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대한 분노’를 동맹에 쏟아냈다

워싱턴/박국희 특파원 2026. 3. 19.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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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나토 파병 거부에 실망, 한·일 도움 필요없어” 격분
호르무즈 지원 놓고 정면충돌… ‘서방 동맹’ 균열 더 벌어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7일 백악관에서 열린 성 패트릭 데이 행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對)이란 군사 작전과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구가 촉발한 갈등이 미국과 동맹국 간의 균열과 불신을 다시 한번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사전 협의 없이 전쟁을 시작한 뒤 동맹에 위험 분담을 요구하는 미국과, 이에 선을 긋는 동맹국들이 정면충돌하면서 서방 동맹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양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 동맹국들의 잇따른 파병 거절에 노골적인 분노를 표출했다. 그는 소셜미디어를 통해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매우 실망했다”며 “거의 모든 국가가 이란 핵 저지에 동의하면서도 군사 작전 관여는 거부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일본, 호주, 한국 등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다”고 선언했다. 트럼프는 이후 기자들 앞에서도 “그들은 매우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했다.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이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대화한 직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살면서 그가 이렇게 화가 난 것을 본 적이 없다”고 전할 정도였다.

앞서 유럽을 비롯한 주요 동맹국들은 미국의 일방적인 파병 구상에 일제히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리는 이 분쟁의 당사자가 아니며 호르무즈 작전에 절대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이건 나토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했고, 미국과 가장 가까운 영국 키어 스타머 총리마저 “영국은 더 확대된 전쟁에 휘말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동맹의 지원이 필요 없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거친 선언은 즉각적인 독자 군사 행동으로 이어졌다. 미 중부사령부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안의 이란 강화 미사일 기지들에 2.3t급 지하 관통탄(벙커버스터) 여러 발을 투하해 대함 순항미사일 전력을 타격했다고 밝혔다. 동맹들의 미온적 태도가 이어지자, 보란 듯이 단독 무력시위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최대 가스전 폭격당한 이란 “경제 전면전… 걸프국 석유시설 보복”

이란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와 이와 직결된 아살루예의 천연가스 정제 시설 단지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미사일 폭격을 받았다고 이란 파르스통신이 18일 보도했다. 양국은 그간 이란의 핵·미사일 등 군사 시설을 중점 타격해 왔는데 산업 기반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으로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란이 즉각 강력한 보복을 천명하면서 걸프 지역 정유 인프라를 겨냥한 파괴적 공격이 잇따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폭격에 무너진 이란 주택가 18일 이란 적신월사가 공개한 미국·이스라엘 공습 현장 사진. 폭격 직후 연기가 피아오르는 가운데 부서진 건물 잔해 주변에 구조요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적신월사는 촬영지점의 구체적인 위치를 밝히지 않았다./AFP 연합뉴스

이란 국영방송은 이날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의 3, 4, 5, 6 지구가 미국·이스라엘의 공격을 받아 불이 나면서 가동이 중단됐다”고 보도했다. 파르스통신은 “적(미국·이스라엘)이 아살루예 가스 정제 시설을 공격했다”며 큰 폭발음이 단지 곳곳에서 여러 차례 들렸다고 전했다. 미국의 소리(VOA) 페르시아어 방송도 X에 “사우스파르스 정유 시설 공격으로 추정된다”며 검은 연기에 뒤덮인 현장 동영상을 올렸다. 이번 공격으로 인한 인명 피해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걸프 해역과 맞닿은 아살루예의 정제 단지는 세계 최대 해상 가스전 중 하나인 사우스파르스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파이프로 받아 정제·가공하는 곳으로 이란의 대표적 에너지 시설이다. 아살루예가 있는 부셰르주 당국은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의 여러 지구가 시온주의자(이스라엘)와 미국이 쏜 발사체에 맞았다”며 “피격된 지구는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해 가동을 중단했다”고 말했다.

이란은 걸프 지역의 석유·가스 시설에 대해 보복하겠다고 예고했다. 보복 공격을 주도하고 있는 혁명수비대는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카타르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면서 사우디의 삼레프 정유소와 주바일 석유화학 단지, UAE 알하산 가스전, 카타르의 석유화학 공장 등 구체적인 시설의 이름까지 거론했다. 이란 정권은 “전쟁의 방정식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며 “전쟁의 추는 제한된 전투에서 ‘전면적 경제 전쟁’으로 옮겨졌다”고 했다. 파르스 통신은 “오늘 밤부터 레드라인은 바뀌었다”며 “적이 이번 공격으로 이란이 물러서도록 압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면 전적으로 오산”이라고 했다.

이란이 공언한대로 보복이 현실화할 경우 이스라엘의 추가 공격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날 “오늘 모든 전선에 걸쳐 ‘중대 이변(significant surprises)’이 예상되며 이란과 레바논 내 헤즈볼라와의 전투가 더욱 격렬해질 것”이라고 했는데 이란에 대한 광범위한 공격의 범주에 핵심 에너지 시설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이날 상황으로 걸프국가들은 비상이 걸렸다. 이란과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을 공유하는 카타르 외무부는 긴급 성명을 내고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은 전 세계 에너지 안보, 중동 시민, 환경에 대한 협박”이라며 “당사자들은 최대한 자제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이번 공격은 위험하고 무책임하다”며 미국과 이스라엘을 규탄했다. 이란의 보복 공격에 대해 연대해 온 미국·이스라엘·걸프국 사이에 균열이 생기는 모양새다.

이란은 전쟁 발발 후 사우디 라스 타누라 정유소, 카타르에너지의 액화천연가스(LNG) 생산 라인, UAE 루와이스 정유·석유화학 단지와 푸자이라 석유 산업 단지, 바레인 밥코(Bapco) 정유 시설 등 에너지 인프라를 집중 공격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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