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안보수장 라리자니 폭사…'전쟁 출구' 더 좁아져

임병선 에디터 2026. 3. 18.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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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공습에 당한 듯… 외교 해법 먹구름

온건 보수에 실용 노선, 군부와 정부 중재

1월 반정부 시위 진압하고 학살한 책임자

핵협상 등 서방과의 타협에 꼭 필요한 존재

실질적 통치, 하메네이 사망보다 더한 충격

NYT "국가의 방향 놓고 관리들 불안감 빠져"

BBC "군부 힘 얻겠지만 지도부 위기 더 심화"

명문가로 엘리트 코스, 칸트 철학 책 쓰기도
17일(현지시간) 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스러진 이란 안보 수장 알리 라리자니.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미국, 이스라엘과의 전쟁 와중에 안보 수장으로 사실상 이란의 통치자 역할을 해 온 알리 라리자니(67)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이 17일(현지시간) 밤 이스라엘의 공습에 스러졌다고 당국이 확인했다.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의 죽음보다 그의 황망한 죽음이 어쩌면 더 큰 충격과 파장을 낳을지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16일 밤 늦게 라리자니가 사망했다고 밝혔고, 몇 시간 뒤 이란 당국은 17일 이른 새벽 그의 아들 모르테자, 사무실장 알리레자 바야트와 함께 변을 당했다고 확인했다.

파르스 뉴스 에이전시는 그가 테헤란 동부 교외의 딸을 찾았다가 미국과 이스라엘의 연합 공습에 숨을 거뒀다고 전했다. 이란 내부 바시즈 민병대 사령관 골람레자 솔레이마니도 같은 날 별도의 이스라엘 공습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최고 지도부의 핵심 인물 7명 가운데 마수드 페제쉬키안 대통령만 목숨이 붙어 있다.  

자신감 오른 이스라엘 "공개 행보 없는 모즈타바도 제거"

기세가 오른 이스라엘은 새로운 최고 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도 제거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인 에피 데프린 준장은 18일 기자회견에서 "어제 확인된 알리 라리자니 사무총장과 골람레자 솔레이마니 바시즈 사령관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는 이란 정권의 모든 지도부를 타격하고 있다"면서 "모즈타바 하메네이의 현재 상황에 대해 모른다. 그의 목소리도 모습도 확인되지 않는다. 한 가지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이미 입증했듯, 우리는 이스라엘을 위협하거나 대항하는 자는 누구든 끝까지 추적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그(모즈타바) 역시 예외가 아니다"라며 "우리는 그를 추적해 찾아낼 것이며, 결국 무력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달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에 희생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뒤를 이어 이란의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모즈타바는 지난 12일 국영TV를 통해 첫 공식 성명을 발표해 강경한 저항 의지를 내비쳤다. 당시 성명은 모즈타바의 육성 없이 앵커가 대독하는 형식이었고, 부상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최고지도자로 선출된 이후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테헤란의 이슬람혁명수비대. EPA 자료사진 연합뉴스

유능한 중재자 사라져 전쟁 돌파구 찾기 더 힘들어져

이란 군부와 정치 지도부를 능수능란하게 중재해 온 라리자니가 스러져 전쟁의 외교적 해법이 더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그가 제거됐다는 소식이 이란 국민들 사이에 전쟁의 방향과 국가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곧바로 증폭시켰다고 보도했다.

NYT 인터뷰에 익명으로 응한 이란 관리들은 특히 자신들의 신변 안전을 걱정했다. 한 관리는 다른 관리들로부터 이란 지도부의 안전은 물론 자신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이 담긴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면서, 누가 다음 공격 대상이 될지 모두가 궁금해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 관리는 라리자니의 피살 소식을 전하는 전화를 받고 몸이 떨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이 이란의 모든 지도자를 제거하고 이슬람공화국을 무너뜨릴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만연해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전쟁의 탈출구를 찾기가 더 어려워졌다는 비관론도 잇따랐다. 보수 성향의 이란 출신 정치분석가 하테프 살레히는 소셜미디어 게시물을 통해 라리자니가 이란 군부와 정치 지도부를 중재하는 가장 중요하고 유능한 인물이었다며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BBC도 대략적으로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아미르 하타미 이란 군 참모총장은 라리자니 사망에 대해 "결정적인" 보복을 개시하겠다고 위협했다. 방송은 군부의 발언권이 더 강화될 것으로 관측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위 인사들이 계속 떠나는 이란 정치 체제는 9000만 명이 넘는 국가에서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점점 어려워질 수 있다.

방송은 결론적으로 라리자니의 죽음이 미치는 영향은 단 한 명의 심판을 잃은 것만이 아니며, 전쟁의 흐름과 이란 국가의 안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도부 위기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생전의 알리 라리자니. 로이터 자료사진 연합뉴스

명문가 출신 중도 보수 실용파, 칸트 철학 저술도

알리 다시르 라리자니는 1958년 6월 3일 이라크 나자프에서 마자니계 가문에서 태어난 이란의 정치인, 군인, 철학자다. 2005년부터 2007년까지, 그리고 2025년부터 2026년 암살될 때까지 SNSC 사무총장으로 일했다. 

