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통해 삶을 묻다] 사랑한다고 말하세요
피부처럼 촉촉하고 탐스러운
사랑은 만질 수 있어 위안 줘

사랑은 사람의 수만큼 개념이 많다. 다만 한 가지 뜻을 같이 한다면 추상으로만 머물다 가는 것은 피어보지 못하고 지는 꽃과 같다. 사랑은 별것이 아니다. 그 사람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살아 움직이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쓰다듬고, 예쁘다고 말해야 하며, 맛있는 것을 같이 먹고, 좋아하는 것을 같이 보고 싶어 하고 또 따뜻한 피가 순환하도록 해야 한다. 서로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서 피가 절로 데워져야 따뜻한 피가 돈다. 그렇게 하려면 말해야 한다. 사랑을 대체할 탐스러운 언어로 말해야 한다. 살갖처럼 따뜻하고 촉촉한 단어들로 삶을 채워야 한다.
시 '사랑'을 쓴 로버트 크릴리(1926-2005)는 20세기 에밀리 디킨슨으로 불리는 미국 현대 시인이다.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나 어릴 때 한쪽 눈을 잃었다. 로버트 크릴리의 시는 '떠들썩하게 큰 목소리와 분방한 시의 리듬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일상의 언어로 간명한 형식을 추구'하며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가끔 시를 읽는 일이 지치고 힘들 때가 있다. 글을 읽는 것이 힘들다는 것은 그 글이 스미지 않고 계속 흘러내린다는 것이다. 그 흘러내리는 것을 스미게 해보겠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지치는 시간이 길다.
아주 일상적인 언어로 쉽게 가슴에 와닿게 시를 쓰는 것이 더 어렵다. 어떤 시는 그럴듯하게 썼지만 읽고 해독을 하고 나면 허무해질 때가 가끔 있다. 로버트 크릴리의 시 '사랑'은 참으로 쉬운 일상어로 시를 쓰고 있지만, 거듭 읽을수록 마음에 더 와닿는다. 밥 같다. 물리지 않는 밥 같은 시다.
촉촉하고 따뜻한 단어를 더이상 상대에게 말할 수 없을 때 사랑은 이미 시들어 있다. 결국에는 죽어버린 것이다. 추상은 사랑의 세계에서 머물 수 없다. 구체적인 따뜻하고 피가 도는 언어가 '사랑'의 주변을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은 촉촉함과 따뜻함을 담은 언어를 먹고 산다. 그것이 사라졌을 때 사과나무에서 떨어진 사과와 같다. 생명력이 다한 것이다. 사과나무가 붙들 힘이 없어서 놓아버린, 매달려 있지 못해 추락한 사과와 같다.
따뜻함과 촉촉함을 담은 단어를 상대에게 쓴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이고 그것이 사라졌을 때는 이미 사랑은 지고 없는 것이다. 사랑은 생명나무다. 피가 도는 말을 먹어야 하는 생명나무다. 그리고 우리에게 전한다. 안도와 위안을 말이다.
로버트 크릴리의 시 '사랑'을 읽으며, 내가 생각했던 사랑은 어떤 것이고, 사랑은 무엇이 있어야 사랑일까를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사랑
탐스러운 단어들이 있다
촉촉하고
따뜻한
살갖처럼.
만질 수 있어서, 그것들은
인간으로서 누리는,
안도와,
위안을 전한다.
그것들을 말하지 않으면
모든 욕망은
추상적으로 변하고
결국에는 죽어 버린다.
-- 로버트 크릴리「나는 긴장을 기르는 것 같아」(정은귀 옮김, 2025, 민음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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