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선수생활 점수로 준다면 95점…‘람보르 길리’ 있어 쇼트트랙 든든”[이사람]

이종호 기자 2026. 3. 18.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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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여자 쇼트트랙 전설’ 최민정
메달 총 7개로 올림픽 통틀어 韓선수 최다
4관왕 된 몬트리올 세계선수권 가장 만족
후배들 실력 쟁쟁 ‘포스트 최민정’ 수두룩
복귀 요청 많지만 은퇴 번복은 절대 없어
제2 인생은 생각중…체육계 돕는 일 할것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이 12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이어 이번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조태형 기자

“(김)길리가 있어서 큰 걱정은 하지 않고 있어요. 이번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을 준비하면서 길리 나름대로 부담스럽고 힘든 부분이 있었을 텐데 다 이겨내고 첫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쳤잖아요. 선배로서 대견하더라고요. 그런 길리가 앞으로 에이스 역할을 해주면 한국 쇼트트랙은 ‘세계 최강’ 자리를 유지할 겁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을 끝으로 올림픽 무대 은퇴를 선언한 한국 쇼트트랙의 ‘고트(GOAT·Greatest Of All Time, 역대 최고 선수)’이자 ‘빙상 여제’ 최민정(27·성남시청)은 12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 사옥에서 서울경제신문과 만나 그의 빈자리를 걱정하는 팬들에게 이렇게 전했다. 이번 올림픽에서 2관왕을 차지하며 자신을 넘어선 ‘절친한 후배’ 김길리(22·성남시청)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그대로 전해졌다.

최민정은 “뛰어난 주니어 선수들이 생각보다 많다”며 “그 선수들이 앞으로 대표팀에 발탁되면 더 빨리 성장해 내 자리를 완벽하게 대신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을 10년 넘게 이끌어온 대선배답게 따끔한 충고도 이어갔다. 그가 강조한 것은 두 가지. 최민정은 “각자 가지고 있는 개성은 살리되 기본을 지키는 게 빠르게 기량을 끌어올리면서 수준급 선수로 롱런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가짐을 강조했다. 그는 “수많은 사람들이 묵묵히 뒤에서 도움을 주기 때문에 선수가 기량을 끌어올리고 조금이라도 편하게 운동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운동을 도와주는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묵묵하게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반드시 밝게 빛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정은 특유의 빠른 스피드와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을 바탕으로 유망주 시절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2014년 고등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에 선발된 후 10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한국 여자 쇼트트랙을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해왔다. 국가대표로 선발된 이듬해인 2015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2관왕(여자 3000m 계주, 여자 1500m)에 오르며 샛별처럼 떠올랐다.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이 12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이어 이번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조태형 기자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이 12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에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2018 평창 동계 올림픽과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에 이어 이번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 따낸 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조태형 기자

최민정이라는 이름을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올림픽 무대다. 2018 평창 대회를 통해 올림픽 무대에 데뷔해 15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며 2관왕에 올랐다. 2022 베이징 대회에서는 1500m 금메달에 이어 1000m와 3000m 계주에서 은메달을 차지했다. 올해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에서도 3000m 계주 금메달과 1500m 은메달을 추가했다. 최민정은 세 차례 올림픽에서 통산 7개(금 4개, 은 3개)의 메달을 목에 걸어 동·하계 올림픽을 통틀어 역대 한국 선수 최다 메달리스트에 등극했다. 최민정은 “한국 선수 역대 최다 메달 기록을 세운 게 아직도 잘 믿어지지 않는다”면서 “선수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이런 기록을 세운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내가 그 기록을 깨게 돼 정말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최민정은 평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성격 덕분에 ‘얼음 공주’라는 별명도 있다. 그런 그가 이번 동계 올림픽 때 여자 15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뒤 시상대에 오르며 눈물을 쏟아냈다. 왜 그랬을까. 그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무릎과 발목이 좋지 않았고 마음도 많이 힘들었는데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돼 후련했다”며 “은퇴 결정도 겹치면서 경기가 끝난 직후부터 감정이 벅차올라서 그렇게 울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한국 여자 쇼트트랙 사상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최민정. 자신의 선수 생활에 본인 스스로는 몇 점을 줄 수 있을까. 그는 95점이라는 꽤 높은 점수를 줬다. 최민정은 “성적에 있어서는 아쉬운 순간도 없지 않았지만 대회를 준비하며 최선을 다했던 모습, 승리를 위해 빙판에서 누구보다 노력했던 과정을 떠올리면 선수로서 더할 나위 없이 최선을 다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꽃다운 나이인 10대 후반 소녀 시절부터 가장 아름다운 시절인 20대까지 여러 유혹을 이겨내며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 끊임없이 채찍질해온 선수 생활에 대한 자부심이 전해졌다. 그 나이의 일반인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훈련과 인내를 통해 스물일곱 살 최민정이 일궈낸 성과를 돌아보면 100점에 부족한 5점은 대한민국이 채워줘도 되지 않을까.

