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조 잭팟에도 ‘계약자 배당’ 눈감은 삼성과 당국 [왜냐면]


이한상 |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국제공익감독위원회 위원
40년 전, “투자 이익의 90%를 배당하겠다”는 약속을 믿고 유배당 보험에 가입한 148만명의 계약자들이 있다. 삼성생명은 이들의 보험료로 당시 5천억원 상당의 삼성전자 주식을 사들였다. 현재 약 90조원, 무려 180배에 이르는 잭팟이 터졌다. 그러나 40년간 계약자들에게 배당한 총액은 3조9천억원에 불과하고, 2022년의 마지막 배당금은 고작 145억원이었다. 삼성생명은 “이제 줄 돈이 없다”고 말한다.
2010년 삼성생명 상장 당시 계약자들이 자기 몫을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주식 매각 시점은 회사와 주주의 판단 영역”이라며 채권자인 계약자에게 기다리라고 했다. 당국은 여론 무마용으로 ‘계약자 지분 조정 부채’를 내놨다. 가상으로 주식을 다 처분할 경우 이익의 3분의 1을 계약자 몫으로 장부에 표시하라는 것이다. 주식을 팔 생각이 없으니 계약자에겐 공수표요, 회사에는 면죄부였다.
2023년 새 보험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었다. 핵심은 “실제로 지급할 가능성이 있는 돈만 부채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주식을 팔 계획이 없으면 줄 돈도 없으니 보험부채를 ‘0원’으로 기록해야 한다. ‘안 팔고 영원히 배당하지 않겠다’는 삼성생명의 속셈이 재무제표를 통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다. 이는 소송과 삼성그룹 총수에 대한 비난 여론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궁지에 몰린 삼성생명은 “투자자 보호를 위해 공수표 부채라도 유지하는 게 낫다”는 해괴한 논리로 국제기준 적용을 거부했다. 이른바 ‘일탈 회계’다. 생명보험협회를 앞세워 16개 생명보험사 전체가 집단으로 2년 연속 국제기준을 거부하도록 회계 흑역사를 썼다.
예고 없던 삼성전자 자사주 매입 소각으로 지분율이 올라간 삼성생명은 지난해 삼성전자 주식을 불가피하게 일부 팔아야만 했다. “절대 안 판다”는 전제가 무너지자 일탈 회계를 중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달았다. 금융당국도 지난해 12월 일탈 회계 중단을 명령했다.
삼성은 변하지 않았다. 최근 공개된 재무제표에서 과거의 공수표 부채들은 모두 회삿돈인 ‘자본’으로 변했다. 반면 유배당 계약자에게 줄 보험부채는 결국 ‘0원’이다. “돈 굴려 3~4% 벌어봐야 (보험 기대수익률에 따른) 지급 이자가 7%라 매년 1조원 손실이다. 팔지도 않겠지만, 팔아도 못 준다”고 주장한다. 삼성생명 홍보팀의 회계 주술, 만트라다.
이 주장은 엉터리다. 첫째, 손실은 이미 장부에 반영되었다. 이를 재활용해 삼성전자 주식 매각 이익과 상계하겠다는 것은 이중 계산의 눈속임이다. 둘째, ‘보험부채 0’은 하늘이 두쪽 나도 주식을 파는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한다. 그러나 현실은 작년에도 올해도 이런 가정이 틀렸음을 확인한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삼성생명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삼성전자 매각 이익을 주주 배당 재원에 포함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줄 수 있는 돈을 계약자에게는 외면하면서, 이재용 회장과 삼성물산 등 대주주에게는 아낌없이 퍼주겠다는 말이다.
문제의 본질은 ‘이재용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의 사슬’에 있다. 현행법상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을 총자산 350조원의 약 3%인 약 10조원 이상 보유할 수 없다. 그러나 금융위원회는 법률을 위반하며 취득원가 5천억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는 특혜성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금융 소비자의 자금이 오너 일가의 지배 수단으로 전락한 채, 금산분리 원칙도 148만 계약자의 재산권도 부정되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 자산의 거의 20%가 삼성전자 단 한 종목에 집중되어 있다. 반도체 사이클의 부침에 따라 회사의 건전성이 통째로 흔들릴 수 있는 기형적 구조지만, 경영진은 총수의 지배구조 사슬을 지키느라 입조차 떼지 못하고 있다. 가장 소름 돋는 사실은 148만 유배당 계약자 대부분이 70~80대라는 점이다. 그들이 세상을 떠나면 배당 청구권도, ‘연간 1조원 손실’도 함께 사라진다. 90조원은 주주 몫으로 이재용 본인과 일가의 승계 재원이 된다. ‘못 주는 것’이 아니라 ‘안 주는 것’이고, 계약자들이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방 안에 코끼리를 두고도, 정치권과 당국은 “삼성이 잘 돼야 나라가 산다”는 논리로 외면해 왔다. 계약의 이행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핵심이며 금융기업 수탁 책임의 근간이다. 40년 전 고객과 맺은 계약은 그들이 세상을 떠나기 전 지켜져야 한다. 삼성전자 주가가 고공행진하고 있는 지금, 늦었지만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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