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부르자 시간이 움직였다, 김옥선… 한 자리에 놓인 삶들이 서로를 바꾸기 시작했다

제주방송 김지훈 2026. 3. 18.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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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선 혜림 인선》 서울예술상 시각 부문 최우수상 선정
사진은 재현이 아니라 배열…기록은 현재를 조직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창동레지던시에서 열린 김옥선 개인전 《옥선 혜림 인선》 전시 전경. 사진은 서로 다른 시간과 기록이 한 공간에 배열되는 방식을 보여준다. (작가 SNS)

이름이 먼저 도착합니다.
이미지보다 앞서 남고, 설명보다 오래 지속됩니다.

옥선, 혜림, 인선.

이번 전시는 세 사람을 나열하지 않습니다. 
각자의 시간을 한 자리에 놓고, 그 사이에서 무엇이 드러나는지만 남깁니다.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낸 이름들이 한 공간 안에 놓이는 순간, 시간은 흐르지 않고 다시 움직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4회 서울예술상에서 사진작가 김옥선의 개인전 《옥선 혜림 인선》이 시각 분야 최우수상으로 선정됐습니다.

총상금 2억 2,500만 원 규모로 확대된 이번 시상은 결과보다 기준을 드러냅니다.
무엇을 새롭게 제시했는지보다, 어떤 방식으로 읽어내는지가 판단의 중심에 놓였습니다.

김옥선 개인전 《옥선 혜림 인선》 전시 전경. 인물의 일상 공간과 기록이 함께 놓이며, 개인의 시간이 구체적인 장면으로 드러난다. (작가 SNS)


■ 인물은 고정되지 않고 시간은 서로를 비춘다

전시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됩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쳐 각기 다른 자리에서 삶을 이어온 여성들입니다.

사진과 영상, 인터뷰, 아카이브가 한 공간 안에 놓입니다.
각자의 삶은 분리되지 않고 서로를 비추며 의미를 형성합니다.

전시는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시간은 직선으로 정리되지 않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교차합니다.

한 인물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다른 삶의 흔적이 끼어듭니다.
순서는 정해져 있지 않고, 관객의 이동에 따라 다시 만들어집니다.

김옥선은 이 작업을 과거를 정리하는 일이 아니라, 지금 다시 불러오는 과정이라 설명합니다.
“서로 다른 시간에 살아온 삶을 현재의 시점으로 소환해, 개인의 이야기로 다시 마주보게 하는 작업”이라며 “각자의 시간이 한 자리에서 동시대의 감각으로 읽히길 바랐다”고 밝혔습니다.

전시장 안에서는 속도가 맞지 않습니다. 
이미지를 따라가려 할수록, 오히려 시선이 붙잡힙니다.
몇 걸음 못 가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순서가 아니라, 머문 시간으로 기억이 남습니다.

전시에 포함된 인물 초상 작품. 개별 인물의 삶이 전시 전체 구조 안에서 다시 읽힌다. (작가 SNS)


■ 사진은 더 이상 남기지 않고, 조건을 드러낸다

사진은 오랫동안 세계를 붙잡는 기술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보이는 것을 기록하고, 순간을 고정하는 방식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사진은 다른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이미지를 남기는 것보다, 이미지 사이에서 무엇이 형성되는지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김옥선의 작업은 그 변화를 분명하게 드러냅니다.
각각의 이미지는 독립된 결과로 소비되지 않습니다.

이미지와 이미지 사이에서 시간이 형성됩니다.
그 사이에서 서로의 위치가 바뀌고, 의미가 이동합니다.

사진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무엇이 보이게 되었는지를 남깁니다.

이때 기록은 결과가 아니라 조건이 됩니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한 자리에 놓일 수 있는 방식, 그 자체가 드러납니다.

사진과 기록 자료가 함께 배치된 설치 장면. 개인의 서사가 시각적 구조 속에서 재구성된다. (작가 SNS)


■ 축적된 시간들, 한 지점에서 또렷해진다

김옥선은 오랜 시간 사진을 이어온 작가입니다.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약 30년 가까이 제주에 거주하며 작업을 지속해왔습니다.

여성, 국제결혼 커플, 이주민 등 서로 다른 조건이 교차하는 삶을 다뤄왔습니다.

대상은 특정 집단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 방식입니다.
《Woman in a Room》(1996), 《Happy Together》(2002), 《Hamel’s Boat》(2008), 《No Direction Home》(2011) 등 주요 작업을 통해 이러한 흐름을 이어왔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MoMA PS1 등 국내외 기관에서 전시를 진행했고 다음작가상, 동강국제사진상, 일우사진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축적이 한 자리에서 읽히는 지점입니다.
흩어져 있던 시간들이 한 공간 안에서 구조를 이루며, 작가의 궤적이 또렷하게 드러납니다.

김옥선 개인전 《옥선 혜림 인선》 포스터 이미지.


■ 제주는 시선을 만든 환경으로 남는다

김옥선의 사진에서 제주는 특정 풍경으로 제시되지 않습니다. 시선을 형성한 조건으로 작용합니다.

1994년부터 제주에 거주하며 작업을 이어왔고, 외부에서 들어온 시선과 내부의 감각이 교차하는 지점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왔습니다.

이 과정에서 장소는 배경이 아니라 전제가 됩니다.
삶의 환경이 시선을 만들고, 그 시선이 이미지의 배열을 결정합니다.

■ 지금, 이 전시가 요구하는 읽기 방식

서로 다른 삶이 한 자리에 놓이는 방식은 지금 더 중요해졌습니다.
각자의 시간이 분리된 채 축적되는 시대에서 전시는 그것들이 어떻게 다시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기록은 계속 쌓이지만, 무엇이 남는지는 배열에 의해 결정됩니다.

김옥선의 작업은 그 지점을 정확히 짚습니다.
이미지를 생산하는 시대에서, 이미지를 어떻게 놓을 것인가를 묻습니다.

사진과 아카이브, 구조물이 결합된 전시 설치. 이미지 간 관계와 배치가 작품의 핵심으로 작동한다. (작가 SNS)


■ 먼저 떠나는 것은 보는 사람이다

사진 몇 장이 아니라, 시간이 겹쳐 있었습니다.
눈에 들어온 것은 얼굴이었지만, 나갈 때 남는 것은 그 사이에서 오래 멈춰 있던 어떤 순간입니다.

김옥선은 그 시간을 붙잡지 않습니다. 한 자리에 두고, 그 안에서 무엇이 드러나는지만 남깁니다.

전시는 끝났는데, 어디서부터가 끝인지 선을 긋기 어렵습니다.

이미지는 그대로 남아 있는데, 먼저 떠나는 건 보는 사람 쪽입니다.
남겨진 것은 이미지가 아니라, 그 자리에 잠시 머물렀던 시간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이 공개한 시상식 포스터.


■ 아직 결정되지 않은 한 자리, 시상은 다음 달로 이어진다

서울예술상은 각 분야 최우수상 수상작을 선정한 뒤, 이들 가운데 대상을 결정합니다.
시각, 공연, 문학 등 전 부문을 통합해 단 한 편이 최종 선정되며, 별도의 상금이 추가로 수여됩니다.

지금 발표는 끝이 아닙니다. 최종 결과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제4회 서울예술상 시상식은 다음 달 5일 오후 5시, 여의도 KBS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서울문화재단은 작품의 완성도뿐 아니라, 제시하는 의미와 파급력을 함께 평가해 대상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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