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수천 필의 말을 도맡아 감당하며 국난극복에 커다란 공헌을 한 인물이다. 이 공로로 1628년에 지금의 부총리에 해당하는 종1품 숭정대부에 오르며, 헌마공신으로 길이길이 칭송된다. 그와 후손이 300여 년간 제주산마감목관직을 맡아 산마장을 운영한 생생한 역사를 기념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관람시간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이며 입장료는 무료다.

맛집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의 '랑이식당(0507-1330-7332)'은 밀푀유 만두전골 전문점이다. 야채와 과일을 기본으로 국물을 우려내 음식을 만든다. 해서 다소 싱겁다고 느낄 수 있지만, 함께 제공되는 다양한 수제소스가 맛의 균형을 잡아 준다. 하루 만두 200알을 기준으로 만두소와 겉절이김치를 준비하기에 재료가 떨어지면 불시에 영업을 마감하기도 한다. 랑이 밀푀유 만두전골(1만7,000원), 랑이 튀김만두(1만2,000원). 영업시간 10:30~20:00, 연중무휴.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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