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어라 마셔라’ 사라진 술집들, 점심 뷔페 팔고 두쫀쿠 만든다
“입장할 때 3000원만 받습니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의 한 일본식 술집 입구에는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다. 2024년 개업한 이 가게는 입장료 3000원을 받고 생맥주 300mL 한 잔을 1900원에 판다. 보통 3000~4000원 하는 생맥주 한 잔의 절반 가격이다. 튀김 안주는 개당 900원. 다른 술집에서 닭튀김 한 접시에 1만원 정도를 받는데, 가격을 대폭 낮추고 낱개로 파는 식으로 손님 부담을 낮췄다. 일본 주점에서 손님 한 명당 입장료로 300~500엔(약 3000~5000원) 정도를 받고 간단한 술안주를 내놓는 ‘오토시(お通し·일종의 자릿세)’를 도입한 것이다. 술집 주인 안모(32)씨는 “최소한의 ‘입장료’를 받되 술과 안주 가격을 대폭 낮췄다”며 “1차만 짧게 즐기겠다는 손님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전략”이라고 했다.

고금리·고물가와 경기 한파로 고전하는 주점이 생존 전략을 짜내고 있다. 술과 안주 가격을 대폭 할인하고 디저트를 무료로 제공하고 나선 것이다. 아예 저녁 영업을 포기하고 ‘낮 장사’에 나선 술집도 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회식 문화가 간소화한 데다 갈수록 술을 덜 마시는 문화가 퍼지면서 생존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오후 7시에 찾은 서울 강남구의 한 호프집. 50평 규모 홀을 채운 테이블은 25곳 중 2곳에만 손님이 있었다. 이 호프집은 맥주 3병을 주문하면 1병은 공짜로 주는 ‘3+1’ 행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님들은 생맥주 한두 잔씩 마시고 자리를 떴다.
이튿날 낮 12시 찾은 이 호프집은 전날 저녁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모든 테이블이 손님으로 꽉 찼다. 다만 술 대신 밥을 팔았다. 1인당 8900원을 받고 미트볼 덮밥과 후라이드 치킨, 김치말이 비빔국수 같은 메뉴를 무제한 제공한다. 주인 주원정(56)씨는 “저녁 술 장사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어 평일 오전 10시 30분부터 4시간 동안 한식 뷔페 영업을 한다”며 “뷔페 매출이 전체 매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고 했다.

국세청에 따르면 국내 주요 주류(맥주·소주·탁주) 출고량은 2022년 289만1880kL에서 2024년 278만8263kL로 감소했다. 질병관리청의 지역건강통계를 봐도 전국 고위험 음주율(최근 1년간 1회 평균 남성은 소주 7잔·여성 5잔을 최소 주 2회 마신 비율)은 작년까지 3년째 하락 중이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n차 회식’은 옛말이 됐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 차장 장모(44)씨는 “코로나로 회식 문화가 사그라진 뒤로 부장급 간부들도 회식을 주도하기를 꺼린다”고 했다. 직장인 백승호(28)씨도 “동료들의 참여가 저조해 회식은 두 달에 한 번꼴 정도고 그나마도 2시간 정도면 끝난다”고 했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호프집은 맥주를 잔이나 병 단위가 아니라 10mL 단위로 판다. 이런 판매 방식으로 바꾼 뒤로 점심 때 가벼운 ‘낮술’을 하려는 직장인들이 늘었다고 한다. 한 호프집 사장은 “1차 모임이 이뤄지는 오후 6~8시 사이엔 주류 가격을 50% 할인하거나 소주·맥주를 1인당 한 병씩 무료로 주는 곳도 많다”고 했다.

서울 금천구에서 한식 주점을 운영하는 조모(43)씨는 지난 1월부터 소주·맥주 한 병 가격을 반값으로 내려 각각 2000원·3000원에 팔고 있다. 이윤을 줄이더라도 손님을 더 끌어보려는 박리다매 전략이다. 조씨가 술값을 내린 뒤로 주변 다른 술집도 잇따라 가격을 내리면서 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가 술집들도 영업 전략을 바꾸고 있다. 예전 대학생들보다 술을 덜 마시는 MZ세대가 늘면서다. 서울 성동구에 있는 한양대 앞에서 술집을 하는 백모(37)씨는 지난달부터 손님들에게 두바이쫀득쿠키나 버터떡 같은 디저트를 1인당 1개씩 무료로 준다. 백씨는 “디저트를 만드는 데만 매일 3시간을 쓰지만, 이런 행사라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했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코로나 이후 개인주의 가치관 확산과 건강 중시 풍조, 경기 침체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절주 문화가 확산하고 있다”며 “주류 판매에만 의존해 온 술집, 식당 주인들이 끊임없이 영업 전략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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