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핫플-충남 아산 현충사] 뜨거운 그 역사 이순신 장군 숨결을 느껴봐!

광주일보 2026. 3. 18.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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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6년 이순신 전사 후 100년 뒤 건립
조선 숙종 임금 ‘현충사’ 사액 현판 하사
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기도
광복 후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조명
경내 면적 4배로 넓히고 유물 일반 공개
옛집·이순신 장군 활쏘던 장소 그대로
옛 현충사 모습. /김정규 기자
흩날리는 봄바람에 상춘객들의 발걸음이 한창이다. 흥행 영화에 몸을 맡겨 \'왕의 유배지\'를 둘러보고, 지하철로 도심 속을 누비는 \'힐링 여행\'에 푹 빠져 주말을 보내기도 한다.

이번엔 어디를 가볼까? 다양한 축제와 꽃들의 개화 소식에 또 한 번 주말 계획을 짜본다.

\'왕과 사는 남자\'의 영월, 청령포를 다녀왔다면 아직까지도 국내 최다 관객을 자랑하고 있는 \'명량\', \'노량\', \'한산\'(3개 영화 누적 약 3000만명)의 이순신 장군, 현충사는 어떨까? 넓은 경내를 거닐고 현충사 고택 앞 활짝 핀 작은 청매화, 홍매화를 감상해보자. 간 김에 유명한 온양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겨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300년 역사 속 충무공 사당

충남 아산의 방화산 기슭에 자리한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지 약 100여 년 뒤인 1706년 설립됐다. 두 해전인 1704년에 충청도 유생들이 \"호령하고 싸우던 남해안 곳곳에는 많은 사당이 서고 사액까지 되었는데 공이 옛날 사시던 마을이며 거리가 온전한 아산 땅에 사당이 없음이 안타깝다\"며 조정에 사당 세우기를 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사당은 장군의 옛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 잡았으며 \"서쪽을 등지고 동쪽을 향한 터\"에 지어졌다. 1707년에는 조선 숙종이 \'현충사(顯忠祠)\'라는 사액 현판을 하사하며 국가적으로도 그 의미를 인정받았다. 이후 이순신의 조카 이완과 5대손 이봉상 등이 함께 배향되면서 사당의 규모와 위상도 커졌다.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지 약 100여 년 뒤인 1706년 설립됐다. 1707년 조선 숙종이 ‘현충사(顯忠祠)’라는 사액 현판을 하사하며 국가적으로 그 의미를 인정받았다. /김정규 기자
◇역사 고증하는 현충사유허비

현충사는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는 아픔을 겪었다.

당시 대원군은 이순신을 배향한 사당으로 통영의 충렬사만을 남겨뒀다. 충렬사가 국가 차원(사도수군통제영)에서 제사를 지낸 곳인데 반해 현충사는 지역이나 가문 중심의 사우로만 본 것이다. 이때 없어진 현충사 자리, 지금의 충무교육원 뒷산 기슭에 1906년에 세워진 \'현충사유허비\'가 있다. 을사늑약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지역 유림들이 장군을 선양하고, 일제의 주권 침탈 저항과 민족의식 고취를 위해 건립한 것이다. 이 비로 현충사의 위치와 철폐된 시기를 고증할 수 있다. 유허비 옆에는 팔각 돌기둥과 주춧돌이 남아 당시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난중일기. <현충사 제공>
◇나라 잃은 시대, 영웅으로 부활

단재 신채호는 1908년 \'대한매일신보\'에 이순신의 전기를 연재했다. 다른 열사들도 잇따라 장군의 전기를 펴내면서 민족을 구할 용기를 북돋는 영웅으로 추앙했다.

당시 아산의 충무공 종가는 가세가 크게 기울었다. 장군의 묘소 임야와 위토마저 은행에 저당 잡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위기였다. 이 소식은 1931년 \'동아일보\'에 민족적 수치라는 제목의 사설로 보도되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직후 \'이충무공유적보존회\'가 조직됐고, 보도 한달만에 연 2만 여명이 성금을 모아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 현충사를 중건했다. 종가 인근 지금의 본전 바로 아래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의 목조 기와집을 지어 올리고 그때까지 종손이 보관해오던 숙종의 사액현판을 다시 달았다.

1932년 6월 5일 전국 각지에서 군중이 모여 현충사 낙성식과 청천 이상범 화백이 그린 영전 봉안식을 축하했다. 당시 영정을 모신 가마를 중심으로 횃불과 깃발을 앞세우고 수 많은 군중들이 뒤따르는 거대한 행렬의 모습이 \'신동아\' 1932년 7월호에 화보로 전해오고 있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충무공의 정신으로 국난을 극복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나 1951년 \'민족의 태양\'이 발간되고 같은 해 8월에는 온양역 앞에 이시영 부통령이 현판을 휘호한 이충무공기념비각이 세워졌다. 또 일제 강점기 중건될 당시 봉안됐던 이상범 영정 왜색 지적에 새로 영정 제작이 추진됐다. 1953년 10월 현충사에서 장우성이 그린 새영정의 봉안식이 거행되기도 했다.

