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파’ 이란 2인자 제거… 전쟁 탈출구 되레 좁아졌다

파리/원선우 특파원 2026. 3. 19.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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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리자니 사망, 득인가 독인가
17일 사망한 알리 라리자니는 이란 정권 최고 실세로 서방과의 대화도 총괄했다. 그가 서방과의 핵 협상 대표를 맡고 있던 2006년 3월 오스트리아 빈 주재 독일 대사관저에서 유럽 인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왼쪽부터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독일 외무장관(현 대통령), 필립 두스테블레이지 프랑스 외무장관, 라리자니,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존 소어스 영국 외무부 정무국장./로이터 연합뉴스

이란은 18일 안보 수장인 알리 라리자니(68) 최고국가안보회의 사무총장이 전날 미국·이스라엘의 공습에 사망했다고 공식 확인하며 ‘가혹한 복수’를 하겠다고 밝혔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이날 성명에서 “가혹한 복수가 순교자들의 피로 자신의 손을 물들인 테러리스트 범죄자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이슬람혁명수비대 산하 바시즈 민병대를 이끌던 골람레자 솔레이마니 총지휘관과 에스마일 카티브 이란 정보부 장관의 사망도 확인됐다. 이번 ‘2차 참수 작전’으로 ‘이란이 더욱 궁지에 처할 것’이라는 전망과 ‘보복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예측이 엇갈린다.

라리자니는 지난달 28일 개전 공습으로 알리 하메네이 등 최고위 지도부가 폭사한 뒤 군 통수권을 행사하며 이스라엘·걸프국에 대한 보복을 총괄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라리자니 제거로 이란의 전쟁 수행 능력이 상당 부분 손상됐다고 보고, 이 기세를 몰아 이란 지도부를 완전히 궤멸하겠다는 입장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란 정권 지도부가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인 에피 데프린 준장도 “우린 이란 정권의 모든 지도부를 타격하고 있으며 은신 중인 모즈타바 하메네이도 추적해 결국 무력화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라리자니 제거가 이란의 전쟁 지휘부 붕괴로 직결되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도 적잖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중동 외교 전문가 하미드레자 아지지는 르몽드에 “이란 체제는 이런 종류의 손실과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돼 있다”고 했다. 이스라엘 정보기관에서 이란을 담당했던 대니 시트리노비치도 뉴욕타임스(NYT)에 “이란이 새로운 지도자를 빠르게 대체할 수 있는 능력을 고려하면 아직 본질적인 타격을 주지 못했다”고 했다. 라리자니 본인도 하메네이 폭사 뒤 대국민 성명에서 “헌법에 따라 지도부 승계 계획이 마련돼 있다”며 “지도자를 제거한다고 이란이 불안정해진다고 생각한다면 망상”이라고 했다.

라리자니는 ‘냉정한 실용주의자’라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로, 이란 언론계·군부·정치권에서 폭넓은 경력을 쌓았다. 이란의 종교·세속 영역, 강경 군부와 온건 정치권의 가교 역할을 하며 서방과의 협상 채널도 유지했다. ‘이란의 케네디 가문’이라고 불리는 유력 집안에서 태어나 수학·칸트 철학 등 ‘리버럴 학문’을 섭렵했다. 하메네이 정권의 2인자로서 지난 1월 시위 대학살을 사실상 지휘하면서도, 전쟁 직전까지 오만에서 진행된 미국·이스라엘과의 협상을 막후에서 총괄했다.

2017년 6월 한국을 방문한 이란의 알리 라리자니 국회의장이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이낙연 국무총리와 악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알자지라는 “라리자니가 하메네이 사후 대외적으로는 강경 메시지를 내면서도 협상 가능성을 되살리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했다. 경험과 권위를 바탕으로 이란 내 강온 세력의 이견을 노련하게 조율해 온 라리자니가 제거되면서 오히려 강경파의 입지가 더 커지고, 물밑 협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혁명수비대 항공우주군 사령관 출신인 바게르 갈리바프 국회의장 등 강경파가 부상하는 상황이다. 이스라엘 싱크탱크인 텔아비브 국가안보연구소의 시마 샤인은 “실제로 전쟁을 수행하는 세력은 혁명수비대”라며 “앞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이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가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NYT는 이런 상황을 두고 “이스라엘은 ‘표적 제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며 “예상치 못한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이란은 라리자니 사망 이후에도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이라크 등에 미사일·드론 공격을 쏟아부었고 텔아비브에선 2명이 사망했다.

이란 당국은 간첩·반역 혐의로 500여 명을 체포했고, 반체제 인사 처형·감금 등도 계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국에서 위성 인터넷 ‘스타링크’ 단말기 수백 대를 압수하는 등 체제 단속 강도도 높아지고 있다.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들은 전쟁 도중 대규모 시위가 다시 발생하면 학살이 재발할 것이라고 미국 당국자들에게 말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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