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화가다[이은화의 미술시간]〈414〉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1548년, 스무 살의 젊은 화가가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나 카타리나 판 헤메선이 나 자신을 그렸다. 1548년, 나이 20세." 플랑드르 화가 판 헤메선의 '자화상'(1548년·사진)에는 화가로서의 자부심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판 헤메선의 시선은 동시대 화가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 작품이 화가의 일상을 묘사한 최초의 자화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당시 화가의 자화상은 낯선 장르가 아니었다. 그러나 판 헤메선의 시선은 동시대 화가들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순간, 즉 화가의 일상을 화면 속에 담았다. 알브레히트 뒤러처럼 자신을 귀족이나 성자, 혹은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이상화하던 전통과는 다른 접근이었다. 그림 속 화가는 이젤 앞에 앉아 붓을 든 채 막 작업을 시작하려는 참이다. 이젤 위에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머리 스케치가 놓여 있다. 화가의 도구와 작업 과정까지 가감 없이 드러내는 형식은 당시 매우 이례적이었다. 이 작품이 화가의 일상을 묘사한 최초의 자화상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유다.
치밀한 구성도 흥미롭다. 화가는 오른손에 붓을 쥐었고, 작업 중인 머리 스케치의 위치 또한 실제와 반대다. 이는 거울에 비친 이미지를 반전시켜 표현한 결과다. 무엇보다 경이로운 사실은 화가가 여성이라는 점이다. 16세기 유럽에서 여성이 정식 미술 교육을 받고 전문 화가로 입신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판 헤메선은 화가였던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수련하며 실력을 쌓았고, 마침내 안트베르펜 화가 길드의 마스터로 인정받았다. 이후 귀족과 부유한 시민들의 초상화로 명성을 얻었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섭정이던 오스트리아의 마리아의 후원도 받았다.
판 헤메선의 자화상은 단순한 자기 묘사를 넘어선다. 여성 예술가가 스스로의 존재를 역사의 화면 위에 직접 새겨 넣은 상징적 장면이기 때문이다. 붓과 팔레트를 든 젊은 화가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선언하는 듯하다. “나는 화가다”라고.
이은화 미술평론가
Copyright © 동아일보.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여객기 몰던 사람이 살인마로…‘조종사 정신건강 검증’ 도마에
- 李 “주식 오늘 팔았는데 돈은 왜 모레 주나”…거래소 “단축 추진”
- 트럼프 “호르무즈 이용국에 해협 책임 맡기면 어떨까”
- 승객 지키고 숨진 버스기사…날아온 바퀴에 맞고도 갓길에 안전 정차
- BTS 컴백에 서울 곳곳 붉은빛…하이브 “정치적 해석 말아달라”
- 美 중식당서 로봇이 접시 깨며 난동…“정지 버튼이 없어”(영상)
- 하투하 ‘강강술래 경호’ 눈총…“인천공항 입구 독차지”
- 이스라엘 “테헤란 공습해 이란 정보장관 제거”
- 美, 호르무즈 조준하는 이란 미사일 기지에 벙커버스터 폭격
- 공소청·중수청법 법사위 통과…국힘 “19일 본회의서 필리버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