수많은 메달과 트로피 중 스스로가 생각하는 가장 빛났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동계 올림픽 시상대에서 누구보다 빛난 그였던 터라 세 번의 대회 중 하나를 예상했지만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최민정이 뽑은 선수 생활 최고의 순간은 2022년 몬트리올 세계선수권대회다. 그는 당시 500m를 제외한 나머지 종목에서 모두 우승하며 4관왕(여자 1000m, 여자 1500m, 여자 3000m 슈퍼파이널, 여자 3000m 계주)에 올라 종합 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로서 여러 가지로 만족했던 대회였습니다. 개인 장비 코치가 처음으로 대회에 동행해 현장에서 조언을 받으며 경기를 치른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대회 이후로 기록이 점점 더 빨라졌습니다.”

최민정은 몬트리올 세계선수권 이후 더 강력한 ‘괴물’로 변모했다. 가지고 있던 실력과 노련함이 정점에 오른 데다 자신감까지 더해졌다. 이 대회 이후 월드컵 무대에서도 완벽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최민정은 2025 하얼빈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1000m와 혼성 2000m 계주, 여자 500m에서 모두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랐고 기세를 이어 이번 올림픽에서도 압도적인 기량을 선보였다.

올림픽 무대 은퇴를 선언한 후 빙상계 인사들과 팬들을 중심으로 복귀 요청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최민정은 “은퇴 번복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36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역인 이탈리아의 아리아나 폰타나 선수와 비교하며 더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설득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올림픽을 세 번 출전한 것은 결코 적은 횟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은퇴 선언을 하고 나서 그렇게 후련할 수가 없더라. 선수 생활을 하면서 후련하다는 생각이 든 적은 거의 없었는데 그때 처음 그런 감정을 느꼈다. 충분히 만족스러운 선수 생활이었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고 심경을 전했다.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이 12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최민정은 앞으로 몇 차례의 국내외 대회를 소화한 후 자연스럽게 은퇴 수순을 밟을 예정이다. 당분간 휴식을 취하며 몸도 돌볼 예정이다. “앞으로의 인생 계획은 시간을 갖고 여유 있게 생각하고 싶다”는 게 그의 마음이다. 최민정은 “운동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게 될 수도 있어 살짝 두렵기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마 은퇴를 앞두고 있는 운동선수들은 대부분 그런 두려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며 “은퇴 시점을 생각보다 빠르게 잡은 이유 중 하나도 선수 생활을 더 오래하면 다른 일을 시도하는 게 더 힘들어질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다른 한편으로는 색다른 도전을 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설레기도 한다. 모든 게 불분명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일을 하든 쇼트트랙이나 체육 쪽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는 점”이라고 당차게 말했다.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이 12일 서울 강남구 올댓스포츠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오랜 시간 자신을 묵묵히 응원해준 팬들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10년이 훌쩍 넘는 긴 시간 동안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받았던 팬들의 사랑에 대한 감사함이 묻어났다. “올림픽을 마친 후 가진 팬사인회에서 만난 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초등학생이었던 평창 대회부터 대학생, 성인이 된 밀라노 대회까지 응원을 해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들의 응원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뿌듯합니다. 오랜 시간 팬분들께 쇼트트랙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어서 굉장한 영광입니다. 이제는 빙판을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는데 앞으로도 많은 응원을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여자 쇼트트랙의 ‘전설’ 최민정. 이제 그는 새로운 스타트라인에 선다.

이종호 기자 phillie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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