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중환의 진화의 창]부모는 조각가가 아니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2026. 3. 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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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못내 부담스럽다. 인터넷, 유튜브, 맘카페에서 자녀의 운명은 부모에게 달렸으니 완벽한 육아를 해야 한다고 다그친다. 군대 육아, 인문 육아, 제로 육아, 거울 육아 등 육아법도 가지각색이다. 아이는 부모가 빚어내기에 따라 무슨 모양이든 될 수 있는 고무찰흙과 같다고 간주된다. 부모는 아이에게 책을 많이 읽어주고, 자주 대화하고, 때리지 말고, 자존심을 긁지 말고, 오감을 자극하며 놀게 하고, 너그럽지만 원칙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잔소리가 길게 이어진다. 정말로 양육 방식은 아이가 갖게 될 지능, 성격, 행복, 종교적 성향, 정치적 성향, 폭력성 등에 영향을 끼칠까? 한부모 가정이나 맞벌이 가정의 부모는 왠지 아이에게 미안함을 느껴야 할까?

행동유전학자들은 입양아 연구나 쌍생아 연구를 통해 유전자 또는 환경이 사람들 사이의 형질 차이에 이바지하는 정도를 측정했다. 이를테면, 태어나자마자 각자 다른 가정에 입양되어 자란 두 일란성 쌍둥이가 그냥 무관한 두 사람에 비해 서로 더 유사했다면, 유전자가 유의미한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인간 유전체를 분석하는 최근 연구들로 다시금 뒷받침된 결론은 명백하다. 가정 환경은 지능이나 성격 같은 복잡한 형질에 거의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지난 글에서 사람 간의 형질 변이 가운데 대략 50%는 유전자의 영향이라고 했다. 나머지 50%는 공유 환경 또는 비공유 환경의 영향이다. 공유 환경은 한 가정의 자녀들이 공유하는 환경이다. 가난에 시달리기, 부모가 엄하게 자녀를 키우기 등이다. 비공유 환경은 형제들이 공유하지 않는 환경이다. 강도를 당하기,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기 등이다. 중요한 점은, 공유 환경의 영향이 매우 적다는 것이다. 운에 상당히 좌우되는 비공유 환경의 영향이 나머지 50%를 거의 다 차지한다.

예를 들어보자. 수학 강사 정승제씨는 “수학 머리에 유전자도 중요한 것 같아요. 부모가 의사이고 교수면 자식도 수학 잘하던데요?”라는 어느 학생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건 환경의 영향이지! 걔는 어릴 때부터 부모를 보면서 목표를 높이 잡았던 거야.” 부모의 고학력은 공유 환경에 속한다. 수학적 추론 능력의 개인 차이에 공유 환경은 거의 기여하지 않는다(단, 최근의 연구는 시험 점수의 차이에 대해서는 소득이나 고학력 같은 공유 환경이, 유감스럽게도, 적지 않게 기여함을 보고했다).

아이가 장차 어떤 사람으로 자랄지에 대해 부모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많은 분이 이렇게 반응할 듯하다. 사실, 심리학, 교육학, 아동가족학에서 쏟아지는 수많은 연구가 부모와 자식 사이에 높은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였다. 책을 많이 읽는 부모는 책을 많이 읽는 자식을 두는 경향이 있다. 내성적인 부모는 내성적인 자식을 두는 경향이 있다. 폭력적인 부모는 폭력적인 자식을 두는 경향이 있다.

문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높은 상관성은 양육 방식이 아이를 만든다는 주장을 입증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상관관계는 인과관계가 아니다. 예를 들어, 극우 성향의 부모는 극우 성향의 자식을 두는 경향이 있다. 이는 부모가 집에서 ‘윤어게인’을 읊어대는 바람에 자식이 극우가 되었다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극우 성향을 만드는 유전자가 부모와 자식에게 모두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할 수도 있다. 놀랍게도, 부모와 자식 간의 높은 상관성이 유전자 때문일 수도 있다는 대안 가설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심리학 논문은 극히 드물다.

부모는 아이의 지능과 성격을 뜻대로 빚어내는 조각가가 아니다. 그렇지만, 부모는 여전히 아이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양육은 무엇보다 윤리적인 책임이다. 크고 강한 부모가 작고 약한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화풀이하는 행동은 아이를 불행에 빠뜨리는 죄악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다른 관계와 다르지 않다. 내가 상대에게 어떻게 했는지가 두 사람이 맺는 관계의 속성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다. 예컨대, 남편이 아내를 챙기는 행동은 아내의 성격을 뜻대로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둘 다 기쁨과 평안을 얻기 위해서이다. 뭘 모르는 신혼부부를 제외하면, 그 어떤 기혼자도 배우자의 성격을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아내를 바꿀 수 없으니, 아내에게 함부로 대해도 괜찮아!”라고 말하는 남편은 없다. 즉,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대했는지는 장차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대할지에 영향을 끼친다. 자식이 오래도록 부모에 대해 행복한 기억을 갖기 위해서라도, 부모는 자식을 잘 키울 필요가 있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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