그의 집안은 이란 북부 마잔다란 주의 아몰 도시를 기반으로 한 시아파 지주 가문이었다. 부친은 122교도 시아파의 주요 성직자 하심 라리자니였다. 그의 부모는 1931년 레자 샤(흔히 말하는 팔라비)의 압력으로 나자프로 이주했다가 1961년에 이란으로 돌아왔다. 레자 샤 통치 말기에는 가문 전체가 이란 내 쿠르드인이 거주하는 북서부 부칸과 사르다슈트로 추방되어 잠시 머물렀다가 이란 북부로 돌아오기도 했다.

라리자니는 시아파 순례지로 이름난 곰의 신학교를 졸업했다. 또 아리아메흐르 공과대학에서 컴퓨터 과학과 수학 학사 학위를, 테헤란 대학에서 서구 철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처음에는 컴퓨터 과학 대학원 과정을 계속하려 했으나 나중에 장인이 된 아야톨라 모르테자 모타하리와 상담한 후 전공을 바꿨다.

테헤란 대학 문학 및 인문학부 교수로도 일했고, 임마누엘 칸트, 분석철학자 사울 크립키, 데이비드 루이스에 관한 책을 출판할 정도로 학식에 조예가 있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그는 2004년 칸트 관련 세 권의 책을 출간했는데 '칸트 철학에서의 수학적 방법'과 '칸트 철학에서의 형이상학과 정확한 과학', '직관과 종합 : 칸트 철학에서의 선험적 판단' 등이다.  2005년에는 에세이집 '에어 프레시', 2024년에는 '통치의 이성과 평온성'을 발표했다. 

1981년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에 입대한 후 호메이니 혁명 이후 들어선 이슬람 공화국 정부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차근차근 권력의 중심부로 향했다.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이란 의회 의장을 역임했다. 2020년부터는 1997년부터 2008년까지 활동했던 편의판단위원회(Expediency Discernment Council) 위원으로 활약했다. 그는 2024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 신청을 했으나 결국 자격이 박탈되었다. 그는 두 차례 대선 출마를 시도했는데 2005년에 출마하고도 6위에 그쳤고, 2021년에도 출마 자격이 박탈됐다.
알리 라리자니(왼쪽에서 네 번째)가 이란의 전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운데)와 함께 찍힌 사진으로, 하메네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 첫 날 숨졌다. 아나돌루 via 게티 이미지

라리자니는 알리 하메네이의 두 고문 중 한 명이었는데, 다른 한 명은 하산 로하니였다. 비서로서 그는 사실상 국가 안보 문제, 특히 이란의 핵 프로그램에 대한 최고 협상가 역할을 했다. 또 문화대혁명 최고위원회 위원이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28일부터 죽을 때까지 라리자니는 하아레츠 등 여러 신문에서 나라 안에서 가장 강력한 인물로 묘사됐고, 더 오스트레일리안 등에서는 사실상 지도자로 묘사했다. 보도에 따르면 IRGC는 그의 사실상 지도력을 승인했다.

가문의 영향도 있어서인지 원칙주의 우파에 중도 우파 성향이 강하며 실용주의적 성향이 두드러져 덩샤오핑 개방 노선에도 호감을 감추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그는 국가가 경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알리 알포네에 따르면, 그는 철두철미 민족주의자였다.

지난 1월 15일, 이란 내 시위와 학살이 잇따르자 미국은 라리자니가 시위대 탄압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그에게 새로운 제재를 가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반정부 시위 탄압의 '주모자'였으며, IRGC 지휘관과 정보기관의 긴밀한 연계, 그리고 가문과 고위 성직자들의 오랜 인연을 무기로 경쟁 파벌들을 통합하고 하메네이 사망 후 주도권을 잡을 준비를 했다.

유럽연합(EU)이 IRGC를 테러집단으로 규정하자 라리자니는 EU의 입장을 지지하는 국가의 군대는 테러 단체로 간주돼 그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위협하는 트윗을 날리기도 했다. 또 사망 전날에는 아랍에미리트(UAE)를 겨냥해 "이란을 버리고 미국과 이스라엘 편에 섰다"고 강한 어조로 분노를 쏟아냈다.

NYT에 따르면, 라리자니는 지난 1월부터 사실상 이란을 운영해 왔으며, "이슬람 통치 종식을 요구하는 시위를 치명적인 힘으로 진압한 책임자"였다. 알리 하메네이 암살 이후, 라리자니는 이란 정부가 "트럼프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그는 모즈타바 하메네이를 차기 지도자로 선출하는 것에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습을 막는 이슬람 율법을 어긴 것은 물론, 서구를 모두 적으로 돌려 국론 분열을 초래할 것이란 우려에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의 형제는 사디크 라리자니(사법부 의장), 모하마드-자바드 라리자니, 바게르 라리자니(테헤란 의과대학 교수), 파젤 라리자니(오타와 주재 이란 전 문화 참사관) 등으로 모두 엘리트 집단이다.  

고인의 딸 파테메 아르데시르-라리자니는 2018년에 미국 클리블랜드 대학 병원 메디컬 센터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올해 1월 말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이란계 미국인 그룹이 그녀의 윈십 암 연구소 채용에 항의했고, 그녀는 그 바람에 해고됐다. 추정컨대 이 딸이 귀국해 생활 근거지를 마련해야 했고, 아비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딸의 거처를 돌보는 중에 변을 당한 것은 아닌가 짐작된다.

byeongseon1610@mindlenews.com