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향만리) 겨울 저수지 / 고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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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떠나보내고 겨울 저수지를 읽는다.
보다시피 겨울 저수지는 예사로운 시편이 아니다.
화자는 첫수 초장에서 겨울 저수지 풍경을 흰 구름의 날개가 머물다 가는 곳, 이라고 평화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겨울 저수지가 얼음 창고가 아니라 울음창고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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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구름의 날개가 머물다 가는 곳/ 마디마디 푸른 대숲 분절의 비명들/ 계곡 위 범종소리가 아스라이 닿을 듯// 일가족 차에 탄 채 물속으로 달렸다는데/ 안전벨트 맨 채로 좌석에 앉았다는데/ 쨍그랑 깨뜨려진 햇살 살갗을 파고든다// 아차 하면 헛딛어 빠질 뻔한 가장자리/ 핏줄 같은 개울물이 흘러내려 모여든다/ 저기 저 터질 수 없어 꽝꽝 언 울음창고
『마늘』(2025, 다인숲)
겨울을 떠나보내고 「겨울 저수지」를 읽는다. 지난 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지금은 봄이 와서 매화와 산수유, 목련꽃이 만개 중이다. 하지만 일교차가 심하다. 그래도 봄은 봄이니 마음껏 봄을 누릴 일이다.
보다시피 「겨울 저수지」는 예사로운 시편이 아니다. 둘째 수를 읽다가 깜짝 놀랐다. 끔찍한 사건이 진술되고 있어서다. 세상은 워낙 광대하여 하루 중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지구촌 한쪽에서는 참혹한 전쟁 중이다. 화자는 첫수 초장에서 겨울 저수지 풍경을 흰 구름의 날개가 머물다 가는 곳, 이라고 평화롭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다가 곧장 마디마디 푸른 대숲 분절의 비명들, 이라고 어떤 사건을 암시하듯이 분절의 비명을 클로즈업시킨다. 그리고 계곡 위 범종소리를 도입하여 그 소리가 아스라이 닿을 듯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다른 암시다. 드디어 끔찍한 장면이 등장한다. 일가족이 차에 탄 채 물속으로 달렸다는 것이다. 그것도 안전벨트 맨 채로 좌석에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안전벨트는 승객의 안전을 위해 매는 띠다. 그러나 물속에서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탈출 못 하게 하는 족쇄다. 무슨 연유인지는 헤아릴 길은 없으나 운전자가 독한 마음을 먹었기에 이토록 끔찍한 일을 결행했을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그럴 수가 있을까 싶지만, 세상에는 기상천외의 사건이 적지 않으니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하여 화자는 쨍그랑 깨뜨려진 햇살 살갗을 파고든다, 라고 진술하고 있다. 셋째 수에서 화자는 아차 하면 헛딛어 빠질 뻔한 가장자리를 주시한다. 그곳에 핏줄 같은 개울물이 흘러내려 모여드는 것을 본다. 이렇듯 생명의 물은 부단히 공급되고 있는데, 끔찍한 사고로 목숨을 잃은 이들은 다시는 돌아올 수가 없다. 그래서 결구는 피맺힐 듯이, 뼈를 저밀 듯이 저기 저 터질 수 없어 꽝꽝 언 울음창고, 라고 울부짖듯이 외치고 있다. 겨울 저수지가 얼음 창고가 아니라 울음창고가 된 것이다. 울어도 울어도 못다 울 울음이다. 뾰족한 해결책이 없는 울음창고 앞에서 평화나 안녕을 거론할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워낙 복잡하기에 온갖 일들이, 갖은 사건과 사고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서 때로 몹시 불안케 한다. 「겨울 저수지」는 그러한 극도의 불안정한 삶을 직시하면서 은연중 자존감을 가질 것을 일러주고 있다.
이정환(시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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