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중동 리스크에 대구지역 기업·서민경제 ‘이중 압박’

중동 정세 불안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지역경제 전반에 복합적인 충격이 확산되고 있다. 국제유가와 환율, 물류비 상승이 기업 경영 부담을 키우는 동시에, 축산물 가격과 기름값까지 끌어올리며 서민 생활비 압박으로 이어지는 '전방위 비용 상승' 구조가 뚜렷해지는 양상이다.
◆대구 기업 10곳 중 9곳 "중동 리스크 영향"
대구상공회의소가 최근 지역 기업 445개 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중동 사태에 따른 기업 영향 조사'(응답 271개 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9.7%가 이번 사태의 영향권에 있다고 답했다. 이 가운데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기업은 16.6%에 그친 반면, 간접 영향권에 있는 기업은 73.1%에 달했다.
이는 중동과 직접 거래하는 기업은 제한적이지만 국제유가와 환율 변동, 물류비 상승 등 외부 요인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며 비용 부담을 키운 결과로 풀이된다. 실제로 이번 사태는 '직접 타격'보다 '비용 상승을 통한 간접 압박'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기업들은 원자재·부품 수급 차질(51.1%)과 바이어 주문 취소 및 선적 보류에 따른 수출입 차질(46.7%)을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중동을 향한 화물운송 중단과 거래 제한, 수출대금 회수 지연 등 공급망 전반의 불안도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간접 영향을 받은 기업들의 부담은 더욱 광범위하다.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원자재·에너지 비용 증가(84.8%)가 가장 큰 부담으로 지목됐으며,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단가 상승과 환차손(46.0%)과 소비심리 위축에 따른 매출 감소 우려(36.4%) 등이 뒤를 이었다. 응답 기업의 약 75%는 이미 유가와 환율, 해상운임 상승 등 간접 피해를 체감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는 중동 리스크가 이미 기업 경영 전반으로 빠르게 전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기업들의 대응은 제한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응답 기업의 70.8%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응답은 18.5%에 그쳤다. 실제 비상 대응체계를 가동하거나, 일부 조치를 시행 중인 기업은 10% 수준에 불과했다. 대응에 나선 기업들도 거래처와 계약조건 재협상(44.8%), 원가 절감(31.0%), 환리스크 관리(31.0%) 등 자구책에 의존하는 모습이다.
향후 전망도 밝지 않다. 응답 기업의 84.5%는 중동 사태가 앞으로 기업 경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장기화될 경우 가장 큰 우려 요인으로는 유가 급등(64.9%)이 꼽혔다. 원자재 가격 상승(43.9%), 환율 급등에 따른 수입 비용 증가(38.7%), 물류 차질 및 운임 상승(37.6%) 등이 뒤를 이었다. 기업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책 지원은 에너지 비용부담 완화(77.5%)가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유동성 지원(46.5%), 환변동 대응 지원(24.0%), 선복(선박에 적재할 수 있는 화물공간) 확보 지원(18.1%) 순으로 응답했다.

◆장바구니 물가와 기름값 부담으로 확산
중동 사태로 야기된 비용 상승 압력은 소비자 물가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장기화되면서 축산물 가격의 오름세를 이어가는 가운데, 국제유가 상승까지 겹치며 장바구니 부담이 한층 커지고 있다.
18일 오전 대구 동구의 한 마트에서는 할인행사가 진행되고 있음에도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무거운 모습이었다. 가격을 확인한 뒤 구매를 포기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주부 최지선(45)씨는 "할인행사 때문에 왔지만, 계란과 고기 가격이 많이 올라 부담스럽다"며 "요즘은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장을 보면 예전보다 2만~3만 원은 더 쓰게 되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외식업계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고기와 계란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원가 부담이 크게 늘었다"며 "가격을 올리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그대로 두면 이익이 거의 남지 않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기름값 부담도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급등한 기름값을 잡기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한 지 엿새가 됐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가격 인하 폭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날 오후 대구 동구의 한 주유소에서는 휘발유가 ℓ당 1천763원, 경유가 1천755원에 판매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격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 운전자는 "가격이 내려갔다고 하지만, 체감할 정도는 아니다"며 "주유비 부담 때문에 대중교통 이용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기준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은 ℓ당 1천820원대, 경유는 1천820원대 초반으로 전일보다 소폭 하락했다. 대구 역시 휘발유와 경유 모두 1천800원대 초반으로 떨어졌지만, 하루 하락 폭은 3~4원에 그쳤다.
이는 전쟁 발발 직후 주유소 판매가격이 휘발유는 200원, 경유는 300원 가량씩 급등했던 것과 비교하면 인하 폭이 제한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로 인해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부담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주유소별 재고 구조와 가격 경쟁 환경이 가격 인하 속도를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주유소마다 유류를 공급받는 주기와 재고 소진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가격 반영 시점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고가에 매입한 재고가 남아 있는 경우, 즉각적인 가격 인하가 어려운 구조다.
결국 중동발 리스크는 기업의 생산비용 증가를 출발점으로 유통과 소비 단계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지역경제 전반을 압박하고 있다. 기업은 비용 상승과 수요 위축에 직면하고, 소비자는 장바구니 물가와 주유비 부담에 시달리는 '이중고'가 현실화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비용 부담 완화와 함께 공급망 안정, 물가 대응정책을 병행하지 않을 경우 이 같은 충격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명환 기자 kmh@idaegu.com 권영진 기자 b0127kyj@idaegu.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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