현충사에서 바라본 아산시 전경. /김정규 기자
◇국가 성역화 작업

광복 이후에도 이순신은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다시 조명됐다.

1961년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1962년 3월 현충사 경내 면적을 4배 가량 넓히고 장군의 유물을 일반에 공개하도록 했다. 그 해 4월 28일 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충무공 탄신기념제전에 참석, 이후 충무공 기념사업과 현충사 정비사업을 직접 주도했다. 이때부터 과거 충무공 종가에서 관리하고 아산교육청, 아산군, 충청남도 등이 주관하던 현충사와 충무공탄신기념제전을 국가 차원에서 관리, 주관한다.

1966년부터 탄신기념행사 국가행사 법제화를 진행하고 충무공의 위업과 현충사 행사를 교과과정에 반영하도록 했다. 1969년까지 현충사 성역화사업의 결과 경내가 확장되고 본전과 유물전시관이 다시 크게 지어졌다. 이 일대는 사적 155호-아산이충무공 유허로 지정되기도 했다. 또 1972년부터 1974년까지 2차 성역화사업 추진으로 경내의 조경사업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현충사 경역이 확장돼 지금에 이른다.

◇충무공 옛집과 활터

이순신 장군이 장인으로부터 물려받아 살고 그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왔던 곳이다. 1969년 성역화 당시 현충사 경내가 지금의 모습으로 넓혀지면서 이곳에 살던 충무공 종손은 바깥으로 이주를 하고 일반에 공개했다. 성역화 당시에는 단순한 문화제의 복원이 아니라 \'성역\'이라는 새로운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어서 본래의 모습과는 다르게 더 크고 웅장하게 지어져 예스러운 멋이 사라졌다는 평가도 있다.

집 뒤편 가묘에는 장군의 신위가 모셔져 있으며 지금도 해마다 충무공의 기제사를 이곳에서 모시고 있다.

옛집 옆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순신이 활을 쏘던 자리라고 전해져 온다. 활터를 둘러싼 방화산 능선은 이순신이 무예를 닦으면 말을 탔던 곳이라 하여 치마장이라 불린다.

현재 ‘정려’에는 정조가 하사한 이순신과 조카 완, 4대손 홍무, 5대손 봉상의 충신편액과 팔대손 제빈의 효자 편액이 걸려있다. /김정규 기자
◇효자, 열녀 기리는 정려

정조가 하사한 이순신과 조카 완, 4대손 홍무, 5대손 봉상 등 네 분의 충신편액과 팔대손 제빈의 효자 편액이 걸려있다. 이 정려는 과거에는 마을 입구에 있었으나 성역화 사업 당시 경내를 넓히고 조경을 하면서 지금과 같이 경내 연못 옆으로 자리하게 됐다. 또 원래 동남쪽을 바라보면서 서 있었는데 참배객들의 편의를 위해 서향으로 방향을 바꾸어 해체 복원했다.

◇충무공이순신기념관

충무공 이순신의 위업을 기리기 위해 현충사 내에 세운 기념관이다.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현충사에 충무공 관련 역사자료와 유물을 체계적으로 수집·보존·전시하고, 충무공의 위업과 임진왜란사 등을 소개하기 위해 건립됐다. 이순신 장군을 모신 대표 사당이라는 역사적 의의와 충무공의 진품 유물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국립기관이다.

기념관은 전시관, 교육관, 사무동 등 3개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 유물로는 ‘난중일기’(국보, 1962년 지정), ‘이순신 유물 일괄’(보물, 1963년 지정), ‘이순신 관련 고문서’(보물, 2008년 지정) 등 국보 9점, 보물 20점의 국가지정유산을 비롯해 991점의 각종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2005년 현충사종합정비 기본계획에 따라 2006년 기본설계, 2007년 실시설계를 거쳐 2008년 착공했다. 2011년 4월 28일 준공, 개관한 기념관은 충무공관련 유물과 임진왜란 당시 해전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전시,교육하기 위한 역사 테마관이다. 연면적 3,104m2에 지하 1층, 지상 1층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다.

기념관은 이종호 건축가가 설계한 작품으로 잔디를 입힌 언덕 모양의 두 건물(사무동과 교육관) 속에 흙벽을 입힌 전시동이 안겨있는 형상이다. 기존의 경관을 거슬리지 않게, 자연 지세를 최대한 살린 건물로 평가받고 있다.

/대전일보=김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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