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빈집 은행’·유럽 ‘세금 폭탄’… 방치된 주택, 삶의 터전으로 [심층기획-2026 빈집 리포트]

이보람 2026. 3. 1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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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개방·연결이 성공 지름길
日 도쿄 빈집 요리사 공유 주방 변신
대부분 지자체 ‘아키야 뱅크’ 운영
인터넷·VR로 빈집 상세 정보 확인
지역 자원 인식 돌봄·육아 등 활용
英 빈집 소유주에 세금 최대 300%
개보수 시 부가세 감면 등 당근책
佛 공공 DB로 임대료 기준 고율세
加 실거주 않는 주택 ‘투기 빈집세’

아기자기한 중고샵과 카페 등으로 유명한 도쿄 세타가야구 시모기타자와. 전철역 남쪽 조용한 주택가를 15분쯤 걸으면 ‘나와시로(苗代·못자리) 스탠드’라는 2층짜리 공유 주방 건물이 나온다. 주방장과 내놓는 음식이 요일별·날짜별로 달라지는 곳이다.

지난 11일 찾은 이곳에선 젊은 남성 요리사 2명이 얇게 썬 래디시(적환무)를 곁들인 화이트 라구파스타와 샐러드 세트를 1200엔(약 1만1200원)에 팔고 있었다. 청년들은 창가에 진열해 놓은 신선한 채소를 가리키며 “점심은 단일 메뉴이지만 저녁에는 손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조리한 다양한 음식을 드실 수 있다”며 “저녁엔 술도 파니까 꼭 한번 와 달라”고 했다.

히로시마현은 도쿄 시부야구의 스타트업 스페이스리(Spacely)의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빈집 구석구석을 살필 수 있는 가상현실(VR) 화면도 제공한다. 히로시마 아키야 뱅크 홈페이지 캡처
1975년 주거용으로 지어진 이곳은 원래 한동안 빈집 상태였다. 빈집 해결 서비스를 제공하는 부동산업체가 ‘지역 공동체를 위한 공간으로 쓰이면 좋겠다’는 소유주의 희망에 따라 대대적으로 손을 봐 공유 주방으로 재탄생시켰다. 식당 창업을 준비하는 이들은 약간의 이용료를 내고서 자신의 가능성을 타진할 수 있고, 지역 주민들에겐 근처에 식당 하나가 생기는 효과가 있는 셈이다.
◆빈집 은행 통해 소유주·구매자 연결

일본은 2023년 10월 기준 전국에 900만호(전체 주택의 13.8%)나 되는 빈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지방자치단체, 부동산업체 등이 이같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그 대표적 사례인 ‘아키야 뱅크’(빈집 은행)는 소유주가 매매·임대용으로 내놓은 빈집 정보를 인터넷으로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체계다. 대부분의 지자체가 운영하고 있고, 히로시마현은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볼 수 있도록 가상현실(VR) 화면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국토교통성이 대형 부동산업체와 손잡고 2017년 개설한 ‘전국판’ 빈집 은행에서는 희망 지역, 종류(매매·임대·거주용·사업용), 주변 생활환경(도심 접근성·육아 친화적·농사 가능·바다 전망 등), 가격별로 조건을 골라 살펴볼 수 있다. 관심이 가는 빈집을 클릭하면 내외부 사진은 물론 평면도, 건축연도 등의 상세 정보가 나온다. 빈집이 방치되거나 강제 철거되지 않고 다른 누군가의 삶의 터전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지난달 기준으로 전국 1134개 지자체 1만9075개의 빈집이 전국판에 등록돼 있었다.

일본 히로시마현 아키야 뱅크(빈집 은행)에 올라온 빈집 매물. ‘2층에서 바다를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물건’이라는 설명과 매매가격(400만엔), 내외부 사진 등이 게재돼 있다. 히로시마 아키야 뱅크 홈페이지 캡처
일본에서는 2015년 ‘빈집 대책 특별조치법’이 시행돼 안전·위생상 주변 환경에 악영향을 끼치는 빈집은 강제 철거가 가능해졌다. 2023년부터는 관리가 부실한 빈집을 고정자산세 감면 혜택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에 따라 빈집 소유주의 관리 부담도 커졌다. 빈집이 5만8000호로 전국 최다인 세타가야구는 소유주들에게 상속, 관리 대행, 매매, 임대, 철거 등에 관한 무료 상담을 해주고 있다. 매달 설명회도 개최한다. 지역 변호사회와 부동산협회, 건축사협회, 은행 등이 이를 거들고 있다. 빈집은 지역 자원이라는 인식 하에 시민사회단체와 협업해 고령자 돌봄 시설, 육아 거점, 지적장애인 방과후 활동 공간 등으로도 활용한다.

