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와 삶]작은 평화주의자는 큰 평화주의자

조은 시인 2026. 3. 1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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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좋아하지만, 나는 전원 속에서 살지 못한다. 농촌, 농갓집, 소도시의 지방도로가 있는 풍경 모두 좋아하지만, 그런 곳에 세간을 풀기엔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다. 성장기에 그런 곳에서 수많은 살생과 살육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병아리 때부터 애지중지 돌보던 닭을 스스럼없이 잡아먹은 이웃 어른들, 정든 개들의 폭력적 사라짐 같은 과거의 일들은 아직까지도 내 정신에 영향을 미친다. 가끔 쉬러 가는 농촌에서도 쉴 새 없이 불이 꺼졌다 켜졌다 하는 양계장이라도 봐야 하니 내적 평화를 지향하는 내게 전원생활은 말 그대로 꿈이다.

이처럼 나약한 감수성을 지녔으면서도 정의감은 강해서 내가 만일 팔레스타인 같은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팔레스타인해방기구의 여전사가 되어 십대 때 이미 생을 마감했을 것도 같다. 그러니 대체로 밉살맞고 가끔씩 사랑스러운 이 나라에 태어난 것이 내겐 얼마나 큰 행운인가.

겁이 많은 사람이 왜 남들보다 먼저 평화와 공익을 위해 행동하게 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들은 폭력적 상황의 긴장감을 견딜 수가 없어 빨리 끝장을 보려고 하는 것이라는 나름의 결론은 아마도 지극히 주관적일 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모두가 말하듯 광기의 역사다. 대부분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두루두루 좋은 결말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있었던가. 다시 지구촌에서 발발한 전쟁을 보며 우리 민족의 민속놀이인 소싸움 한 번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던 내가 또 남의 나라 전쟁에 절망하게 되는 것이 과연 나약함 때문일까.

내 기억엔 분노의 눈물이 아닌 환희의 눈물을 흘리던 수많은 군중이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옷을 입고 운집한 우리나라 사람들이다. 그 또한 일종의 광기라고 생각하던 나로서는 패배의 절망감에 울부짖는 지구편 반대편의 사람들이 예사로 보이지 않았다. 한쪽은 웃고, 한쪽은 울지 않는 인간의 기록적인 역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최근 알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경주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약간 충격을 받았다. 그가 산에 핀 들꽃 한 송이도 함부로 꺾지 못할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인지, 인간의 욕망을 대신해 달리는 말들에 대한 연민을 느꼈기 때문인지 그 사실을 안 뒤 그의 이미지는 내게 확연히 달라졌다. 누가 눈앞에서 닭싸움을 붙이거나 닭싸움을 말리지 않고 구경만 했다면, 그 장면을 보기 전의 그와 그 장면을 본 뒤의 그는 내게 같은 사람이 아닐 것이다.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라는 책에도 닭 이야기가 나온다. 유머러스한 저자 더글러스 애덤스는 장신의 영국 남자였음에도 동물학자와 함께 멸종위기의 동물을 찾아가는 배에 실린 닭들을 나만큼이나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어떻게 달래줄 길 없는 깊고 두려운 의심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닭 네 마리와 함께 작은 배를 타고 먼 길을 가는 건 불편한 경험이다”라며.

글과 사진을 통해 알게 된 더글러스 애덤스만큼이나 장신인 네덜란드 남자를 며칠 전 집 앞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와 같이 있던 남자는 프랑스 사람이었는데, 정장 차림의 두 남자는 뜻밖에도 우리 동네의 임박한 재개발을 잘 알고 있었다. 두 남자의 시선은 그들 앞 길고양이들에게 고정되어 있었고, 앞으로 그 고양이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내게 물었다. 우울한 대답 대신 나는 그들이 대사관 직원이냐고 되물었고, 그들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수많은 전쟁의 희생자들, 생래적 특성상 재개발이 시작되면 매몰되어 죽을 확률이 높다는 길고양이들, 인간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처한 생명들이 더없이 안타깝지만 구체적인 도움의 손길은 너무 늦거나 극소수에게만 다다를 것이다. 그 정의롭고 인정스러운 손이 느릿느릿한 조막손이 아니길 빌어본다.

조은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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