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고사의 꽃이 앞당겨 핀 사연 [데이터로 보는 기후위기]

윤신영 2026. 3. 1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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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봄의 꽃’인 벚꽃은 불과 30년 전만 해도 4월 중순에 피었다. 20세기 말 개화가 급격히 앞당겨진 까닭은 기후변화다. 평균기온 상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3월2일 부산 수영구에서 꽃망울을 터트린 벚꽃의 모습. ⓒ연합뉴스

전쟁으로 어수선한 세계에도 봄은 온다. 지난해, 제주 벚꽃은 3월26일 피었다. 부산은 같은 달 28일에 피었고, 서울 벚꽃은 4월4일이 개화일이었다. 제주에서 부산까지 450㎞라고 보면, 지난봄은 대략 초속 55㎝의 속도로 우리 곁을 스쳐갔다.

동네에 따라, 나무에 따라 꽃피는 시기는 제각각이기에, 기상청은 기준을 정해 긴 시간에 걸쳐 한반도 벚꽃 개화 시기의 변화를 살핀다. 서울 종로구의 서울기상관측소 지정 벚나무가 대표적이다. 2024년은 4월1일이었고, 2023년은 3월25일이었다. 역대 가장 이른 시기에 핀 해는 2021년으로, 3월24일 개화했다. 요즘 감각으로, 수도권에서 벚꽃은 3월 말~4월 초봄의 얼굴이다.

하지만 지난날을 되돌아보자. 중년인 필자의 기억 속에 벚꽃은 중간고사의 꽃이었다. 매년 중간고사를 준비하거나 한창 시험을 치를 때 벚꽃이 흐드러졌다. 꽃구경을 가지 못해 아련하게만 바라봤다. 같이 보러 갈 사람이 없어서 그랬던 것은 절대 아니다.

가만, 중간고사? 시험을 3월 말, 아니 4월 초에 치렀나? 기상청 데이터를 보면 아니다. 20년 전인 2006년 서울 벚꽃 개화일은 4월10일이었다. 30년 전인 1996년에는 4월20일로 더 늦었다. 벚꽃은 4월 중순의 봄, 시험 준비에 찌든 시기를 상징하는 얼굴이었다.

이때만 특이했을까. 시간을 더 뒤로 돌려보자. 50년 전인 1976년에는 4월11일이었고 80년 전인 1946년에는 4월20일이었다. 100년 전인 1926년에도 4월23일이었다. 그러니까, 과거에 벚꽃은 늘 4월 중하순에나 피는 꽃이었다. 적어도 약 30년 전까지는 그랬다. 하지만 이후, 불과 한 세대가 채 지나지 않아 벚꽃 개화일은 3~4주 앞당겨졌다. 급기야 올해는 부산 수영구에서 3월1일 벚꽃 개화가 관찰되기도 했다.

이런 비교가 가능한 것은, 기상청에서 같은 지역의 벚꽃 개화 및 만개 시기를 꾸준히 기록해두었기 때문이다. 이 데이터는 100년 이상 존재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벚꽃 개화 시기가 20세기 내내 4월 하순이다가, 20세기 말부터 급격히 앞당겨져 지금은 3월 말~4월 초가 됐음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다.

〈그림 1〉은 이 데이터를 이용해 그린 그래프다. 데이터 포인트를 2차원 공간에 점으로 표시해 분포와 관계를 보는 그래프를 산점도라고 부른다. 연도별 벚꽃 개화 날짜를 나타내는 점을 벚꽃잎으로 묘사했다. 가로가 연도이고 세로가 연중 날짜다. 연한 벚꽃잎 기호는 개화일, 진한 벚꽃잎 기호는 만개일이다. 녹색 선은 각각의 추세선이다.

ⓒ윤신영

일본에도 이런 데이터가 존재한다. 기간이 더 길다. 812년부터 2010년까지, 1200년의 시간을 조망할 수 있다. 그때부터 기상청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역사서 등 문헌에 묘사된 봄꽃 이야기에서 교토 지역에 만개한 벚꽃 날짜를 추리해 모아 데이터화했다. 1930년대부터 여러 연구를 모아 하나의 데이터세트로 짜 맞추었다.

기후변화 절감하게 하는 ‘식물계절’

이 데이터도 시각화해보면, 한국과 아주 비슷한 경향이 보인다(〈그림 2〉 참조). 9세기부터 최근까지 교토의 벚꽃 개화일은, 비록 연도별로 편차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특별히 더 늦어지거나 빨라지는 경향을 발견할 수 없었다. 추세선(녹색 선)을 보면 만개일이 4월10~15일(세로축의 100~105일) 사이였다. 하지만 19세기 이후로 오면 달라진다. 더 늦은 날(그래프 위쪽에 위치한 날)이 사라지고, 더 빠른 날의 비중이 늘었다. 개화일이 앞당겨지는 경향성이 생겼다.

ⓒ윤신영

이 같은 변화의 원인으로는 기후변화가 꼽힌다. 아주 단순하게, 동일한 기간 기온 데이터가 있는 서울의 기상청 데이터로 평균기온 그래프를 그려보면 〈그림 3〉과 같이 나온다. 개화 직전 두 달인 2~3월 기온을 살펴본 그래프다. 벚꽃 개화일 데이터를 위아래로 뒤집은 거울상처럼 보인다. 두 변수 사이의 상관관계를 월별로 다양하게 바꿔가며 계산해봤다. 단일 월은 3월 평균기온이, 두 달 평균으로는 2~3월 평균기온이 개화일과 가장 큰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개화 직전 한 달(3월) 또는 두 달(2~3월)이 따뜻한 현상과, 벚꽃이 빨리 피는 현상 사이에 관계가 깊다는 뜻이다.

