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그런 걸 사요] 샀다, 또 샀다. 멈출 수가 없다

김지은 기자 2026. 3. 19. 0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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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이유로 긴 설 연휴에는 말레이시아에 있었다. 당일까지도 뭔가 사오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다.
사진 박찬용 인스타그램

[우먼센스] 설 연휴 말레이시아로 긴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혹시나 싶어 출발 직전에 텅 빈 대형 캐리어를 하나 더 챙겼다. 나중에 그 빈 공간이 이번 여행의 복선이 되었다.

여행의 주 목적은 자료 탐색과 원고 마감이었지만 사고 싶던 게 딱 하나 있었다. 그 지역을 대표하는 오래된 고급 호텔의 오리지널 빈티지 그릇. 다만 그런 걸 팔긴 하는지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생각만 하고 있었다. 바로 그 그릇을 도착한 당일에 보고 말았다. 숙소 근처 카페 쇼케이스에. 몇 개씩 쌓인 채 방치되어 있었지만 바쁜 점원들은 나의 판매 문의에 거절만 했다. 상상 속 물건의 실물을 보자 애가 타기 시작했다.

사진 박찬용

그 접시가 의외로 가까이 있었다. 호텔 안의 공식 기념품 가게에. 심지어 연도와 세대별로 종류까지 다양했다. 문제는 가격. 내가 원한 연대와 디자인의 빈티지 접시는 한화로 환산했을 때 10만원이 넘었다. 큰 맘 먹으면 사겠지만 내가 그렇게 큰 마음을 먹어야 할까? 고민했다. 결론은 안 사기로. 이 결론을 내기 위해 가게에 세 번 가며 시간만 낭비했다. 더운 곳이니 한 번 다녀올 때마다 땀이 쏟아졌다.

미련을 접기 위해 마지막으로 벼룩시장에 한 번만 가 보기로 했다. 만약 그 접시가 있으면 사고 아니면 말고. 도착하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호텔 매장이나 골동품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다양한 도자기와 접시들이 있었다. 종류는 많고 가격은 쌌다. 중국제. 일본제. 말레이시아제에 영국제까지. 대신 연식이나 진품 여부는 확인 불가. 기준은 이번에도 내 눈과 손 뿐. 거기 더해 그곳의 한국인은 나 뿐이었다.

사진 박찬용 인스타그램

금연에 실패한 끽연가처럼 나는 '안 산다'는 다짐도 '빈티지 호텔 접시 살까'라는 고민도 잊고 곧 피부색이 짙은 아시아 친구들과 필사적인 흥정을 시작했다. 나는 전날 길거리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현금이 없는 걸 아쉬워하며 마지막 동전 한 닢까지 털어 온갖 걸 샀다.

영국산 골동품 접시와 중국산 청화백자 찻주전자같은 걸. 숙소로 돌아와 세면대에 뜨거운 물을 채우고 물비누를 탄 뒤 도자기를 담가 먼지를 불려 닦았다. 도자기는 금새 뽀얀 힌 반사광을 냈다. 그걸 닦아내며 생각했다. 하 내가 이 짓을 또.

나는 일정 마지막 날까지 그곳에 갔다. 평일 셀러는 주말 규모의 30%정도밖에 안 되었는데 눈에 아른거리는 그릇이 있어서. 내가 원한 그릇을 파는 아저씨는 내가 떠나는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말레이시아의 그곳을 다시 찾는다면 그릇이 세 번째 이유쯤은 될 것 같다. 어딘지는 안 밝히겠다. 여러분이 사갈까봐.

사진 박찬용 인스타그램

박찬용 작가 
프리랜스 에디터. 다양한 매체를 거쳐 남성지 <아레나옴므플러스> 피처 디렉터로 일했다. 단행본 <요즘 브랜드> <잡지의 사생활> <모던 키친> 등을 냈고 2023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박찬용의 집'을 출품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CREDIT INFO

기획 김지은 기자

글ㆍ사진 박찬용 작가
 

김지은 기자 a05190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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