일본 대부분의 지자체가 세타가야구처럼 빈집 문제 대응 전담 조직을 갖추고 있다. 빈집을 고쳐서 쓸 수 있도록 수리 비용을 지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385만호가 임대나 매각 계획도 없고 별장으로 활용되는 것도 아닌 ‘방치 빈집’으로 남아있다.

◆공공DB화 등으로 빈집 활성화 나서

일본 등 아시아처럼 유럽에서도 빈집 문제는 심각하다. 한국보다 앞서 빈집 문제를 겪고 있는 영국은 ‘공권력’을 내세워 빈집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영국은 2000년대 초반 이후 지속적으로 주택 가격이 오르면서 저소득층과 중산층이 살 만한 ‘저렴주택’ 부족 문제를 겪고 있다. 반면 빈집은 늘고 있다. 런던 도심이나 철도 주변 인기 통근지역은 매각 차익을 위해 집을 사들인 뒤 방치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빈집이 증가하고 있다. 웨일스, 노퍽 해안 등 인기 휴양지와 관광지에선 ‘세컨드 홈’이 많아지면서 빈집이 생겼다. 빈집이 늘면서 주거환경 악화, 우범지대 등의 문제도 심각해졌다.

영국 정부는 빈집을 재활용한 저렴주택 공급 확대로 이 두 문제를 해결하기로 했다. 중앙정부는 주택 소유주의 재산권 행사에 우선할 수 있는 관련 법률을 제정하고 지방정부는 지역 실정에 맞게 구체적인 적용방안을 결정해 시행하는 방식이다.

먼저 빈집 소유주에 대한 세금을 늘렸다. 집이 비어있는 기간에 따라 카운슬택스(Council tax)의 최대 300%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카운슬택스는 지역 주택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쓰레기처리, 치안 등 지방 행정 서비스에 대한 비용으로 지불하는 세금이다. 이를 일종의 벌금처럼 활용한 것이다.

당근책도 함께 쓴다. 오래된 빈집을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개보수하면 부가가치세를 감면해주고, 빈집을 활용해 저렴주택으로 공급하면 정부지원사업비를 지급한다.

프랑스는 데이터와 세금, 플랫폼을 결합한 방식으로 빈집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통계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990년대 120만호 수준이던 빈집은 2023년 310만호로 늘었다. 전체 주택의 8.2%를 차지했다. 프랑스는 전문 연구기관이 빈집 현황을 조사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정부 공공데이터 시스템에 매년 반영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중앙정부는 2013년부터 빈집에 연간세금을, 지방정부는 2007년부터 거주세를 부과하고 있다. 빈집 임대료를 기준으로 첫해 17%, 이후에는 34%까지 세금을 매기는 구조다. 여기에 전국 지방정부 네트워크가 참여하는 가이드를 통해 빈집 확인 절차와 해소, 재활용 사례를 공유하고 있다. 소유주와 부동산 중개업자를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매매와 임대도 지원한다. 단순히 세금을 걷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거래와 활용까지 이어지도록 설계한 것이다.

캐나다 밴쿠버도 비슷한 방식의 강한 개입에 나섰다. 1년 중 6개월 이상 실제 거주하지 않거나 임대로 활용하지 않는 주택에 이른바 ‘투기 빈집세’를 부과하고 있다. 투자 목적으로 주택을 사들인 뒤 비워두는 관행이 집값 상승과 임대주택 부족을 부추긴다는 판단에서다. 제도 시행 이후 2018~2019년 5920호의 아파트가 장기임대주택으로 전환되면서, 방치된 주택이 실제 임대 시장으로 유입되는 효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보람 기자, 도쿄=유태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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