ⓒ윤신영

실제로 서울의 2~3월 평균기온은 100년 사이에 약 4℃ 이상 상승했다. 1920년대에는 두 달 평균기온이 0.7℃로, 얼음 어는 날씨를 간신히 면했다. 하지만 2020년대에는 5℃ 가까이다. 봄의 가열화가, 연 전체의 평균기온 상승폭보다 훨씬 가파르다. 이런 가열화는 분명 개화일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전문가의 연구를 보면 이런 상황은 여러 꽃에서 광범위하게 관찰된다. 식물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며 낙엽을 만들고 지는 연간 생장주기를 ‘식물계절’이라고 한다. 식물계절은 기상 및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에, 기후변화의 양상을 체감하기 위한 연구에 널리 활용된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와 김동학 국립수목원 연구사 등이 지난해 한국기상학회 학술지 〈대기(Atmosphere)〉에 발표한 논문이 대표적이다. 국립수목원이 2009년부터 2024년까지 15년간 국립수목원 등 전국 10개 수목원에서 식물 256종을 대상으로 관측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낙엽 활엽수 20종의 잎눈 파열, 개화, 개엽, 단풍 절정 시기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잎눈 파열은 연간 0.94일, 개화는 0.83일, 개엽은 0.79일씩 빨라졌음을 확인했다. 개화의 경우 15년으로 환산하면 12일 이상 앞당겨졌다는 뜻이다. 우리의 관심사인 일본 왕벚나무의 경우 매년 0.6일씩 빨라졌다. 15년간 9일이다. 개화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적 요인으로는 지면 온도가 꼽혔다.

2026년 이은주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팀이 1922~2004년 벚꽃과 진달래, 배꽃 등의 개화일 변화를 분석한 결과도 비슷하다. 다만 수치가 다르다. 벚꽃의 경우 20세기에 걸쳐 연간 0.14일의 빠르기로 개화가 앞당겨진 것으로 나온다. 2004년까지만 해도, 개화일이 빨라지긴 했지만 완만한 속도였다는 뜻이다. 최근 연구는 이후 속도가 몇 배나 빨라졌음을 보여준다. 첫 그래프에서 볼 수 있는 그대로다.

당연하지만 벚꽃은 서울이나 수목원에서만 피지 않는다. 전국 곳곳에서 핀다. 도시에도 피고 도로 주변에도 피고 산에도 핀다. 평범한 사람들이 생활하는 동네나 거리에서도 봄꽃은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출근하다, 등교하다 만나는 봄꽃이 각 지역의 개화 식물계절을 추적할 좋은 단서가 될 수 있다.

봄꽃 제보가 한반도 기후 증언한다

매년 봄, 미국에서는 일반 시민 수천 명과 전문가들이 산과 들, 도심 곳곳을 찾아 새순이 돋아나는 나무와 꽃의 사진을 찍고 기록한다. 전국 각지에서 봄꽃이 처음 움트는 시기, 꽃망울이 터진 시기, 만개한 시기, 떨어진 시기 등을 촘촘히 기록한다. 이 기록은 한데 모여 그해 봄의 걸음걸이를 상세히 보여주는 소중한 기록이 된다. 미국지질조사국(USGS)과 애리조나 대학 등이 2007년 설립한 기후생태 프로젝트인 ‘미국 생물기후학 네트워크(USA-NPN)’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집단지성 시민과학 프로그램이다. 매년 수천 명의 시민과 과학자, 학교와 연구기관이 식물계절 데이터를 수집한다. 이 네트워크의 전신 프로젝트 때부터, 수십 년간 수천만 건의 데이터가 축적돼 있다. 이 자료를 기상 및 기후 기록과 함께 분석하면, 미국 전역의 기후변화 실태를 촘촘히 확인하고 분석할 수 있다. 이 결과는 공개돼 시민들에게 기후와 병해충 전망 등을 제공하는 데 활용된다.

이렇게 생물의 변화를 기후와 관계 지어 함께 분석하는 학문을 생물기후학(phenology)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는 산림청이 전국 국립수목원 등 10곳과 함께 2009년부터 국내 자생식물의 계절별 변화를 관측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민 제보를 받는 프로젝트도 운영 중이다. 정수종 교수팀의 연구도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필자도 2022년부터 매년 벚꽃을 중심으로 전국의 개화 및 만개 상황을 조사하는 별도의 작은 ‘꽃지도’ 시민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주변 모든 곳의 벚꽃을 대상으로 한다. 시민들의 제보를 기반으로 하지만 기상청 공식 발표와 기사 속 보도, 그리고 소셜미디어 등에 언급된 개화 소식도 하나하나 찾아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의 프로젝트가 이미 있지만, 이런 데이터는 여러 세트가 있을수록 좋기에 진행 중이다. 오래 이어져 한반도 자연과 기후의 또 다른 증언자가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운영하고 있다(2026년 조사 결과 페이지: cherry-photo.web.app).

곧 꽃의 계절이 온다. 봄의 얼굴은 매화·산수유·진달래·개나리·목련·살구·벚꽃·배꽃·철쭉·라일락 등으로 변할 것이다. 길에서, 차를 타고 가다, 학교나 직장에서 벚꽃 개화 장면을 마주할 때 제보해주시면 감사드리겠다. 휴대전화로 찍은 벚꽃 사진을 날짜와 대략적인 장소와 함께 보내주시면 된다. 봄도 즐기고, 바빠지는 봄의 걸음걸이의 증언자가 되어 기후 연구에도 기여할 수 있다. 같이 봄꽃 보러 갈 사람을 찾을 때에도 사소한 핑계가 될 수 있다. 이젠 시험 때문에 바쁘다고는 더 이상 둘러댈 수가 없다.

윤신영 (과학 저널리스트)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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